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 맞는 한·미 야당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pyonc@rfa.org)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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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공화당 “상호주의 양보 못해”
“솔직히 말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잔뜩 들떠 있는 남한 분위기를 보는 미국쪽 반응은 한마디로 ‘불안하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이자 유수한 민간 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 미국 인사가 최근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지난 6월15일 남북 공동선언이 나온 뒤 이산 가족 재회 문제만 성사 단계로 접어들었을 뿐, 나머지 어느 것도 구체화한 것이 없는데도 한국 국민들이 마냥 들떠있는 모습이 ‘불안’ 그 자체라는 것이다.

미국측의 ‘불안한’ 시각은 최근 한국의 제1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국회연설을 통해서도 간접으로 확인되었다. 이총재는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이 들뜬 분위기가 일고 있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특히 이총재가 남북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상호주의’ 원칙을 유난히 강조한 대목은 북한 문제와 관련한 미국 국내 정치 상황과 견주어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동안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포용 정책을 펼 때마다 발목을 잡아온 공화당이 가장 문제 삼은 부분이 바로 상호주의이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핵·미사일 협상을 벌일 때마다 상호주의를 포기한 채 식량 지원 등의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대북정책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어찌 보면 ‘상호주의’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야당 처지에 있는 한나라당이나 공화당이 적어도 대북 정책에 관한 한 공통으로 지닌 키워드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는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당선될 경우 공화당측 대북 노선과 맥이 닿아 있는 한나라당의 대북 발언권이 의외로 힘을 얻을지 모른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물론 공화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클린턴 행정부가 펼쳐온 대북 포용 정책의 기조가 당장 바뀌진 않겠지만, 뉘앙스는 크게 바뀌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그 ‘뉘앙스’란 상호주의와 같은 각론 부분을 의미한다.

공화당 집권해도 한나라당에는 큰 득 없을 듯

공화당 행정부가 보수적인 대북 정책을 펼칠 경우 상호주의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기조로 하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는 틈새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그러나 차기 백악관 주인이 공화당으로 바뀐다고 해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반드시 득 보리라는 법은 없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은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와 유수한 민간 연구단체들의 견해가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결정되기 때문이다.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엘 위트 연구원은 “내년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도 대북 정책의 전략적 기조는 당장 달라질 것은 없지만, 전술 부분은 차이가 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사람은 현재 부시 후보의 외교 개인교사 역을 맡은 콘돌리사 라이스 박사이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무장관이나 백악관 안보보좌관 중 한 자리를 맡을 것이 유력한 라이스 박사는 지난 봄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북한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결단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핵 동결과 미국의 경수로 제공을 교환키로 한 제네바 기본 합의문을 파기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이런 ‘맞교환식’ 접근책은 곤란하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대북 정책에 관한 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시 말해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북·미 최대 현안인 미사일 문제 등에서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무력 사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가정이 현실화한다면, 상호주의를 빌미로 ‘북한 때리기’에 앞장설 수도 있는 공화당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과연 무조건 동조와 지지를 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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