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 파문에 문단 대폭팔
  • 李文宰·成宇濟·蘇成玟 기자 ()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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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놓고 성명전
‘독자를 불편하게 할 것. 독자를 매혹 시킬 것’. 프랑스 3대 출판사의 하나인 쇠유의 편집자는 좋은 문학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위와 같이 답한다. 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때 최고의 작품이다. 괜찮은 소설이려면 최소한 둘 중 한 가지 조건은 충족시켜야 한다. 쇠유의 단순 명쾌한 잣대는 최근 한국 문단 안팎을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장정일 사태’를 말할 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난 10월 초 장정일씨(34·현재 파리 거주)가 김영사에서 발간한 장편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매혹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다. 33개 시민·종교·사회단체가 모인 ‘음란폭력성 조장매체 대책 시민협의회’(음대협·공동 대표 손봉호, 이주영, 전대련)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간륜), 사법 당국, 그리고 일부 문인과 독자들은 매우 불편해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편함은 쇠유 편집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보기에 <내게 거짓말을…>은 반사회적인 음란물이다(104쪽 상자 기사 참조).

<내게 거짓말을…>에 대한 문단의 불편함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장씨가 제공한 불편함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초상을 읽어내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지나친 성 묘사가 작품성을 덮어버렸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소설이 나오고 나서 20여 일 동안 문단은 그야말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인 배문성씨(39)는 “이상한 침묵이다. 장정일 소설에 대해서는 검사만 있고 변호사는 없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문단은 지난 10월 말 간륜이 <내게 거짓말을…>을 음란물로 판정하고, 11월 초 검찰이 사법 처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급박하게 움직였다. 김영하·송경아 씨 등 신세대 작가 10명은 지난 11월3일 성명을 발표했다. 신세대 작가들은 한국 사회가 ‘장정일 죽이기’에 돌입했다고 판단했다.

신세대 작가들은 음대협이나 간륜, 사법 당국이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책을 태움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진시황과 히틀러를 거론하면서 ‘책을 태우는 자는 언젠가 사람을 태우게 된다며 히틀러가 대두할 것을 경고했던 옛 독일 작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고 밝혔다. 신세대 작가들은 창작의 자유가 소중한 이유가 그것이 창작자의 자유라기보다 그 사회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는 세계적으로는 후진국에서만, 역사적으로는 미개한 사회에서만 행해져 왔던 작가에 대한 인신 구속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신세대 작가들에 이어 30대 작가들도 이번 사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씨(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탄원서에 가까운 입장을 밝혔고(105쪽 상자 기사 참조), 문학 평론가 이영준(민음사 주간)·장은수 씨를 비롯한 젊은 작가들은 간륜이 갖고 있는 권한의 위법성을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할 예정이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백낙청 서울대 교수)도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 김남일씨(소설가)는 “장정일씨 구속 문제가 자유실천위원회 자유실천분과·문인권익분과와 직결되는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김영사, 사회적 압력에 너무 쉽게 굴복”

문단은 장정일 구속 여부 바로 옆에다 열음사 등록 취소 문제를 위치시키고 있다. 10년이 넘은 문학 전문 출판사가 번역 소설 <아마티스타> <아나이스 닌의 에로티카> 때문에 출판사 등록이 취소된 사태 앞에서 문단과 출판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간륜은 지난 7월25일 두 소설을 음란물로 판정해 제재를 건의했고, 9월12일 출판사는 등록 취소 처분을 받았다. 열음사는 “두 소설은 외설이라고 볼 수 없다. 설령 그렇더라도 변변한 해명 절차 없이 외설 판정을 씌워 출판사로서는 극약이라고 할 등록 취소의 멍에를 씌우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적 근거도 미약한 초헌법적 기관인 간륜은 폐지되어야 하며, 문화체육부는 그릇된 행정 조처(출판사 등록 취소)를 철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인·출판인·교수 들은 열음사 등록 취소를 거두어들이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작성하고 있으며, 열음사는 법적 투쟁(출판사 등록 취소 정지 가처분 신청)에 들어갔다.

일부 문인들은 음대협으로부터 출판물 판매 중지 및 사과 요청을 받아들인 김영사측에 불만을 품고 있다. 작가를 보호해야 할 출판사가 사회적 압력에 너무 쉽게 굴복했다는 것이다. 김영사측은 “출판물 판매 중지 및 회수는 작가와 사전 합의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방식이 작가를 돕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김영사는 일간지에 게재한 사과문에서 ‘출간 당시 의도했던 것과 달리 이 소설이 작품성을 떠나 소재와 묘사의 음란성 등으로 문학계의 논쟁 범위를 벗어남에 따라, 우리의 사회 여건과 독서 문화에 이 소설이 일으킬 역기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김영사측에 따르면 <내게 거짓말을…>은 만 부 발행했는데 8천부가 판매되었고 서점에 진열되었던 2천부는 회수해 폐기했다.

열음사·장정일 사태에 대한 문단의 체감온도가 더욱 낮은 까닭은, 사전 심의 위헌 판정을 받아낸 영화계, 사전 심의 철폐를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만화계와 비디오계 때문이다. 다른 장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고 있는데 유독 문학·출판 분야만 뒷걸음치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없지 않은 것이다. 70~80년대 한국 지식인 사회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문학이 90년대 들어 지나치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의식도 겹쳐 있다. 이같은 자기 반성이 열음사 등록 취소 철회 탄원서와 장정일 사법 처리 반대 성명서, 그리고 간륜 위헌 제청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 묘사 뒤에 숨은 ‘악마적 정직’

20일 동안 조용한 예열기를 거친 장정일 소설에 대한 평가는 최근 문단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내게 거짓말을…>은 장정일씨에 따르면, 작가가 90년부터 2년 터울로 발표했던 <아담이 눈뜰 때>(1990)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를 총결산하는 작품이다. 장씨는 이번 작품이 “지금까지 내가 써온 소설들의 주제가 ‘자기 모멸’이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작품이며, 따라서 이 소설은 ‘성’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106쪽 인터뷰 참조).

이 책에서 38세 유부남 조각가와 18세 여고생은 안동·대구·서울 등을 전전하며 다양한 성행위를 벌인다. ‘제이’라는 머리글자로 등장하는 조각가의 소망은, 성과 노동으로 구성되는 현대 사회에서 노동을 거부하고 성에 탐닉하면서 자기 모멸의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제이가 자기 모멸의 늪에 빠진 이유는 대령 출신인 억압적인 아버지 때문.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이 아버지의 재현이고, 아버지에 대한 고해 체계에 불과하다고 깨닫는다.

제이의 섹스 파트너 ‘와이’는 두 언니가 모두 강간 피해자라는 특수한 배경을 갖고 있다. 그는 누군가에게 강간당하기 전에 스스로 처녀성을 버리겠다고 작정한다. ‘우리’라는 동급생을 정신적 어머니로 삼고 있는 와이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피해자에서 제이에 대한 가해자로 변화한다. 결국 제이는 파리의 아내한테 돌아가고 그로부터 10년 후 와이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섹스 클럽에서 일하고, 우리는 서울에서 조각가로 정착한다.

문학 평론가 이영준씨는 <내게 거짓말을…>을 장정일 소설의 한 분수령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는 “장정일이 묘사하고 있는 소설 속의 장면들이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에 대한 야유이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우리 모두에 대한 질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지식인들에게 나는 절망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장정일 소설의 표면적 묘사 뒤에서 장정일씨의 ‘악마적 정직’을 발견한다. “스스로의 육체마저 모욕하고 저주하는 그의 얼굴은 차라리 종교적인데, 우리 문학은 아직 이러한 이중언어적 사용을 통한 영혼의 결백성 앞에 발가벗어본 적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영준씨와 다른 관점을 가진 문학 평론가들도 있다. 남진우씨는 최근 한 서평에서, 배설 문학의 한계를 모를 리 없는 장정일씨가 바로 이같은 소설을 썼다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이 많아서 외설로 보는 게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외설로 본다”라고 적었다.

‘난감하다’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중견 평론가는 “장정일씨가 기왕에 발표한 작품들을 보면 이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거짓말을…>은 메시지가 분명한 데 견주어 문학적 조정 능력이 부족했다”라고 비판했다. 간륜에서 이 책을 심의한 문학 평론가 이태동씨(서강대 교수)는 “그렇게 노골적인 표현을 하지 않아도 주제를 살릴 수 있었는데 정도가 지나쳤다”라고 말했다.
외설 판단은 독자와 문단에 맡겨야

<내게 거짓말을…>에 대한 문학적 평가가 어떻든 대부분의 문인은 장정일씨와 김영사에 대한 사법 처리는 반대한다. 문학 평론가 김병익씨(문학과지성사 대표)는 “도덕이나 관습과 같은 고정 관념을 파괴하는 것은 문학이 짊어진 당연한 임무이므로 작가에 대한 사법 처리와 출판사 등록 취소 처분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작가와 출판사가 소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수난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 서문은 ‘착잡하다. 외설 시비와 사법 처리라는 망령이 문학의 해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고 썼다. 열음사와 장정일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장정일 소설을 영화화한 장선우 감독은 “당국은 아직도 일반인의 자율적 판단 의지를 경시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극 연출가 김아라씨는 정말 근절시켜야 할 사회악은 방치하면서 작품과 작가의 손과 발을 자르는 행위는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소설가 출신 국회의원 김홍신씨도 발끈하고 있다. 드라마(<애인>)가 국회에서 거론되는 나라는 문화 후진국이라는 김의원은 “문화에 대한 이해의 척도를 사법적 기준이나 흥분된 소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독자에게 주어진 예술 향유권을 무시하는 처사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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