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日流’가 없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5.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대중 문화 맥 못춰…문화적 배타성 증명하는 것일 수도
올해 1월1일부터 일본 대중 문화에 한국 시장이 전면 개방되다시피 했다. 개방한 지 4개월여. 한국 문화계는 파급력이 그리 크지 않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이다. 한국 문화가 일본에 진출하는 기세에 비하면 오히려 미미하다는 것이다.

가장 파괴력이 크리라고 예상되었던 분야는 대중 음악. 신규 발매 음반도 많았고, 그동안 거의 묶여있다시피 한 만큼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음반사 집계에 따르면, 1만장 이상 팔린 음반은 나카시마 미카의 <러브> 등 10종도 안된다.

이에 대해 한국 음반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와 맞물려 아직 지상파 텔레비전이 일본 가요를 자유롭게 방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일본 가수가 국내 방송에 출연하거나 공연 실황을 중계할 때는 지상파 방송이 가능하지만, 그 외는 아직 개방 대상이 아니다. 일본 가요가 방송을 타기 전까지는 대중적인 음악보다는 마니아층 위주로 시장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더욱 조용하다. <내 사랑 사쿠라코> <퍼스트 러브> <도쿄 러브스토리> 등 케이블을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일본 드라마는 대부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2월부터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SBS 드라마 플러스 <고쿠센>이 케이블 치고는 높은 시청률인 4%대, <트릭>은 6%대, <사토라레>는 9%대를 넘어섰다.

한국 영화 점유율 72%는 부끄러운 자화상?

국제 영화제 수상작이거나 연소자 관람 가여야 한다는 제한 없이 개봉이 가능해진 영화도 그다지 파괴력이 커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배틀 로얄> 시리즈,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가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어느 분야를 돌아보아도 걱정했던 파괴력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대중 문화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섣부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본의 대중 문화가 분화한 취향에 소구하는 전문화 단계에 이미 접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영화 평론가는 “한 영화의 관객이 5백만명을 넘어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니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회가 분화할수록 관심과 취향이 다양한 것이 마땅한데 그런 수준의 세몰이가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촌스러운 일 아니냐는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는 “심지어 시장이 죽어가는데도 뛰어난 작가들이 한 나라의 문화적인 역량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타이완이나 일본의 뛰어난 작가와 비슷한 수준의 감독이 한국에 과연 있는가”라며 거품론을 제기했다.

실제 일본 영화는 이마무라 쇼헤이·기타노 다케시·구로사와 기요시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물론 그들의 작품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자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한 누구도 일본 영화의 역량을 얕보지 못한다.

또한 일본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국적과 스타일의 영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큰 극장을 확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기타 다양한 영화들의 유통망이 합리적으로 정비되어 있어 그만큼 쉽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이다. 한류도 개방된 유통망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다양하게 접한 외국 문화는 곧 그들의 자양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 단 세 편이 극장가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거둔 ‘상반기 한국 영화 점유율 72%’라는 위업은 어쩌면 부끄러워해야 할 기록인지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