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권익 지키는 김선수 변호사
  • 김 당 기자 ()
  • 승인 1999.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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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 변호사(사시 27회)는 서울대 법대 재학중 사병으로 병역을 마친 뒤 4학년 때인 85년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본인 말로는 연수원 시절에는 놀았고, 연수원을 마치고는 곧장 고 조영래 변호사가 이끈 시민합동법률사무소(현 법무법인 시민)로 들어갔다. 김변호사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판검사나 로펌 대신에 합동사무소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 시절에는 학생운동의 대세가 노학(勞學) 연대와 현장 노동운동이었다. 친구들은 현장에서 노동운동 하는데 나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을 법률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분야를 모색했는데, 거기에 가장 부합한 사무실이 시민합동이었다.”

10여개 노조 고문 변호사로 활동

당시 시민합동에서는 시민공익법률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상담소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 노동운동가 박석운씨였다. 박소장이 학교 선배인 데다 연수원 시절에 상담소에서 업무를 지원한 경험도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조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변호사로서 노동 분야를 전문하겠다는 것은 학생 시절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부터의 결심이었다.

그는 95년에 안식년 휴가를 받아 미국 코넬 대학 노사관계대학원에서 1년간 노사 관계를 공부하고 왔다. 한국노총 고문 변호사이기도 한 김변호사는 한달에 두 번씩 한국노총 법률구조본부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한다. 그밖에도 그가 고문으로 있는 노동조합이 10여 군데 더 있다. 지난 2월1일에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체불 임금·부당 해고·희망 퇴직·노조 운용 등에 관한 법률 상담 15건에 응했다. 김변호사는 또 97년부터 숭실대 노사대학원 겸임교수로 근로기준법과 노동단체법을 강의하고 있다.

수임 사건에서 노동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쯤인데, 노동 분야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다. 노조 탄압 같은 노동 형사 사건에서 그가 거둔 대표적인 성과는 88년 서울대병원 전체 조합원의 3년치 미지불 수당을 집단 청구해 승소한 것. 이 사건은 다른 대학병원 노조의 집단 소송으로 이어져 서울지방법원에 노동 사건 전담부(노동특별재판부)가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도 산재 소송·해고 무효 청구 소송 등 원고인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앞장서 왔지만, 회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손배 소송을 제기할 경우에는 피고인 노동자의 대리인을 맡을 때도 있다. 대표적 사례는 94년 지하철노조 파업 때 지하철공사측이 노조에 제기한 50억원 손배 소송에서 노조측 변호를 맡아 최대한 지연 작전을 편 끝에 97년 말 회사측의 소를 취하시킨 일이다.

노사 관계 소송을 맡은 변호사를 흔히 노동 전문 변호사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하자면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노동 변호사이고 회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사는 기업 변호사인 셈이다. 실제로 노사 관계 송무를 맡다 보면 대형 로펌들과 붙는 경우가 많은데 대등한 지위에서 이루어지는 공정한 게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선 수임료에서 불리하고, 사측은 증거 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데 비해 노측은 그렇지 못하다. 김변호사가 특히 불만인 것은 90년대부터 두드러진 대법원의 보수화 경향이다. 1·2심에서 힘겹게 이겨도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았다. 김변호사는 “특히 해고 무효 소송 같은 노동법 분야는 가치 판단과 정책적 고려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대법원의 입장이 중요한데 지나치게 보수적인 판결로 하급심을 구속하고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에 즐거운 일은 역시 노동 형사 사건에서 이겨 노동자들이 고맙다고 찾아올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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