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이 압박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 난징·성진용 통신원 ()
  • 승인 1999.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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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TMD=대륙 포위 전략’ 인식, 무기 경쟁 뜻 비쳐…협력 관계 유지 ‘온건 전략’도 병행
지난 3월15일 외신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털어놓은 얘기 한 토막. 얼마 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옐친 대통령이 그를 꽉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장쩌민 주석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주총리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 일화는 러시아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꺼낸 것이다. 이에 앞서 러시아 기자가 질문한 내용은 이렇다. “최근 민감한 국제 사안에서 중국을 지지하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좀더 구체적인 대응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또 앞으로 중국이 미국보다 러시아와 좀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날 주총리는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미국과의 관계도 아주 좋다. 미국을 방문하면 클린턴 대통령이 아마 나를 끌어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손은 꽉 잡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주총리가 4월로 예정된 미국 방문이 ‘마음이 편치 않은 길’이라고 밝힌 것처럼 요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특히 전역미사일방어체제 문제를 둘러싸고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냉전 기류가 형성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 대처 방안을 정기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두 나라는 또 미사일 요격 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에 일제히 비난을 퍼붓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하나의 진영으로 묶이고 여기에 대만이 참가할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중국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번 공방의 핵심 축은 미국과 중국이다. 중국은 어떤 이유로 미국의 구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일까?

우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개발에 대해 중국은 미국과 생각이 다르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수준이 아주 위협적이라는 미국 주장에 대해 주룽지 총리는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른다”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의 성능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룽지 총리는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중국이 힘을 써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도 “북한은 독립 국가인데 어떻게 함부로 간섭할 수 있느냐. 지금 세계에 존재하는 첨단 무기는 모두 미국에서 나온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느냐”라는 말로 미국을 꼬집었다.

이 밖에도 주룽지 총리는 “중국이 동남 연안에 미사일 6백기를 증강 배치했기 때문에 미국이 전역미사일방어체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미사일 6백기를 배치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라고 반박했다. 또 얼마 전에는 미국의 한 국방 보고서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성명을 발표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탄도 미사일 및 크루즈 미사일 보유가 2005년까지 대만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 일본·대만 TMD 참여에 ‘펄쩍’

중국 동남 연안에 배치되어 있다는 미사일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이 미사일이 대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영토 회복 의지가 매우 강하다. 홍콩에 이어 올해 마카오 반환을 앞두고, 지금 중국에는 마카오 반환 날짜를 거꾸로 세나가는 전광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또 뉴스 방송의 첫머리에는 마카오 반환이 며칠 남았다는 아나운스 멘트가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대만을 자기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대만 형제들에게 쉽게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주룽지 총리는 “그렇지 않으면 대만은 중국에서 영원히 떨어져 나갈 것이다”라고 못박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면서 대만에 군사 무기를 팔고, 나아가 전역미사일방어체제 구상에 대만을 포함하는 것은 중국의 통일을 가로막는 심각한 내정 간섭이라는 것이 중국의 인식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대만의 탕페이(唐飛) 신임 국방장관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당면한 중요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전역미사일방어체제 구상에 적극 참여할 뜻을 밝혔다고 한다. 물론 막대한 예산과 기술적인 문제 등을 내세워 반대하는 여론도 있어 대만의 참가 여부가 아직 공식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대만의 한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대만이 참여하는 것을 지지했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참가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은 무엇보다 전역미사일방어체제에 대만이 포함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이 증강되는 것에 대해서도 몹시 경계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일본의 군비 증강 움직임에 우려를 표시하고 “일본이 순수한 방위 전략과 평화 증진에 충실할 것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중국은 또 외교부 성명에서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핑계대고 필요 이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려 한다. 전역미사일방어체제 구상이 나라마다 군사 동맹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차원에서 무기 경쟁을 유발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전역미사일방어체제 구상으로 일본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이 계획에 대만까지 포함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동맹에 의해 포위되는 것을 커다란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주장에는 미국이 전역미사일방어체제 구상을 계속 추진할 경우 무기 경쟁을 통한 새로운 냉전 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경고도 엿보이는데, 이것은 중국 역시 가만 있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러시아가 중국을 지지하고 나섬으로써 새로운 냉전의 싹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국 “러시아와 군사 협력할 때 아니다”

그러나 예전의 냉전 시대에는 이념이 세계를 둘로 가르는 커다란 틀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나라가 국가 이익을 최고 목표로 삼아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다각적인 관계를 맺어 가고 있다. 중국 역시 죽의 장막을 걷은 지 이미 오래이고, 개혁·개방 이후 미국·일본 등 많은 국가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룽지 총리는 지난 3월15일 외신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 전역미사일방어체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갈지 러시아와 공동으로 연구할 시기에 이르지는 않았다”라며, 러시아 방문 때 주로 경제 무역 분야의 협력에 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4월로 예정된 미국 방문이 성사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앞으로 전개될 미·중 관계에 대해서도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중국은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를 강력하게 반대하면서도 자본주의 체제 맹주인 미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발길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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