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 뽑은 올해의 책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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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솔 펴냄

추천인
박삼철(아트컨설팅서울 소장)
박신의(미술 평론가)
이주헌(미술 평론가)
진중권(문화 평론가)


안견의 <몽유도원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김홍도의 풍속화 들은 그림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낯익은 우리의 옛 그림들이다. 미술사나 교과서에서 아무리 천하 명품이라고 떠받든다 하더라도, 감흥을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대작·명작이라는 평가는 오히려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그림을 읽고 즐기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 사학자 오주석씨가 펴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우리 옛 그림을 앞에 두고 대중이 갖는 이같은 보편적인 고통을 ‘눈이 후련하도록’ 풀어주는 옛 그림 안내서이다. 김명국의 <달마상>, 윤두서의 <자화상>, 김정희의 <세한도>, 정 선의 <인왕제색도> 등 모두 열두 점을 선별해 설명했는데, 그 방법과 수준이 통상적인 안내서를 훌쩍 뛰어넘는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 분위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일반적 성향과 작품의 의미 들을 동양의 사상과 철학을 곁들여 소상하게 설명한 다음 독자와 더불어 그림을 함께 읽어 가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지은이가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의 처지에서 글을 쓰려고 애썼다’고 밝혔거니와,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쉽고 재미있게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그림을 앞에 펼쳐놓고 지은이와 함께 차근차근 그림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이 작품이 왜 명품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백년 전 어느 시골 장터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그림을 보면 구경꾼은 모두 열아홉 명이나 되는데 한복판의 두 씨름꾼에게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둥글게 빙 둘러앉았다. 오른쪽 위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살펴보면 사람 따라 보는 태도도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지은이는 김홍도의 <씨름>을 앞에 두고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가며 그림 속으로 차츰 끌어들인다. 그림의 큰 골격이 웬만큼 설명되었다 싶으면, 지은이는 전문가로서의 관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빼어난 구성의 묘미는 위가 무겁고 아래가 가벼워지도록 처리한 데에 있다.’

그림의 성격에 따라 그림을 설명하는 방법 또한 다르다. 이를테면 추사의 <세한도>를 설명할 때는 선비의 가파른 정신 세계가, 단원의 <씨름>에서는 떠들썩한 시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해놓은 것이다.

지은이는 작품을 해설하는 중간중간에 ‘옛 그림의 색채’ ‘옛 그림의 원근법’ 같은 상식도 알려주고, ‘옛 그림을 보는 법’도 설명한다. ‘옛 그림을 감상하는 데 가장 큰 두 가지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옛 사람의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이 책의 끝에는 옛 그림 열두 점이 컬러 도판으로 따로 실려 있다. 그림을 떼내어 글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독자 서비스’인 것이다. 시각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하듯 올해에도 미술을 읽고 감상하는 데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당신의 미술관>(전2권·현암사). 독일의 미술 사학자 수잔나 파르취가 쓴 이 책은, 동굴 벽화에서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를 한눈에 훑게 하는 미술관 구실을 하고 있다.

추천인들이 거론한 국내 저자의 저서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서양 미술 사학자 노성두씨가 지은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한길아트). “정통 서양 미술사, 시각 언어 및 문화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책이다”라는 미술 평론가 박신의씨의 독후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국 학자의 눈으로 서양 화가들이 신화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읽은 뛰어난 저서로 꼽힌다.

이밖에도 추천인들은 <디자인 문화비평>(안그라픽스), <중국 회화사 삼천년>(학고재) 들을 올해의 좋은 책으로 꼽았다.

올해에는 사진 분야에서도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주목된 책은 사진가 강운구씨가 펴낸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와 <사진과 사회>(지젤 프로인트 지음·성완경 옮김·눈빛)이다.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는 북한 학자 리상호의 번역에 한국 사진가의 현장 사진이 함께해 <삼국유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한다. <사진과 사회>는 사진 탄생과 문화적 변동을 조명한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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