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영향력 있는 기업 부문 2년째 1위
  • 金芳熙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7.10.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6년 이어 ‘가장 영향력 있는 대기업’으로 꼽혀
지난 10월7일자 <매일경제신문>은 삼성그룹 내부 문건 하나를 요약해 실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10대 도산 기업 분석 보고서>라는 문건으로, 매달 열리는 삼성그룹 내 기획 담당 임원들의 회의 자료였다. 최근 도산한 주요 기업들의 특성을 지적한 이 보고서에 특별히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 보도는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삼성이 일부 도산 기업을 인수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억측이 흘러나왔다. 언론 매체를 포함한 국내의 내로라 하는 기관들이 모두 이 보고서를 구하려고 달려들었다. 삼성그룹은 사태 수습을 위해 이 보고서가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언론에만큼은 수정본을 보도 자료로 제공하겠다는 당초의 계획도 철회했다. 자료 배포에 관여했던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 보고서가 관심사가 된 유일한 이유는 삼성이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삼성, 최초 응답률에서 현대에 크게 앞서

이번 조사에서도 삼성그룹은 가장 영향력 있는 대기업으로 꼽혔다. 지난해부터 기업 영향력 부문을 조사 항목으로 설치한 이래 2년째 1위다. 물론 삼성을 꼽은 사람의 비율(94.6%)은 2위인 현대(93.4%)와 거의 차이가 없다. 이 결과는 설문 제시 방식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가장 영향력이 큰 대기업을 3개만 꼽아 달라’는 질문이어서, 응답자 대부분은 삼성과 현대를 대고 나서 다른 그룹을 꼽게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삼성과 현대 가운데 어디를 맨 먼저 꼽았느냐 하는 점이다. 삼성을 먼저 꼽은 사람의 비율(55.9%)은 현대(37.8%)에 비해 훨씬 높아, 부동의 1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이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덩지 면에서 삼성이 현대를 제치고 부동의 1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할 경우 현대에 뒤지며, 매출액 기준으로는 금융 부문을 포함해야 현대에 약간 앞설 뿐이다. 그런데도 삼성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총수를 비롯한 구성원들과 그들만의 독특한 일등주의 기업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일등주의에는 대가도 따른다. 보고서 파문이 늘 끊이지 않을 정도로 삼성의 일거수 일투족은 시빗거리가 된다. 기아 사태가 삼성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3세 승계를 위한 증여 방식을 둘러싸고 시민단체들로부터도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일은 똑부러지게 잘하지만 뭔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처럼 비치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도 이런 점을 의식해 조심스럽게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기업 이미지 광고가 좋은 예다. 삼성그룹은 지난 몇년간 ‘세계 일류’라는 개념에 입각해 적극적인 기업 이미지 광고를 해왔다.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일련의 광고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대신 차갑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기업 이미지 광고의 메시지를 따뜻한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바꾸었다.

대체적으로 재계 순위와 엇비슷하게 일치하는 영향력 순위에서 또 한 가지 특징적인 사항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재계 순위 4위인 대우가 3위인 LG 그룹에 앞서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응답자 대다수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영향력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세 경영자인 LG그룹의 구본무 회장과 달리, 김회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도 늘 10위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이미지 좋은 대기업 면에서는 단연 LG그룹이 돋보인다. 순위로는 3위이지만, 지목률에서는 2위인 현대와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지가 가장 좋은 대기업 3개만 골라 달라’는 질문에 LG를 맨 먼저 꼽은 사람의 비율(15.8%)은 현대(14.9%)보다도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유한양행 ‘이미지 좋은 대기업’서 8위

이는 LG가 2세 체체로 바뀌고 나서 정보통신 사업과 같은 신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도 특별한 구설에 오르내리지 않은 점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의 이런 독특한 경영 방식은 가끔 삼성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다.

95년 LG그룹 계열사인 호남정유의 시프린스호가 좌초했을 때의 일이다. 훗날 LG그룹이 당시 사건으로 일부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한 것이 드러나 말썽이 되기는 했지만, LG그룹은 경영에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사건을 조기에 매듭짓는 데 성공했다.

당시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자사 계열사에서 시프린스 사고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계열사 한두 개쯤은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라면서 LG 배우기에 열중했었다.

LG그룹의 이미지가 유독 높은 것은 기업 이미지 광고 덕도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지속해온 이미지 광고는 ‘사랑해요, 엘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후반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자사의 기업 이미지 광고를 제작한 엘지애드 팀을 불러 특별 격려한 것도 이런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계 순위와 무관하게 이미지가 좋다고 꼽힌 대기업들로는 유한양행(8위)과 한솔그룹(10위)을 들 수 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였던 고 유일한 선생의 기업 정신과 함께 교과서적인 경영으로 유명한 기업. 여전히 좋은 기업의 대명사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해 나온 친족 회사. 한솔제지를 모체로 해서 최근 몇년간 공격적인 합병·매수(M&A)로 계열사 수를 늘려 30대 그룹에 포함되었다. 한솔그룹의 순위가 높게 나타난 것 역시 ‘청년정신’을 구호로 계속해온 기업 이미지 광고 덕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