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중소기업 ‘숨통’
  • 安錫敎 (한양대 교수·경제학) ()
  • 승인 199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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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협 적극 참여로 경쟁력 회복 돌파구 찾아야
지난해 말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북한 간의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정부는 남북한간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발표하였다. 이 방안은 기술자의 방북, 북한 지역내 사무소 설치, 시설재 반출 및 시범 경협 사업 등과 같은 조처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이 일관성 있게 추진된다면 남북한 간의 경제 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 방안이 발표되고 난 이후 북한에 진출할 의사를 갖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대북 접촉이 활발해질 조짐을 보였다. 북한 당국 역시 공식으로는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내 기업의 대북 진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나타난 상황을 보면 국내 기업의 북한 진출은 대기업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진출 유형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며, 가능한 한 국내 중소기업의 경협 참여를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내의 상황을 보아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 구조 조정이 절실한 실정이다. 지난해 들어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으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 구조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이 지배하는 소수 업종에 의해 유도되고 있는 반면에, 국내 중소기업의 부도율은 9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관심

머지 않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여 그들의 상품에 대한 국내의 수입 문호가 개방될 때,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은 심각한 충격을 받을 소지가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중소기업의 북한 진출은 이들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산업 구조 조정 차원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형태의 남북한 경제 교류는 새롭게 떠오르는 중화 경제권의 위협 속에서 남북한 모두 공동 운명체적 생존 전략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내부 사정에 비추어 보아도, 한국의 중소기업과 활발히 교류하는 것이 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 경제는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보임에 따라, 무엇보다도 일반 주민들의 생활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북한 당국이 농업·경공업·무역 활성화에 최대의 정책적 관심을 두겠다고 밝힌 것도 바로 그러한 절박성의 소산이다. 따라서 북한 처지에서는 가능한 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교류를 통한 경공업 제품 생산 및 무역에 커다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엽적인 요인일 수도 있겠으나, 북한으로서는 주민에 대한 심리적 자극을 극소화하기 위해서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선호할 수 있을 것이다. 선봉·나진지대처럼 특정 지역에 한정시켜 국내 대기업을 유인하는 정책보다는, 다수의 중소기업에 대하여, 예를 들면 신의주에서 선봉에 이르는 조·중 국경 지역에 대한 투자 및 임가공 무역을 활성화하는 것이 북한의 ‘경공업 혁명’을 위해서도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남북한 관계는 최근 경수로 문제에 봉착하여 다시 긴장되는 국면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지난해 정부가 천명한 남북한 경제 교류 활성화 방안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일관성과 원칙을 견지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있는 대북 진출에 대하여 정부나 국민 모두가 더 높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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