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희망의 시대 열린다.”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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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큰 물 건너는 대과 괘에 해당… 2000년부터 세상이 하나되는 후천 시대 개막”
“말세군 말세야.” 흔히 하는 말이다. 말세?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세상의 종말’이다. 뜻만 놓고 보자면 얼마나 끔찍하고 험악한지. 하지만 나이 지긋한 한국인치고 이 말 한번 써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이 뿌리 깊은 ‘유행어’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밑거름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역(周易)〉이다. 복희씨가 천하 만물의 형상을 그린 괘효에 문왕과 주공이 글로써 괘사와 효사를 붙이고 여기에 공자가 해설서인 ‘십익(十翼)’을 붙인 것이 주역이다.

주역은 유교 경전을 넘어서 동아시아인들의 역사를 지배해 온 불교·도교 등 온갖 종교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근한 예로 도참 상황, 불교의 미륵불 신앙 등이 모두 주역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주역의 시간은 ‘시작과 끝’ 아닌 ‘끝과 시작’ 개념

그렇다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온 말세와 주역은 어떤 연관에 놓여 있나. 우선 주역의 시간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역의 시간은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으로 이루어진다. ‘시종(始終)’이 아니라 ‘종시(終始)’인 것이다.

이를테면 ‘대명종시(大明終始)’ 같은 주역의 글귀가 그 예다. 〈대학〉의 ‘사유종시(事有終始)’ 등 비슷한 예는 주역말고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등장한다. 불교의 윤회 사상 또한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동양 사상의 시간관은 ‘순환’이다.
주역의 관점으로 말세란 선천 시대가 후천 시대로, 혹은 후천 시대가 선천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인 ‘개벽(開闢)’의 전조일 따름이다. 물론 말세에는 그에 상응하는 말기적 증상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것이 직선적 시간관을 내포한 서양 사상에서와 같이 절망을 향해 치닫는 시기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가 그의 예언서 〈모든 세기〉에서 인류에게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 해이다. 〈모든 세기〉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조차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칭송했을 만큼, 서양에서는 널리 회자되어 온 예언서이다.

주역 학자들은 99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주역>은 천하 만물의 이치를 살펴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를 줄 뿐,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나 시기를 특정한 예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역 학자들은 세기 말과 다가올 미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우선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옹(71)의 의견부터 들어보자. 그는 87년부터 서울 흥사단에서 주역을 강의하며 지금까지 5천 명이 넘는 수강생을 배출했다. 또 홍역학회(洪易學會)를 이끌며, 서울·인천·대전·청주 등 지방 각지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대산은 지금 세상이 주역 64괘 중 스물여덟 번째에 속하는 ‘대과괘(大過卦)’에 해당한다고 본다. 대과괘의 괘효를 풀이하면 서방의 물이 넘쳐 흘러 동방의 나무가 뿌리째 썩는 형상이다. 이는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서양의 물질 문명이 범람해 동양의 정신 문명을 압도하는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잃어버린 정신 문명을 재건하고 그 위에 물질 문명을 건설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대과괘의 상육(上六;여섯 번째 효)에는 ‘과섭멸정(過涉滅頂;지나치게 건너려다 물에 빠지다)’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밀려드는 서양 과학 문명을 동양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다가 익사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대산은 “대과의 시대라 하여 개인들마저 무분별하게 날뛰다가 망하기 쉽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대산은 야산 이 달(1889∼1958)의 직계 제자. 야산은 1944년 8월24일 후천 시대의 책력인 ‘경원력(庚元歷)’을 창제한 역학의 대가이다. 당시 그는 4년 뒤인 1948년에 선천 시대의 운세가 끝날 것을 알고 ‘치력명시(治歷明時;책력을 다스려 때를 밝히라)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음력도 양력도 아닌 새로운 책력을 만들었다.

야산에 따르면, 후천 시대는 이미 반 세기 전인 1949년에 시작된 셈이다. 선천 시대가 봄·여름이라면, 후천 시대는 가을·겨울로 이해된다. 남자가 주도권을 쥔 양의 시대가 선천이라면, 후천은 그 반대다.

그런데 ‘결실’의 시기라는 후천 시대로 접어들었다면, 20세기 후반기는 왜 그리 혼돈스러웠을까. 물론 20세기 전반기에도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며 말기 증상이라 할 만큼 세상은 극도로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 뒤에도 6·25전쟁·베트남전쟁 등 크고 작은 분규가 끊이지 않았다. 환경 오염·핵무기 경쟁 등 인류의 존립 기반마저 위협하는 수많은 문제가 뒤따랐다.내년에 동서 화합·남북 통일 되는 ‘동인괘’ 시작

홍역학회 사람들은 그같은 상황이 후천 시대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야산의 친손자인 이응문 학술간사(39)는 “선천이 오전이라면 후천은 오후이다. 48년 이후는 정오를 막 지난 시기가 아니겠는가. 정오보다 오후 2∼3시쯤에 오후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듯이, 후천 시대의 양상도 그럴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좋은 소식. 대산은 올해를 고비로 대과괘의 운세가 다하고 경진년(2000년)부터는 후천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신기한 것은 주역에 능했던 옛 어른들도 이 시기(경진년)를 예언했다는 것이다. 〈정감록〉이나 〈격암록〉 등에도 그런 암시가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내용인즉, 내년부터 세계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 세상이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먼저 동서가 화합하고 남북이 통일되는 ‘동인괘(同人卦)’가 펼쳐진 다음 온 세계가 하나 되는 ‘대유괘(大有卦)’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에서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 생각은 어떠할까. 〈만화로 보는 주역〉 〈주역강설〉 〈주역에서 얻는 지혜〉 같은 단행본을 계속 발표하며 주역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기동 교수(성균관대·유교철학). 그는 지금 세상을 ‘곤괘(坤卦)’로 풀이한다. 초효부터 상육까지 6개 효가 모두 음효로만 구성된 것이 곤괘인데, 그 중에서도 상육에 가까운 상태로 보인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그 내용인즉 참담하다. ‘龍戰于野(용전우야)면 其血(기혈)이 玄黃(현황)이로다(…).’ 즉 용들이 들에서 싸우면 그 피가 하늘과 땅에 그득할 것이라는 뜻이다. 물질 만능의 현대 문화에서 이해 관계가 상충해 서로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면 처참한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교수는 풀이한다. 그는 “홍역학회가 지적한 대과괘 역시 내가 풀이한 곤괘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과괘 역시 상황이 곤란하기로는 곤괘의 마지막 효와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주역을 전공한 최영진 교수(성균관대·한국철학)는 현 세상이 ‘비괘(否卦)’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는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태로서, 당연히 생명력이 떨어져 만물이 시들해지는 상태다. 경제적으로는 극도의 불황기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그는 “아주 어려운 상황은 지나갔으니 지금은 회복을 앞둔 비괘의 3효쯤에 해당하는 시기인 듯싶다”라고 말했다.

역시 주역 전공자인 곽신환 교수(숭실대·철학과)는 괘효에 대한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유인즉 괘상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주역이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는 국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연구 기풍이 생겼다. 지금까지 주역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이만 20명 넘게 배출되기에 이르렀다.‘제도권’과 ‘재야’ 주역 학자 교류 물꼬 터

곽신환 교수에 따르면,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한국 주역 연구사에서 주류는 ‘학술적 연구’였다. 주역은 오늘날 연구 경향이 크게 보아 학술과 점술의 두 가지 성격으로 나뉘어 있지만, 양촌·퇴계·율곡·화담·다산 등 주역에 조예가 깊었던 옛 학자들에게서는 그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았다. 그들은 주역을 경전으로 연구하면서 유사시에는 그 원리에 따라 점도 쳤다.

그러나 일제 시대 이후 주역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거의 대가 끊겼다. 19세기 후반에 수운·증산·일부 등 주역 사상을 토대로 후천 시대를 예언하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 영향을 받은 제자들에 의해 비학술적 연구가 근근히 유지되어 왔다. 당연히 학술적 접근은 약해졌다. ‘홍역학’의 시조인 야산 이 달처럼 독학으로 일가를 이룬 학자는 대단히 특이한 경우이다.

국문학자이면서 주역 해설서인 〈주역〉(나남출판)을 펴낸 김인환 교수(고려대·국문학). 그는 주역이 신비로운 베일에 싸인 책처럼 일반 대중과 멀어진 데에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김교수는 “수천 년에 걸친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주역이 오늘날에는 너무 신성시되고 있어 문제다. 그 배경에는 주역에 관해 어렵게만 쓰려는 풍토, 또 현학적으로 말해야 더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의식 구조 등이 깔려 있다. 학회가 있다지만 토론이나 논쟁을 벌이는 학자들이 몇이나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로 차단되어 온 ‘재야’와 ‘제도권’ 연구자들 사이에도 교류의 싹이 트고 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제도권. 한국주역학회 총무이사인 곽신환 교수에 따르면, 두 달에 한 번씩 열고 있는 한국주역학회의 정기 학술 대회에 앞으로 재야의 주역 대가들도 차례로 초빙해 괘에 대한 강의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컴퓨터 통신을 통한 주역 대중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최영진 교수에 따르면, 그는 현재 주역의 원리나 괘효 풀이는 물론 미리 입력된 시스템에 따라 점도 쳐볼 수 있는 주역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그는 밝혔다.

주역의 진가가 복권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주역은 단순한 점술서도 딱딱한 학술서도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능히 귀감과 지표로 삼을 만한 수신서로 읽혀야 한다. 다음은 곽신환 교수의 말이다. “역(易)의 기본 개념은 변화에 있다. 주역은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가치 있는 방향으로 변해갈 것을 권한다. 우리가 갈등하는 것은 세상이 변하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니까 그렇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우리가 먼저 변해서 세상에 대처하자는 것이 주역이다. 틀에 갇혀 있지 말고 너 자신부터 변하라는 것, 그같은 개방성을 일깨워 주는 데 주역의 참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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