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살 뺀 기업, ‘빈혈’ 로 고생한다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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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업체 상당수 인력 감축 후 생산성 떨어져…‘충성심에 기반한 경영’ 새로이 각광
최근 미국의 델타 항공사는 격심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구조 재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구조 재조정이라고 그럴듯한 말을 쓰기는 했지만, 직원 1만2천명을 감원하는 것이 그 계획의 전부였다.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고객을 다른 항공사에 빼앗겨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전화업체인 나이넥스사 역시 대규모 감원 계획을 실행에 옮긴 후 오히려 떠나간 고객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데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정리 해고와 일시 해고가 관행화한 미국에서는 기업에 위기가 닥치면 일부 종업원의 책상에 분홍색 딱지(해고 통지서)를 붙이는 것을 최우선 해결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대규모 인원 삭감 계획이 발표되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뛰는 것도, 회사 경영이 호전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회사를 옮기는 데에 익숙한 종업원들 역시 이런 결정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미국의 평균 이직률과 실업률을 고려하면, 미국 기업들은 창업한 지 4년 이내에 직원의 절반을 내보내는 셈이 된다.

더욱이 90년대 초반에 접어들면서는 리엔지니어링과 다운사이징 같은 경영 기법까지 등장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업무 과정 혁신이나 정보 기술 분산화를 뜻하는 이 새 조류의 공통점은 불필요한 인원이나 부서를 색출하는 것이다. 이 기법들이 80년대 후반부터 경쟁력 위기에 처한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최근 들어 90년대의 대규모 인원 삭감 붐이 당초 기대했던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미경영협회(AMA) 조사에 의하면, 90년 이후 인력 규모를 줄인 업체 중에서 경상 이익이 증가한 기업은 절반 이하이며, 생산성이 향상된 회사는 그보다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량 기업, 집단 기억상실증을 조심하라”

1차적인 원인은 기업 이미지 저하를 들 수 있다. 인원 삭감 계획을 발표하면 해당 기업이 자사가 위기라는 것을 공식으로 인정하는 셈이고, 이를 알고 불안해진 고객들이 그 회사를 외면하는 예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분석하는 경영학자도 있다. 갑자기 인력을 줄이는 기업은 일종의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는 가설이다. 이런 기업은 인원 삭감으로 말미암아 회사에 꼭 필요한 특정인의 기술·지식·판단을 잃어버리거나 기업 전체의 정보 흐름이 뒤바뀌게 되어, 그동안 고객에게 제공해온 서비스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주로 인원 감축의 대상이 되는 중간 관리층은 말단 사원과 경영진을 연결하는 신경 조직과 같아 아무나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설명도 있다. 그래서 일부 기업에서는 인원 감축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을 방지하기 위해 제품 개발의 역사를 컴퓨터에 담아 두기도 하고, 해직자들과 인터뷰한 결과를 자세히 기록해 두기도 한다.

인원 감축으로 인한 부작용이 널리 알려지면서 종업원들의 충성심을 기업 성장의 핵심 요소로 복원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얼마 전부터는 ‘충성심에 기반한 경영(royalty-based management)’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그 성공 사례도 자주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레스토랑 체인인 칙팔라사는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 회사의 이직률은 4~6%로, 패스트푸드 업계 평균 40~60%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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