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반핵법률가협회 독일 대표 페터 베커 “유고가 인종 청소한 증거 없다”
  • 프랑크푸르트/허 광 (rena@sisapress.com)
  • 승인 1999.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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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반핵법률가협회 독일 대표 페터 베커 변호사/“미국, 유엔 무력화시키려고 유고 공습”
“유고가 인종 청소한 증거 없다”
국제반핵법률가협회 독일 대표 페터 베커 변호사/“미국, 유엔 무력화시키려고 유고 공습”

페터 베커 변호사는 독일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동서독이 통일되는 와중에서 독일 정부가 동독의 국영 전기 공급 시설을 서독 기업들에게 매각하자,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2년간 헌법 소송을 벌였다. 재판 결과 과거 동독의 재산은 동독 자치단체가 소유하게끔 되었다. 그는 또 공직 임용 때 사상 검열을 하는 독일 정부의 관행을 없애는 소송에도 참여해, 94년에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이같은 관행에 시정을 요구하는 판결이 나오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89년부터 국제반핵법률가협회 독일 지부 대표를 맡아 10년째 유럽의 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기도 하다.

페터 베커가 이끌고 있는 반핵법률가협회 독일 지부는 지난 3월 유고전쟁이 시작된 뒤, 독일에서는 최초로 나토의 유고 전략을 종합적으로 분석 비판하는 비망록을 발표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헤이그 국제평화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5월27일에 만나 ‘유고전쟁의 배경과 21세기 유럽의 미래’에 관해 들어 보았다.

먼저 ‘국제반핵법률가협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국제반핵법률가협회는 국제반핵의사협회(IPPWN)의 자매 기구로 88년에 창설되었으며, 현재 세계 15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우리는 핵무기와 대량 살상 무기에 반대하며, 지구상의 갈등은 무력이 아닌 법률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현코자 노력해 왔다. 헤이그 국제재판소는 96년에 핵무기 보유와 사용이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판정했다. 이것이 최근에 우리가 거둔 성과다.
독일 지부의 현황, 그리고 최근의 활동을 알고 싶다.

독일 지부는 89년에 문을 열었다. 3백여 명의 회원이 사법부·검찰·변호사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는 나토의 유고 공습을 중단시키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유고 정부는 지난 4월 말 나토 공습에 참가하고 있는 10개국을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고발했다. 우리는 이 소송에 국제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유고 정부가 법정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럴 전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 물론 대부분의 나토 국가들은 국제재판소 판결의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벨기에와 포르투갈은 다르다. 이 두 나라는 국제재판소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국제재판소가 나토 공습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하면 나토의 군사 작전에서 이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적지 않은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예측하는가?

유고전쟁은 첫째 유엔의 기본 헌장을 위반한 것이다. 유엔은 안보리가 승인하지 않는 어떤 무력 사용도 금하고 있는데, 나토는 안보리 결의를 요구한 일도 없이 공습을 시작했다. 또 이번 공습은 나토 조약마저 위반한 것이다. 나토 조약 5조는 나토를 ‘방어 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나토에 속한 어느 나라도 유고의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 이런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명백한 나토 조약 위반이다. 누가 이걸 부인할 수 있겠나? 나토는 또 랑부예 조약 협상에서 유고가 나토군의 유고 주둔을 인정하지 않으면 폭격한다고 위협했다. 유고측이 이런 조약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만에 하나 굴복했다고 해도 국제법적으로는 무효이다. 국제 조약을 다루는 빈 협약 52조는 무력 위협 상황에서 체결된 조약은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토는 ‘인도적인 목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제법에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런 해석은 유엔 창설 이전에나 가능했다. 유엔의 기본 정신은 바로 이같은 해석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토는 ‘인도주의적 무력 개입’이 이제 국제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나토가 이런 논리를 안보리 회원국들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고 해도 나토는 코소보의 ‘인종 청소’와 ‘인종 학살’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공습이라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사실은 아직 없다. 나토는 지난 1월15일 코소보 지역 라차크에서 양민 40명이 학살되었다고 주장하고, 그 뒤 공습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곳은 알바니아계 지하 무장 조직의 주둔지였고, 세르비아계와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무장 조직원들의 시체가 양민 학살 증거로 위장된 것인가?

그런 혐의가 짙다. 주목할 사실은, 당시 현장에서 아무런 조사 없이 ‘양민 학살’로 단정해 소문을 퍼뜨린 인물이 누구냐 하는 점이다. 그 인물은 과거 남미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를 교란하는 반군을 무장시킬 때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에서 미국 대사를 지냈던 윌리엄 워커이다. 그는 올리버 노스 중령과 함께 이란-콘트라 사건 배후에서 활약했다.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가 미국 눈 밖에 났을 때 그를 권력에서 밀어내는 공작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80년 로메로 신부 살인범을 비호한 배후 인물이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아무튼 국제법을 위반하는 비밀 공작 전문가가 유럽안보협력기구 요원 자격으로 코소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추방하는 사태도 없었다고 볼 수 있는가?

적어도 공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독일 정부 문서에 씌어 있다. 우리는 외무부가 현지 정세를 분석한 문서에서 공습 1주일 전까지도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가 탄압받을 위험은 없었다고 서술된 부분을 찾아냈다. 우리가 이 문서를 여론에 공개하자 폴머 외무부 차관은 이 문서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외무부 문서는 알바니아계 난민의 망명을 독일 법원이 심사할 때 기본 자료가 되는데, 정부가 망명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고의로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외무부 관료는 그렇지 않다고 곧바로 부인했다.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인종 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

우리는 지금 스레브레니차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이곳에서 양민 수백 명이 학살되었다고 해서 나토가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우리는 이 사건도 사실인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 양민 학살이라는 소문만 있었지 발견된 시체가 없다. 심지어 희생자로 알려진 인물들이 그 뒤 보스니아 선거 때 다시 나타난 사례도 있다. 라차크와 스레브레니차 두 사건은 독일군을 유고에 파병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조사 결과 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면 외무장관 퇴임을 공식으로 제기할 것이다.

나토가 ‘인도적인 목적’으로 유고에 개입한 게 아니라면, 이번 공습의 실제 목적은 무엇인가?

먼저 유엔을 철저히 무시한 개입이라는 점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그동안 미국의 이해에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안보리라는 외투를 벗었다. 사실 공습 전까지 미국이 안보리에서 행사한 거부권은 러시아나 중국에 비해 다섯 배가 넘는다. 다시 말해 미국의 이해가 세계의 이해와 대립하는 측면이 뚜렷해지면서 안보리에서도 고립되는 추세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이해를 관철하는 방법으로 안보리를 무력화하면서 그대신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도덕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국 사회 자체가 도덕성을 찾기 힘든 사회 아닌가? 폭력 숭배 사상이 가득차 있고, 주민 20% 이상이 빈곤층인 사회가 자신의 도덕성을 세계에 강요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독일이 미국의 전쟁에 말려들었다고 비난한다.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독일 국회가 코소보 파병에 동의한 것은 98년 10월16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 며칠 전에 미국의 홀부르크 특사와 밀로셰비치가 코소보 정전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코소보에서 유고 군대가 철수하고 알바니아계 지하 무장 세력은 무장을 해제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고측과 달리 알바니아계는 이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바로 정전협정이 성립된 단계에서 독일군이 코소보에 개입할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독일 정부와 국회는 유고 파병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홀부르크와 밀로셰비치의 합의를 통해 미국과 유고의 협상파가 전면에 나선 시점에서 독일이 군사 개입을 원했다고 볼 수 있는가?

그 시점에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다. 당시는 독일에서 선거가 끝나고 연정으로 곧 정권이 이양되는 과도기였다. 그런데 미국-유고의 합의가 성립된 며칠 뒤에 당시 류에 독일 국방장관이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브라이트는 류에로부터 연정을 맡게 되는 슈뢰더 차기 총리와 피셔 차기 외무장관에게 유고 파병이라는 나토의 노선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받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당시 외무부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에 미국·독일의 군사 개입파가 독일 연정의 외교 노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본다면, 연정 출범 뒤에 일어난 라차크 사건의 의미도 이 맥락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런데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안고 있어, 무력 사용을 억제하는 겹겹의 장치를 두고 있다. 독일 헌법은 침략 전쟁을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준비하는 혐의가 있는 경우에도 처벌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해외 파병의 경우에는 유엔의 승인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법 해석이었다. 이같은 해석은 90년 과거 연합국과 동서독이 통일독일의 국제적 지위를 합의한 2+4 조약에서도 확인했고, 지난해 슈뢰더 정부가 출범할 때 연립 정부 협약에서도 되풀이 강조되었다. 그런데도 연정은 콜 정부의 코소보 결의를 그대로 답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이 8개국 협상을 주도해 러시아를 다시 협상 무대로 끌어들였는데, 나토의 공습은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에는 어떤 대응 방안이 있을까?

내 주변에서 알려온 소식을 소개해야겠다. 러시아 반핵의사협회에서 수년간 일하던 다비덴코 박사가 핵군축 분야가 아니라 핵무기 개발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그곳에서는 ‘오늘은 유고, 내일은 러시아’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러 관계는 60년대 쿠바 위기를 방불케 하는 최악의 상태이며, 미국과의 군축 협상을 중단한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는 나라가 증가하리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1세기를 앞둔 유럽은 이제 세계대전의 불길이 타오르던 20세기 초반으로 후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불길하게도 전쟁의 발원지는 다시 발칸 반도가 되었다. 유럽의 평화 회복에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유럽은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고 공습을 중단하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안보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먼저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기를 버려야 한다. 유럽은 핵무기를 포기함으로써 미국과 달리 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이 아님을 입증하고, 새로운 분쟁 통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힘의 논리가 아닌, 국제법이 통하는 21세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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