미래의 에너지, 해 · 바람을 잡아라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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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가능 에너지 활용 가능성 높아…정부 정책·저예산이 걸림돌
원유 가격이 올라갈 때면 정부 당국자와 언론은 재생 가능 에너지 연구자들을 닥달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치솟는 석유를 대신할 대안 에너지가 정말 없느냐고 말이다. 우린 그 때마다 언제 재생 가능 에너지에 눈길 한번 주었냐고 되묻고 싶다.”

재생 가능 에너지 연구에 십수 년을 바쳐 온 한 연구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그 연구자 말대로 한국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는 늘 ‘꿩 대신 닭’이었다. 원유 가격이 오를 때만 땜질하듯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개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원유 가격이 안정되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원점으로 되돌리곤 했다. 담당 부처가 재생 가능 에너지를 육성하기 위한 예산을 짜도 기획예산처가 ‘당장 필요한 거 아니지 않는가?’라며 예산의 상당 부분을 싹둑 잘라내는 실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 및 보급 현황은 만년 걸음마 수준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술 수준은 채비를 했지만, 시범 사업에 그친 보급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란 풍력·태양열·태양광·연료전지·바이오매스 등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석유를 대신한다는 뜻의 ‘대체 에너지’ 대신 새롭고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라는 개념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라고 표현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은 풍력·태양광·태양열 등을 경제성 있는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과 기술을 두루 갖추고 있다. 바이오매스나 연료 전지의 경우에는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지만, 수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대체에너지연구부 김건훈 박사는 “우리나라의 산악·해안 지역에서는 상업적인 풍력 발전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재 시범 사업을 하고 있는 제주도의 경우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 1kW의 단가가 100원 이하인 데 비해 한국전력이 생산하는 전기는 1백28원 수준이다.

태양열과 태양광을 실용화하는 데도 어려움이 별로 없다. 일사량이 1일 평균 3100kcal/㎡ 수준이어서 태양열을 이용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환경이다. 예컨대 내구 연한이 10년인 태양열 온수 시스템의 경우, 설치한 후 5년 이내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 초기 투자비가 매우 비싼 태양광도 일본 사례에 비추어 보면 2년 반~3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태양광 발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최적의 인프라를 갖고 있다. 삼성 SDS 이수홍 실장(태양광발전연구실)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국가이다. 메모리 반도체 노후 장비를 태양광 발전산업에 활용하면 시설투자비를 절감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앞에서 지적했듯 정부의 근시안적 에너지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김정인 교수(중앙대·산업경제학)는 “에너지 문제를 위기 관리 정책으로 대처하다 보니 장기적인 시각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활성화하지 못했다”라고 진단한다. 김교수에 따르면, 독일·덴마크 등 선진국들이 원자력이 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원자력 발전소 개발을 포기하는데도 한국은 ‘경제성’을 외치며 석유와 원자력에 대한 짝사랑으로 일관한 에너지 정책을 고수해 왔다.

실제로 정부는 태양광 발전산업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2년까지 우선적으로 3백호 규모의 주택용 태양광발전시스템을 보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걸림돌이 되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 산업자원부 이강후 자원기술과장은 “재생 가능 에너지는 경제성이 떨어져 육성하기가 힘들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장기적인 필요성을 고려하여 2006년까지 재생 가능 에너지 공급률을 전체 에너지의 2%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2%라는 수치에는 쓰레기 소각장의 가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재생 가능 에너지 공급률을 1%로 끌어올리는 것조차 어렵다.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앞으로도 경제 논리가 미래 에너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어서, 재생 가능 에너지가 크게 확대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기술 개발이 먼저냐 보급이 먼저냐를 놓고 정책에 혼선을 빚고 있어 연구나 보급 모두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생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산업화가 더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대체에너지연구부 강용혁 박사는 “재생 가능 에너지는 보급이 확대되어야 시장이 형성되고 기술 발전도 촉진된다. 정부는 우선 재생 가능 에너지 시스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일본처럼 태양열 온수기나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면 경비를 지원해 주거나, 독일의 10만 지붕 프로그램(주택 10만개의 지붕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는 것)처럼 정부가 지원금과 저리 융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사업법을 마련하여 일반 소비자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정부가 고가에 매입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재생 가능 에너지를 장려하는 한 방편이다.

국민의 환경 의식을 고취하고 지속적으로 에너지 절약운동을 펼치는 정책도 절실하다. 현재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가 훨씬 넘는 일본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에너지 낭비가 심하다. 에너지를 절약해 여유 자금을 확보하여 이를 다시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 투자로 전환하게 되면 소비도 줄이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 김종달 교수(경북대·에너지환경경제연구소장)는 “시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국민 스스로 에너지를 절약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하고 활용할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대안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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