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YS식 전법으로 밀어붙인다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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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이기로 대세 굳히기…YS와 담판도 노려
용들의 쟁투. 숨가쁘게 전개되어온 신한국당 9룡의 각축전이 2회전을 맞았다. 그에 따라 여권의 정치 지형도 명확해졌다. 이회창 대 반(反)이회창 그룹의 격돌. 지난 3월13일 이회창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직후 박찬종·이한동 고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이회창 전선은, 이제 ‘이회창을 제외한 모든 대권 주자의 결집’으로 나타나고 있다.

5월18일 저녁 박찬종·이한동·이홍구 고문과 김덕룡 의원, 이인제 경기지사 등은 국회 귀빈식당에서 ‘5인 회동’을 했다. 반이회창 연합군이 탄생한 것이다. 이수성 고문은 아직 경선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아서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5월15일 부처님 오신 날 조계사 법회에 참석한 김덕룡 의원이 제안해 이루어진 이 ‘대선 예비주자 회담’은, 외양으로나 내용으로나 이대표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홍구 고문이 16일 아침 이회창 대표를 만나 ‘동참’을 요구했지만, 이대표가 ‘지금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있는 마당에 대선 주자들이 따로 모임을 갖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모임 소집 여부와 시기 선택은 나에게 맡겨 달라’며 불참 의사를 명백히 했기 때문이다. 이대표의 한 측근은 ‘현 난국을 수습할 당사자는 당내 대권 주자군이 아니고, 바로 이대표 자신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회창 대 反이회창 연합군 전면전

이처럼 이회창 대 반이회창 그룹의 대립이 날카로워지자 요즘 여권에는 일촉즉발의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대선 자금 파문이 터지기 전까지 이대표를 축으로 각 대선 예비 후보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국지전’을 펼쳐왔다면, 이제는 이대표와 반이(反李) 연합군 둘로 나뉘어 ‘전면전’을 치르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한국당 대권 구도가 이토록 빠르게 명료해진 까닭은, 이대표측의 ‘선제 공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보 사태·대선 자금 파문·김현철 구속으로 이어진 국정 표류 상황에서, 이대표가 집권 여당 대표라는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해 본격적인 ‘대세 굳히기’에 돌입했고, 이것이 다른 대권 주자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이대표의 행보에는 당내 경쟁자들의 도전을 일거에 제압하겠다는 결의가 짙게 배어 있다. 신한국당 최대 계보인 민주계의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 결성 움직임에 대해 두 차례나 분파 행동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경고했고, 다른 주자들의 경선 전 대표직 사퇴 요구를 한마디로 묵살했다. 또한 이대표는 세 불리기라는 다른 대선 주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흥길·진경탁 특별보좌역 외에 분야별 특별보좌역 10명을 ‘보란듯이’ 새로 선임했다. 12명에 달하는 특보단은 전임 이홍구 대표 때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규모이다.

이대표는 5월25~28일 중국을 방문한다. 대표 취임 후 첫 해외 나들이인 이번 중국 방문에서, 이대표는 강택민 국가 주석 등 중국 당·정 최고위급 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대표측은 이번 중국 방문으로 ‘신분 격상’ 효과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이대표에게는 당내 다른 대권 주자들과 격이 다름을 대내외에 과시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대권 주자들 진영에서조차, 이번 이대표의 중국 방문을 3당 합당 직후 YS의 소련 방문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는 점이다. 당시 YS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면담한 것을 계기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했고, 정적인 박철언씨를 제거하는 기회로 삼았다. 따라서 이번 중국 방문도 당내 대권 경쟁에서 이대표가 저만큼 줄달음치는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사실 최근 이대표의 행보는 92년 YS의 행보와 상당히 닮아 있다. 당시 YS는 권력 누수를 우려하는 노태우 대통령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박철언·이종찬·박태준 등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했고, 끝내는 집권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와 관련해서 이대표의 또 다른 측근 인사는 “이대표는 YS 밑에서 감사원장·총리를 지냈고, 지금은 당 대표를 맡고 있다. YS 밑에서 정치 경험을 쌓았다고 봐야 한다. 이대표는 누구보다 YS를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YS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했다”라고 말했다.
이대표측 “이미 절반 승리” 자신만만

92년 YS가 ‘선 민정계 격파, 후 민정계 포섭’ 전략을 취했듯이, 이대표가 요즘 민주계의 집단적 움직임에 대해 파상 공세를 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대표는 정발협의 집단 행동만큼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명백히 밝혀왔으며, 아예 이를 제도적으로 못박아 버렸다. 신한국당 당헌·당규 개정위원회는 16일 각종 명목의 후보 지지 모임 결성과 지지 서명을 금하는 규정을 신설키로 했다. 이에 따라‘시기가 무르익으면 정발협은 후보 추대위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서석재 의원(정발협 간사장)의 공언은 당규를 위반하지 않고는 실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정발협 및 대권 예비 주자 5인 회동 등에서는 이대표측이 주도하는 이러한 당헌·당규 개정 작업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요컨대 ‘이대표만 혼자 뛰고, 나머지는 가만히 앉아 있으란 말이냐’는 것이다. 이대표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한, 이처럼 당헌·당규 개정을 둘러싼 이대표측과 반이회창 연합군 간의 전쟁은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벌어질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대표 진영은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 이대표는 당내 반이 연합군이 반격을 가해 올 때마다 총재인 ‘YS의 언명’을 방패 삼아 경선 일정을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 가고 있다. 즉 ‘YS가 분파 행동 자제를 촉구하면서 당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고 말했는데도 이에 반발하는 것은 당인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이대표의 논리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민주계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회창 대 반이회창 연합군 대결로 압축된 현재의 여권내 역학 구도 변화로 볼 때, 일단 이대표의 이러한 강공 드라이브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대표 진영의 전반적인 평가는 ‘절반의 승리’라는 데에 모아지고 있다. 벌써 이대표 진영 내부에서는 집권 이후 대비 및 국정 운영 프로그램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이대표 진영 내부에서 ‘유사 권력’이 생겨나고 있으며, 각자의 역할을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대표 진영이 앞으로의 당내 경선을 그만큼 낙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보 사건·대선 자금 파문·김현철 구속으로 국정 장악력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YS로서는 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는 위기로부터 탈출할 통로가 꽉 막혀 있다. 이대표가 최근 들어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당내 반이회창 진영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이러한 정세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궁지에 몰린 YS를 집중 공략해서 일찍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92년 당시 YS가 노태우 대통령을 상대로 그랬듯이.

대세 굳히기에 돌입한 이대표측은 현재 반이회창 전선의 급속한 확산을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할 고비’라는 반응이 주류이다. 한보 정국을 거치면서 YS의 힘이 몰락한 것에 반비례해서 이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고, 당 대표로서 사실상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다른 주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대표는 앞으로 반이회창 연합군과의 직접적인 싸움을 전개하기보다는, YS와 담판해 위상을 강화하는 쪽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대표의 대세 굳히기 성공 여부에서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정발협이다. 92년 노대통령의 탈당 및 중립 내각 구성을 계기로 민정계가 사분오열했듯이, 97년 대선에서 YS가 과연 중립을 지킬지, 그리고 YS가 중립을 지킨다고 해서 민주계가 뿔뿔이 흩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특히 이대표에 대한 민주계의 반감은 정발협에 대한 경고 발언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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