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특보 "보안법 없애고 언론 개혁한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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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대통령 정치특보 인터뷰/“정의장 입각하면 당 의장은 신기남”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여당이 된 후 정치적 비중이 가장 높아진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문희상 대통령 정치특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 대권 주자들을 행정부로 끌어올리는 대신 문특보를 청와대와 당 사이를 연결하는 창구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노대통령 스타일을 잘 아는 데다, 총선 이후에도 수시로 노대통령과 교감하는 문특보를 통해 참여정부 2기를 전망해본다. 인터뷰는 5월7일 오후 여의도에서 이루어졌다.

노대통령이 총선 후 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한 발짝 뒤에서 보는 스타일로 바꿔보겠다’고 했다던데, 무슨 의미인가?
통치 스타일 얘기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지난 1년간 대선 불복 심리 때문에 노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고, 요만한 의혹만 있어도 그걸 까뒤집어서 부풀리고 발목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었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미가 된 것이 대통령의 언행이었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려다 보니 대통령이 너무 많은 얘기를 하게 된 것인데, 앞으로 너무 자주 나서거나 간여하는 것을 좀 자제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적인 행정 업무는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굵직굵직한 개혁 과제만 맡겠다는 식의 업무 분담이 아니라 단지 스타일 변화라는 의미인가?
핵심은 그런데, 하지만 업무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 2백50개의 로드맵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진두 지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행의 진두 지휘까지 대통령이 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길 지도를 실천하는 쪽에서는 대통령이 많이 나서지 않는 변화가 감지될 것이다.

구체적인 복귀 후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대통령 복귀 후 청와대 개편을 먼저 하고, 6월5일 국회 개원하고, 총리 인사 청문회와 인준 절차를 거치고, 개각하고….

대통령 입당은 국회 개원 전에 하나?
대체로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입당은 기정 사실로 되어 있는데, 그 일로 너무 눈치 볼 필요 없다.

새 총리 지명도 국회 개원 전에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원하고 곧바로 인사 청문회를 해야 하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청와대가 개각 함구령을 내렸지만, 먼저 불을 지핀 당사자는 노대통령이다. 총선 끝나자마자 여당 지도부 불러다 이런저런 구상을 밝힌 게 발단 아닌가?
대통령은 사실 급할 것이 없다. 오히려 급한 쪽은 이 쪽(열린우리당)이다. 입각 얘기는 주로 김근태 의원 쪽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5월11일 원내대표를 뽑는데 거기에 왜 유력 후보가 안 나오는지 설명해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입각 제의를 받았고,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동영 의장의 경우는 사실 개각 발표가 날 때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대권 후보 한 명에게만 제안했을 리 없다’며 기자들이 들쑤시는 과정에서 결국 정의장 얘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개각은 빨라야 6월20일 지나서다. 그 전에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번에 대권 주자를 다 입각시키는 것이 시기나 모양새로 보아 적절한가?
대통령이 잘 하는 것이라고 본다. 대권 꿈이 있는 사람은 일부러 원해서라도 정부 경험을 가지는 게 좋다. 대통령이 장관들 연수시킬 때나 수석보좌관 회의 때 ‘내가 해양수산부 장관일 때…’ ‘내가 장관 한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하면서 얘기를 시작하면 그 말에 무게가 확 실린다. 그리고 또 하나 강조하고픈 게 있다. 사람들은 이번 총선이 의회가 민주 세력으로 교체된 첫 번째라고들 하는데, 나는 두 번째로 본다. 4·19 직후 총선에서 자유당이 2명 되고, 나머지가 다 민주당 출신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센 완벽한 교체였다. 그런데 제일 먼저 온 게 민주당 분열이었다. 총리 지명부터 시작해서 민주당 신구파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싸웠다. 그 분열이 결국 5·16을 부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 1백52석은 기적 같은 일이지만, 잘못하면 금방 분열의 유혹이 온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여권의 단결이다. 대통령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내가 통합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조직의 생리상 두 대권 주자는 갈등의 핵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앞으로 1, 2년 당에서 뽑아내야지 안 그러면 서로 싸우다 둘 다 후보가 못될 수 있다. 먼저 훈련시키고, 또 2기생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자꾸 잠룡들을 키우자는 원려가 담긴 것이다.

당사자들은 지금 행정부에 들어가는 게 좀 이르다고 보는 것 같다.
지금 들어가는 게 둘 다 좋다. 김근태 의원이 원내대표를 또 하면 반드시 역풍 분다. 정동영 의장도 영남에서 원망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지금은 빠져야 한다. 자기들 생각하고 실제 상황은 다르다.

김혁규 총리 카드는 그대로 가는가?
그건 인사 문제라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김혁규 총리 얘기가 나오는 것은 대통령이 도지사로서의 행정 경력, 그 중에서도 CEO로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던 점을 높이 사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얘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지친 것 같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2대 과제가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인데, (김 전 지사가) 그 샘플 아닌가.

한나라당에서는 부산시장·경남도지사 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그것도 전략인데…. 그럼 도움 안될 사람을 뽑으란 말인가? 그 말 자체가 상생의 정서에 어긋난다.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인준 안해 준다면 국민의정부 때 JP 총리 인준을 6개월 넘게 안해준 것과 뭐가 다른가. 상생이란 비록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아도 일단 인준은 해주고 일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를 놓고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1백52석 가진 여당의 대통령이 소수 당에 무릎 꿇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상생인가?
당에서 몇 명이나 입각하게 되나?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임명된 지 얼마 안된 각료도 있고, 적성도 고려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가기는 하겠지만, 많이는 아닐 것이다.

당·청 가교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더 할일도 없다. 대통령이 평소 하시던 대로 하면 나는 날짜나 잡고 하면 된다. 그동안 당·정 분리 상황에서도 사실 협조 잘해 왔다. 대통령은 100번도 넘는 모든 정책 관련 회의에 당의 정책위의장과 정조위원장들을 배석하게 했고, 자리도 대통령 오른쪽에 관료들이 앉으면 왼쪽 첫 번째 자리, 부총리급 자리에 늘 앉게 했다. 총리, 당 대표,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참석하는 고위 당정회의도 대통령이 탈당하면서 중단되었지만, 입당과 동시에 곧바로 복원될 것이다.

대통령과 대표 간의 주례회동도 복원되나?
현재까지는 합의된 사실이 없다. 다만 정동영 의장이 ‘당이 요청하겠다’고는 했다. 그러면 대통령이 안 들어줄 이유가 없다. 내 생각에.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매주 화요일 국무회의가 끝나고 대통령·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이 매번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 당 대표가 참석하는 방법도 있다.

정동영 의장이 입각할 경우 차기 당 의장은 어떤 인물이 적합한가?
(정의장 입각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가정법으로 얘기하면, 당헌상 전당대회 차점자인 신기남 의원이 되지 않겠나?

전당대회를 다시 하자는 얘기도 나오던데.
그러려면 의장 입각 정도가 아니라, 상임중앙위원이 모두 사표를 내고 새로운 얼굴로 시작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신기남 의원이 ‘나는 새 전당대회 안한다’ 그러면 승계할 수밖에 없다. 그 정치적 판단은 신의원 몫이다.

당내 단합을 강조하지만, 실용이냐 개혁이냐를 놓고 당 일각에서는 힘 있을 때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힘 있을 때 개혁하자는 얘기는 맞다. 4년 내내 개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를 봐라. 둘 다 개혁을 썩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개혁에 관해서는 문민정부가 더 잘했다고 본다. 사회적 비용은 덜 들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너른 과제를 먼저 했기 때문이다. 하나회 숙청, 안가 허물기, 공무원 재산 공개 등이 다 반응은 민감하게 나오지만, 사회적 비용은 별로 안 드는 그런 사정 부분 아닌가. 이에 반해 국민의정부는 국민연금·의보통합·교육개혁같이 사회적 비용은 많이 들면서 성과는 20~30년 후에나 나올 개혁 과제들을 먼저 손대면서 진이 쭉쭉 빠지고 일찌감치 개혁 동력을 잃었다. 이처럼 앞으로 1~2년간 개혁 과제를 차근차근 추진하되, 17대 국회 개원하자마자 그 자체로 별로 실익도 없으면서 논란만 많은 그런 문제에 먼저 매달리지는 말자는 얘기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 폐지했다고 우리 국민 소득이 팍 늘어났다 이런 건 아니지 않은가. 또 언론 개혁 했다고 느닷없이 삶의 질이 월등히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 개혁 등도 1~2년 안에는 추진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다만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17대 개원 직후 추진할 사안은 무엇인가?
자기 몸부터 추스르는 것이다. 그건 여야가 금방 합의할 수 있다. 돈 안 드는 선거, 정치 개혁 등을 빨리빨리 추진해야 ‘저 국회가 뭐 좀 하려나 보다’고 국민이 신뢰를 보낸다. 지금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6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걸 빨리 처리해서 재래 시장 육성법도 만들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약도 좀 풀고, 그래서 경제가 으쌰으쌰해져야 ‘이제 우리 (개혁) 좀 해도 되죠?’라고 말할 수 있고, 힘도 붙는다. 이렇게 사고하는 게 실용주의다.

당 안에 민노당과의 개혁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조바심도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 없다. 민노당은 민노당의 한계가 있다. 이번에는 국회 진출에 의미가 있고, 그들이 집권하려면 또 우로 한참 와야 하지 않겠나. 국민적 공감대가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다. 조금씩 늘어나겠지. 우리가 개혁 안 한다고 하는 게 아니잖은가. 민노당식 개혁 방식이 있고, 우린 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당 안에 세력화를 위한 움직임이 있다.
그래봤자다. 1백52명 중에 몇이나 되나, 10명 정도지. 그렇다고 그 사람들 민노당에 갈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다양한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가면 송사리들이 긴장해서 더 건강해진다고 하더라. 문제는 언론이 있는 그대로 안 쓰고 자꾸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여권 분열은 나라 망치는 길이라는 걸 언론도 유념했으면 좋겠다.

이라크 파병 문제가 당·정 간에 조율이 필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총선 전에는 솔직히 ‘총선 때까지만 안 갔으면…’ 했는데, 지금은 자기들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져 여론이 흉흉한 데다 우리 파병 예정지에서 요청선가 뭔가가 안 와서 자연스레 미뤄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의 변화가 있으니까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굳이 재검토 얘기 꺼낼 필요도 없다.

집권 2기에 들어서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가 적잖이 나온다.
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 분이나 노대통령이나 생각이 비슷했다. 대미 관계나 대북 문제는 결국 북핵 문제가 먼저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해결되어야지, 남북 문제만 먼저 진전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근태 대표가 ‘특사로 가셔서 남북 정상회담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니까 김 전 대통령이 ‘그건 그렇지가 않아요’ 하시면서 그 이유를 쭉 설명하시더라. 국익에 관한 얘기여서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지금은 때가 아니고, 언젠가 그럴 때가 올 테니까 그때까지 서로 신뢰를 쌓으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요지였다. 노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다. 실속 없이 괜히 정상회담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저쪽에서 비료만 주면 필요한 걸 응하겠다는 제의가 온 적이 있다. 나는 ‘이거 큰 건이다’ 싶어 보고했는데, 노대통령은 ‘조건 걸지 말고 그냥 보내세요’라고 해서 놀랐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밖에서 보면 남북 문제가 별로 시원한 게 없다 싶겠지만, 안으로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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