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택민이 넘어야 할 개혁 고개
  • 卞昌燮 기자 ()
  • 승인 1997.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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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지역간 빈부차·국유기업 비효율·관료 부패 등 잘 풀어야 지도체제 안정
강력한 후견자였던 등소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에 따라 그가 남겨놓은 숱한 과제들이 강택민 체제를 괴롭히고 있다.

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래 중국은 오늘날 인플레와 도시·농촌 간의 소득 격차, 지역간 개발 불균형, 고위 관리들의 부정 부패, 범죄 증가, 물질만능 풍조와 배금주의 팽배 등 서방 자본주의 사회가 겪은 전형적인 병폐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뿐인가. 서장(티베트)과 신강(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끊임없이 분리 독립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게다가 올해 7월1일 귀속을 앞두고 있는 홍콩과 독립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는 대만 역시 강택민 체제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누구도 개혁·개방의 시계 바늘을 되돌릴 수 없다고 전망하면서도 한 가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즉 강택민 총서기를 정점으로 한 실무형 기술 관료들이 중심이 된 7인 집단 지도 체제가 앞서의 문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해 결과적으로 체제에 혼란을 불러올 경우 군부 등 강경 세력이 정국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 경우 과거 60년대에 피비린내 나는 문화혁명의 후유증으로 중국이 국가적으로 15년 가량 퇴보한 것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외교안보연구원 朴斗福 교수도 “강택민 체제가 특히 지역간 개발 불균형, 소수민족 분규,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 확보와 국유(國有) 기업 개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 정부의 최대 고민 중의 하나는 잘사는 동부 연해 지역과 못사는 서부 내륙 지역 간에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빈부 격차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12억 인구의 약 80%가 내륙에 사는 농민들인데, 이들의 소득은 광동성과 같은 연해 지역에 사는 도시 근로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같은 현상은‘누구에게나 평등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사회주의 원칙과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중국 정부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전에 등소평은 이른바‘선부론(先富論)’을 주장한 바 있다. 우선 광동성처럼 경제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지닌 연해 지역을 먼저 개발한 뒤 그 여세를 몰아 내륙의 경제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침은 취지야 좋지만 실천이 문제였다. 84년부터 본격화한 경제 개발은 여건상 연해 도시에 집중되었고, 상대적으로 농촌 지역은 방치되었다.

불균형 개발로 인구 도시 집중 부작용

도시 집중 개발 정책에 따라 도시민의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고 이들의 삶이 전례 없이 풍족해지자, 이를 부러워한 농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84년 이래 약 1억5천만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해 주택·치안·교통 문제들을 일으켰다. 그나마 도시로 빠져나오지 못한 농민과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농민들은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중앙 정부는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막기 위해 94년부터 호구 제도를 시행해, 농촌 출신이 특히 수도인 북경으로 이주할 경우 1인당 10만 위안(약 천만원)을 물도록 했다.

도시 노동자의 약 70%를 고용하고 있는 국유 기업의 비효율성 문제도 앞으로 개혁 정책이 결실을 거두려면 반드시 풀어야 한다. 국유 기업은 공장 소유권은 국가에 있지만 경영은 민간 전문가가 맡는 기업을 말하며, 소유와 경영을 국가가 맡는 국영 기업과는 다르다. 현재 중국 정부는 국유 기업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전체 종업원의 3분의 1을 감축하는 대수술이 필요하지만, 그럴 경우 대량 실업 사태가 일어날 것이 뻔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중국은 78년 이래 연평균 9.3%씩 고도 성장을 이룩해 왔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가격 체제가 무너지고 투자가 과열하면서 인플레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94년에는 소비자 물가가 전년에 비해 21.7% 올랐는데, 곡물·육류·생필품 값은 30%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인플레가 심해지자 많은 도시 노동자들의 불만을 샀으며, 그 중 일부는 반정부운동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급속한 경제 개발에 따라 사회가 풍요해지면서 일부 고위 관료들이 부정 부패에 연루된 것도 큰 문제다. 95년 7월 북경 시 당서기인 진희동(陳希同)이 부정 부패 혐의로 직위를 박탈당하고 숙청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위 당 간부가 비리에 연루되었을 정도니 중·하위 간부들의 부정 부패는 말할 것도 없다. 일부 당 간부들은 직위를 이용해 부통산 투기는 물론 범죄 조직과 결탁해 밀수까지 감행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같은 부패 현상은 중국 공산당의 도덕성을 실추시킴으로써 가뜩이나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주의의 뿌리마저 흔들고 있다. 실제로 94년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1천3백58개 농촌 당조직 가운데 36.5%만이 공산당의 원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안휘성 도능현에는 공산당원이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사회주의마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중국 정부는 94년 9월 공산당 재건을 위한 특별 조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당은 대대적인 의식 개혁 운동을 펼치는 한편 당중앙 고위직의 절반과 지방 당서기의 3분의 1을 청렴한 인사로 교체하고, 농민당원이 도시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특별 당원증을 발급하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공산당 통제력 약화도 고민거리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49년 이래 중국을 지배해온 공산당의 통제력은 전에 비해 크게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박두복 교수는“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사회를 채택한 만큼 시대가 흐를수록 공산당과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연해 지역을 먼저 개발한다는 정책에서 파생한 엉뚱한 부작용도 중국 정부를 괴롭히는 문제이다. 즉 지역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해당 지방 정부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다 보니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북경 당국은 외국인 투자 가운데 3천만달러 이하 짜리는 지방 정부가 직접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가격 결정이나 노임, 공장의 생산 계획 및 상품 구매 등에 대해서도 재량권을 허용했다. 이처럼 지방 정부의 경제적 자주권을 확대해 주다 보니 각 지방 대표들이 중앙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소수민족 독립운동은 꺼지지 않는 불씨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이 주로 개혁·개방에 따른 후유증이라면, 서장 및 신강 자치구에서 끊임없이 일고 있는 소수민족 분규는 모택동 시절부터 중국 정부를 괴롭혀온 민감한 문제들이다. 중국은 10개 성에 56개 민족이 흩어져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 12억 인구 중 약 11억이 한족이고 나머지 1억은 몽골족·티베트족·위구르족·후이족·조선족 등 55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전인구의 10%도 안되지만, 이들이 사는 지역은 전체 영토의 65%에 이른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티베트족 4백60만명이 사는 서장 자치구와 위구르족 7백만명이 사는 신강 자치구이다. 특히 신강 자치구에서는 지난 2월 초 과격 회교분리주의자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켜 사상자가 수백명 발생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서장 자치구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59년 인도에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국제 무대를 돌며 벌써 수십 년째 분리 독립 운동을 이끌고 있다. 중국 정부는‘자치는 허용하되, 독립은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소수민족들에 대해 각종 우대 정책을 통한 동화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러한 동화 정책은 라마 문화(서장)와 이슬람 문화(신강)의 이질성으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만을 한 성(省)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는 순간 무력으로 접수한다는 계획을 세운 지 오래다. 지난해 3월 초 대만 총통 직선제를 앞두고 중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력 시위를 벌인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7월1일 0시를 기해 중국에 귀속되는 홍콩은 귀속된 후에도 5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중국이 극히 신경쓰고 있다. 왜냐하면 홍콩이 중국내 다른 지역에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사의 오점으로 기록된 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부쩍 반정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강택민 체제의 큰 걱정거리다. 현재 망명 중인 왕단이나 투옥된 위경생으로 대변되는 반체제 운동가들은 당국의 엄중 탄압 정책 때문에 지하로 숨은 상태이다. 따라서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벌어지면 이들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흔히 근대 중국을 통일한 사람이 모택동이라면 그 중국을 일으킨 사람은 등소평이라고 한다.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통해 일으킨 중국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국은 경제 발전에 따른 도농간 소득 격차, 계층간 소득 격차, 지역간 개발 격차, 당 간부들의 부정 부패 등 각종 폐해를 겪고 있다.

중국 문제 전문가로서 홍콩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대만 지국장을 지낸 沈在薰씨는“오늘의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제법 몸집도 커지고 근육도 생긴 셈이다. 그러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할 머리는 아직 제대로 크지 못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정치 체제는 예나 다름없이 사회주의이면서도 자본주의 경제 체제라는 불편한‘겹옷’을 입은 중국의 강택민 체제가 산적한 난제를 극복하고 21세기로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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