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복·두우쟁이...한강의 주인 돌아오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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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 환경 안정…치어부터 성어까지 고르게 확산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낮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강 양안 올림픽대로·강변도로에서 차량들이 쏜살같이 질주하는 사이로 물줄기는 세상사를 잊은 듯 그저 한가롭고 쉼 없이 제 갈길을 간다. 하지만 일몰 후의 한강은 살벌한 전쟁터로 둔갑한다.

특히 5~6월 서울의 한강이 그렇다. 오뉴월의 밤 한강이 이처럼 전쟁터로 변하는 이유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약탈 행위가 물고기의 산란철이기도 한 이 무렵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이다. 밤이슬에 옷깃이 젖기 시작할 때면, 자망과 주낙·삼각 정치망으로 중무장한 수상쩍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강가로 몰려나온다.

자망은 주로 잉어와 숭어를 잡는 데 쓰인다. 주낙은 뱀장어·메기·누치 따위를 잡을 때 놓는다. 실뱀장어 사냥에는 ‘쪽대’라는 도구가 동원되기도 한다. 물고기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정치망인데, 어부들은 때때로 이중 삼중으로 정치망을 쳐놓고 한강 바닥의 물고기를 싹쓸이한다.

이 때쯤이면 한강관리사업소 환경과 소속 직원들도 일손이 바빠진다. 이들은 법으로 금지된 한강에서의 어로 행위를 단속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 한강에서 어업 허가가 난 곳은 김포·강화·고양 등 세 곳이다. 서울시 관할 구역에서는 낚시 이외의 어로 행위가 일절 금지되어 있다. 바로 이런 연유로 매일 밤 9~10시께부터 오전 1~2시까지, 심지어 새벽 3~4시까지 서울시 단속반원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불법 어로꾼과 숨바꼭질을 한다.

5월의 마지막 밤도 역시 그랬다. 밤 12시께 서울시가 관할하는 한강의 최남단 지점인 가양대교 건설 현장 부근. 0.5t짜리 소형 보트로 이날 밤 9시께부터 물살을 가르며 순찰에 나선 단속반은 강 가운데에서 벌써 한 시간 가까이, 낮에 인근 주민이 쳐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주낙을 끌어올리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산란기 맞아 불법 어로 ‘극성’

교대로 주낙을 끌어올리던 단속반은, 올려도 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주낙줄이 마침내 시 관할 경계선 바깥으로 넘어간 것을 확인하자 수거 작업을 단념했다. 주낙줄을 끊어버리고 뱃머리를 상류 쪽으로 돌린 것이다. 보트 바닥에는 방금 주낙줄과 함께 건져올린 누치·뱀장어·동자개가 펄떡이고 있었다.

바로 이 때, 가양대교 남단의 어두운 수풀 속에서 한 줄기 빨간 불빛이 번쩍 하고는 이내 사그라들었다. 불법 어로꾼임을 직감한 단속반은 기수를 돌려 그 지점으로 향했다. 불을 끈 채 작업을 벌이던 단속반은 수풀이 가까워지자 아예 시동마저 꺼버렸다. 단속반의 접근을 불법 어로꾼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강기슭에 미끄러지듯 배가 닿을 무렵 어둠 속에서 분명 사람으로 보이는 물체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단속반은 가까이 다가가며 ‘물고기 많이 잡으셨습니까’라며 물체를 향해 말을 건넸다. 바로 그 순간, 멈칫하던 물체는 이내 상황을 알아차리고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내닫기 시작했다. 급하게 뭍에 오른 단속반은 전력을 다해 도망가는 물체를 뒤쫓았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기를 2~3분. 갑자기 사람 고함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차량 3대가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전조등과 미등에서 차량이 내뿜는 불빛은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 더욱 유난했다.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단속반의 추적을 가로막은 차량 행렬은 단속반이 뒤쫓던 물체를 태우고 다시 자유로 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향해 빠르게 사라졌다.

도주 차량 가운데에는 ‘활어차’로 개조한 듯이 보이는 1t 트럭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활어차까지 동원해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전문 어로꾼 일당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어로 행위가 불법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불법 어로꾼의 존재는 ‘한강 관리’ 업무와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는, 한강 관리가 낮에는 물론 밤에도 쉼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불법 어로꾼으로부터 한강의 물고기를 보호하는 일이 최근 한강관리사업소 야간 업무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사실에 대해 의당 그러려니 하는 시민들도 두 번째 사실에 대해서는 이런 반문을 던지며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아니 물고기 보호가 한강 관리의 주요 업무라니? 그 더러운 한강 물에 보호해야 할 물고기가 그렇게도 많은가?’

믿기지 않을 일이나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립수산진흥원 산하 청평내수면연구소에서 천연기념물 황쏘가리 복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완옥 박사(82~83쪽 딸린 기사 참조)도 최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박사는 지난 5월, 황쏘가리 방류 사업과 관련해 약 열흘간 서울시 관할 한강을 직접 탐사하며 그물을 쳐놓고 어종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황복·메기·대농갱이·두우쟁이·줄공치·새코미꾸리·동자개(위 사진 참조) 등 한강 중·하류 쪽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져 버렸을 것으로 추측되던 각종 민물고기를 채집했다. 그가 놀랍게 여긴 일은, 자신이 채집한 물고기들의 상당수가 원래는 ‘1급수’와 같은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려진 물고기들이라는 사실이다.

잠실 수중보 부근에서 이박사는 산란기 때 기수 지역으로부터 올라온다는 황복 8마리를 잡아올렸다. 본격 조사 때 이박사는 다시 황복 9마리를 잡았다. 이박사는 열흘 간의 조사에서 강의 상·중·하류 5곳에 골고루 그물을 쳤는데, 특히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환경부 ‘보호 대상종’으로까지 지정된 두우쟁이를 5곳 모두에서 채집했다.

그보다 놀라운 일은 이들 민물고기 중 일부가 성어에서부터 치어까지 물속에 고르게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이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하천 생태의 ‘안정성’을 따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동원된다. 특정 물고기가 얼마나 우세한 세력을 형성하는가 하는 우점도, 특정 지역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사느냐 하는 다양도 등이다. 이런 기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특정 물고기의 성어와 치어가 얼마나 고루 발견되느냐 하는 대목인데, ‘뜻 밖에도’ 이박사의 조사에서 성어와 치어가 함께 발견되었던 것이다. 성어와 치어가 함께 있다는 것은 결국 한강의 수면 아래 상태가 물고기들에게 좋은 생활 터전이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작은 기적이었다.

한강의 낚시꾼에게, 한강관리사업소 직원들에게 그리고 불법 어로꾼들에게, 그 이름도 그리운 한강의 은둔자들이 하나씩 둘씩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한강관리사업소 설명에 따르면, 산업화가 아직 시작되기 전, 즉 1960년대의 한강에는 짠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른바 ‘기수 지역’에 사는 물고기를 포함해 물고기가 60여 종 살았다. 현재 남한 전체에 살고 있는 민물고기는 1백40여 종. 1960년대 한강에는 남한 전체 민물고기 종의 절반 가까이가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 들어서는 약 20여 종으로 뚝 떨어졌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이에 따른 각종 생활 오폐수 유입 그리고 1980년대 말 이루어진 한강종합개발 결과로 물고기 서식 환경이 급변하자 많은 물고기가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황복·참게·웅어·숭어·은어이다.

사라졌던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께부터였다. 조사 시점·횟수·장소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제각각이어서 신뢰성에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한강관리사업소가 발표한 조사 자료가 이를 입증한다. 1997년 31종에 이르던 한강의 물고기는, 1998년 33종으로, 지난해에는 다시 45종으로 늘었다. 서울시 관할 한강에서 낚시꾼 외에 불법 어로꾼이 꾸준히 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조사된 물고기 가운데 잉어·누치·뱀장어 등 서식 환경에 비교적 적응이 빠른 물고기들은 최근 급격히 세를 불려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어종 보호를 위해 한강에서의 어로를 불법화하면서 이들 어종이 생존의 최대 장애물인 ‘남획’의 위험에서 벗어나 번식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잉어와 뱀장어는 서울시 관할 한강 전역에서, 그것도 연중 내내 낚시꾼들에게 잡히고 있다.

하지만 황복·웅어·은어·숭어 등 최근 조사에서 발견된 어종들은 여전히 논란 대상이다. 조사 때 이들 물고기를 채집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든가, 또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고향을 등진 물고기들이 다시 고향을 찾아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웅어와 황복 ‘논란 많은 손님들’

경기도 고양시 행주 지역이 산지로 알려져 있고, 조선 시대에는 왕가에 진상했다는 한강의 명물 ‘웅어’에 대해서는 요사이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멸치과의 회유성 어류로 갈대 사이에 알을 낳는 습성을 지닌 이 물고기는, 최근 한 일간지에서 ‘멸종 위기’라는 보도가 나간 뒤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한강관리사업소는 이를 ‘사실 확인이 생략된 오보’라고 주장한다. 사업소측은 최근 몇 년간 반포천·여의도 밤섬·행주대교 부근에서 웅어를 여러 번 채집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잡은 웅어를 조류 보호 단체에 야생 독수리 먹이로 기증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한강관리사업소에서 ‘선장’으로 15년간 배를 몰았다는 김 아무개씨는 “웅어는 산란기 때 알을 낳으려고 한강으로 올라오는데, 이 때 적정 수온이 20℃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기사가 나가던 시점에는 수온이 낮아 웅어가 올라오기 힘들었는데, 이 때문에 오보가 나간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에도 강 상류로 올라오는 웅어를 잡은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최근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황복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1950~1960년대에 황복은 산란철이 되면 광나루 부근까지 올라가 알을 낳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강 개발 이후 한강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황복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 과거 서울시의 조사에서 고작 한두 마리씩 발견되던 황복은 올해 들어 청평내수면연구소의 조사 때 입증되었듯이 한번 그물을 치면 7~8 마리가 걸릴 정도로 ‘대규모’로 늘었다는 것이다. 서울시측은 이를 ‘산란 여건이 갖추어졌음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강의 물고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같은 현상이 수질 개선의 결과인가, 아니면 인과 관계가 분명치 않은 일시적인 현상인가를 판단하는 부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한강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는 이제야 막 기지개를 펴고 있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단 ‘수질 개선 효과를 전혀 간과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수질은 식수(음용수)로서의 수질과, 물고기 서식 조건으로서의 수질을 나누어서 보아야 하는데, ‘먹는 물’로서의 수질은 최근 ‘팔당호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는 반면, 물고기 서식 환경으로서의 한강 수질은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왔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이상훈 환경조사부장도 비슷한 견해다. “한때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30~40ppm에 이르던 탄천·중랑천·안양천 등 한강 지천의 수질은, 최근 10ppm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상당히 개선되었다. 여전히 먹는 물 문제는 남아 있지만, 한강에 물고기가 돌아오는 현상은 이같은 지천 수질의 개선 효과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 미흡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서울시가 한강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벌인 각종 사업도 사라졌던 물고기를 다시 불러모으는 요인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서울시는 지난해 한강에서 철새의 낙원이라 할 밤섬 부근에 ‘연승수하식 산란장’을 인공으로 조성했다. 새끼줄을 꼬아 물을 타고 흐르게 하여 자연스럽게 알을 낳을 수 있게 한 이 산란장은, 한강관리사업소 오형민 팀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미역 양식장에서 힌트를 얻은 이 산란장은 1년 만에 대성공을 거두어 방송사의 대대적인 보도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직 호들갑 떨 상황 아니다”

서울시는 이 외에도 물고기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잠실 수중보에 약 50억원을 들여 새로운 ‘물고기 길’(어도)을 개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내년에는 역시 밤섬 주변에 인공 수초를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뒤늦게나마 한강 생태계 보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강 물고기의 ‘귀향’을 일시적인 귀환 정도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청평내수면연구소 이완옥 박사는 비록 자신이 생각지 못한 경험을 했음에도 한강에 물고기가 정착한다는 데 대해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15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물고기를 관찰해온 두성해양연구소 이선일 소장의 견해는 좀더 가혹한 편에 속한다. 그에 따르면, 최근 한강의 물고기들은 서식 환경이 양호한 곳을 찾아 한군데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큰 홍수가 나면 서식지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위험스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한강은 물론 다른 강에도 물고기 몇 종이 더 늘었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그리운 물고기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또 그나마도 살아 남은 물밑의 귀한 은둔자들을 쫓아버리지 않으려면 좀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종합 처방’을 마련하기 앞서 ‘면밀한 진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또한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시는 물론 환경부에서조차 전문가들을 조직해 한강 생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다는 소식은 최근까지 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한강의 물고기에 관한 한, 서울시는 방 청소는 하지 않고 초인종만 달아둔 채 진객을 맞이하려는 여관 주인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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