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 모델은 한국 경제 해결사?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한킴벌리 노동·설비 생산성, 경쟁 업체보다 각각 4배·6배 높아
유한킴벌리에서는 혁명이 진행 중이다. 유한인 스스로 뉴웨이 전략이라고 부르는 Y-K 모델이 생산 현장에 뿌리를 내리면서 직원들의 삶 자체가 근본부터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유한킴벌리 군포공장에서 안전 및 환경 컨설턴트로 근무하는 최남렬 차장은 전임 노조위원장이다. 그는 문사장이 1996년 군포공장에 예비조와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려 할 때 노조 와해 공작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Y-K 모델 홍보요원으로 변신했다.

최차장은 직원들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고 말한다. 나흘간 야간에 12시간 일하고 나흘간 쉬거나, 나흘간 주간에 일하고 사흘 쉬고 하루 교육 받는 4조 2교대제를 본격 시행한 지 5년, 우선 화제가 달라졌다. 4조 2교대제를 시행하기 전에는 생산직 노동자의 한 가지 관심은 특근을 얼마나 했느냐였다. 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 가면 참붕어가 많이 잡히고, 어디 가보니 경관이 수려하더라, 무엇을 배우니 좋더라 따위로 바뀌었다. 가족과 동료와 함께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회사 처지에서도 변화가 놀랍다. 송명식 공장장(상무)은 우선 일에 찌들어 있던 노동자 얼굴에 생기가 돌고 교육을 받으면서 점차 회사와 자신의 직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직무 교육을 받으면서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회사 경영이 어떤지를 파악하게 되면서 제안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채택되는 제안이 늘어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군포공장은 지은 지 35년이나 된 낡은 공장이지만, 세계 종이 공장 가운데 공장 용수를 가장 적게 쓴다. 킴벌리 클라크 본사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특별감사팀을 파견했을 정도였다. 오염된 물을 쓰는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이 뛰어난 절수 노하우도 직원 제안이었다.

Y-K 모델의 위력은 경영 실적이 웅변하고도 남는다. 매출액이 1996년 3천3백23억원에서 2003년 7천36억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고, 순이익은 더욱 눈부시다. 같은 기간 1백44억원에서 9백4억원으로 6배 이상 뛴 것이다. 봉급도 연평균 1백50시간 특근이 없어지면서 도입 첫해 연봉이 7% 줄었지만 다음해부터 특별성과급 200%가 더해졌고 임금은 매년 10%씩 올랐다.

유한의 군포·김천·대전 공장은 킴벌리 클라크가 세계 1백27개국에서 운영 중인 1백56개 공장 가운데 생산성이 가장 높다. 이 회사의 생산성 비결을 연구한 정규석 교수(강원대·경영학)는 유한이 경쟁 업체에 비해 노동 생산성은 4배, 설비 생산성은 6배나 높다고 분석했다. 품질 결함률도 미국 공장보다 낮고 안전 사고율도 2001년부터 제로로 떨어졌다.
충분한 휴식도 한몫 하지만 생산성 향상의 최대 비결은 역시 교육이다. 유한 노동자들은 특근 수당을 받아가며 연간 3백 시간씩 교육을 받는다. 대학생 교육 시간이 연간 6백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유한이 얼마나 교육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도입 당시 직무 교육과 교양 교육의 비중을 9 대 1로 했다가 지난해에는 6 대 4로 교양 교육의 비중을 늘렸다. 송명식 상무는 웬만한 것을 다 알아버린 ‘지식 노동자’가 늘어나 교양 교육 비중을 늘렸다며, 연간 절반인 1백80일을 쉬게 되면서 휴식 프로그램도 배려했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노사 모두 만족스러워하지만, 문사장과 노조는 Y-K 모델 도입을 둘러싸고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문사장은 부사장 시절 새 공장(대전) 근로자들은 아예 예비조 편성과 교육을 받는다는 서약을 받고 뽑았다. 당시 경영진 사이에서도 반대가 많았지만 문사장은 소수의 ‘혁명 주체 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밀어붙였다. 대전 공장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군포나 김천 공장 근로자들은 노조 와해 공작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늙어서 무슨 공부냐’는 반대도 심했다. 그 사이 경영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1996년 P&G 같은 세계 경쟁 업체들이 뛰어들어 유한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일감이 없어 한 달에 절반 가량 일손을 놓는 위기가 왔다. 그때서야 노조가 응했고, 마침내 노사 동수의 태스크포스팀이 떴다. 대전공장의 4조 3교대가 아닌 4조 2교대 안을 전격 제의한 것은 문사장이 아니라 노조였다.

송상무는 현재까지 100여 개 회사가 유한 모델을 벤치 마킹하고 갔지만,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있다고 말한다. 노사 합의로 도입을 추진했고, 노조가 노동자들을 설득해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같은 지난 5년 간의 궤적은 보지 않고 현재의 좋은 모습만 보고 간다는 것이다.

지난 3월3일 출범한 뉴패러다임센터는 Y-K 모델을 전파하기 위해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신봉호 소장(서울시립대 교수)은 센터의 목표가 단순한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높여 그 결과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Y-K 모델의 핵심인 평생 학습 시스템이 바로 경쟁력 높이기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신소장은 우선 기업이 관심을 보이면 센터의 컨설팅팀을 통해 지원하고 초기 도입을 돕기 위해 정부 지원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다. 센터의 올해 목표는 성공 모델 40여 개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풀무원의 일부 공장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네슬레도 상당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전략은 국내외 투자를 끌어들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금융 및 조세 관련 규제를 풀고 기업들의 오래된 민원인 토지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것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다. 정부는 유한킴벌리의 예비조와 평생 교육 시스템 확산을 지원할 작정이지만, 어디까지나 우선 목표는 투자 확대에 맞추어져 있다. Y-K 모델은 하나의 실험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임금으로도 기술로도 안되는, 교착 상태에 빠진 한국 경제에 Y-K 모델은 가장 근본적인 처방인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