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힘 빼야 골 가뭄 풀린다
  • 손장환 (중앙일보 기자) ()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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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 ‘작품 만들기’ 주력…악착 같은 투혼 없어
이회택-차범근-황선홍-최용수-이동국.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특출한 골잡이였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이 무척 부러워한 선수들이다. 일본 축구는 세계의 벽에 부닥칠 때마다 ‘일본에 황선홍이나 최용수 같은 선수가 있었으면’ 하고 한탄했다.

한국 지도자들은 축구 자질이 보이는 유소년 선수를 거의 대부분 공격수로 키웠다. 반면 일본 지도자들은 자질이 뛰어난 선수를 미드필더로 키운다. 나카타 같은 선수가 탄생한 배경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은 몇몇 스타급 선수가 이끌어 가는 스타일이었고, 일본은 탄탄한 허리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 위주의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2002월드컵 이후 스타일이 달라졌다. 히딩크는 ‘멀티 플레이어’로 대변되는 올라운드 플레이로 한국 축구의 체질을 바꾸었다.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과정에서 ‘걸출한 스트라이커’는 없었다. 설기현·안정환·이천수·박지성을 스트라이커로 볼 수는 없다.

대표팀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골 결정력 부재’라는 해묵은 지적이 나온다. 월드컵 멤버를 총동원해도 골이 터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결론은 스트라이커가 없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그렇게 만들었다.

목표 의식 잃은 월드컵 4강 멤버 뽑지 말라

지난 월드컵 일곱 게임에서 8골. 평균 1골이 겨우 넘는다. 득점 선수는 모두 7명. 안정환만이 2골을 넣었을 뿐이다. 안정환은 골을 잘 넣기는 해도 상대에게 위협을 주는 전통적인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처진 스트라이커 개념에 적합한 선수다. 설기현·이천수·박지성도 윙플레이어이지 최전방에서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사실 월드컵 4강은 ‘극약 처방’이었다. 한국 축구의 체질이 바뀌었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표팀에 국한된 얘기다. 선발된 20여 선수를 1년 반 동안 히딩크 감독이 갈고 닦아서 만들어 놓았다. 한국 축구 전체가 그렇게 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만일 한국 축구의 갈 길이 이런 것이라면 전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학교 축구와 클럽 축구, 프로 축구에서도 같은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선수를 갖다 놓아도, 훈련 시간이 짧더라도 바로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눈앞의 아시안컵이나 친선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또 ‘월드컵 4강’의 환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대표팀의 골격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월드컵 멤버에 매여서는 안된다. 과감히 선수 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나이가 많거나 목표 의식을 상실한 월드컵 멤버는 쉬게 해주자.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스트라이커가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힘들다. 득점력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어깨의 힘을 빼는 것’이다. 월드컵 이후 뭔가 멋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모습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넣어야 하겠다는 악착 같은 맛이 없다. 지저분한 골이라도 멋진 골과 똑같은 한 골이라는 의식을 갖기 전에는 골 가뭄이 계속될 것 같다.

사실 축구 팬들의 높아진 의식도 골 가뭄에 한몫을 하고 있다. 밀집 수비를 하는 약팀을 상대로는 ‘단순무식한’ 공격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지금의 한국팀은 매우 다양하고도 정밀한 공격을 시도한다. 월드컵 4강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과거로 완전히 회귀하면 안 되지만, 한국 축구가 정말로 세계 4강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한국 축구가 독일 월드컵에서 16강에만 진출해도 성공이다”라는 히딩크 감독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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