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역 “작은 것이 아름답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04.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소기업들, 거듭되는 실패 속 ‘성공’ 쌓아…신뢰 바탕으로 나진·선봉도 ‘선점’
2년 전 중소기업 대훈코리아를 설립한 전범열 사장(35)에게 지난 세월은 모험의 나날이었다. 그의 모험은 유행과 거리가 먼 북한 여성(여공)들에게 유행에 민감한 한국 20대 여성들의 의류를 만들도록 한 것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 원사와 부속품을 사들여 인천항을 통해 남포항으로 보내기를 수차례. 전화도 팩스도 통하지 않는 북한이기에 매번 홍콩과 유럽을 거쳐 힘겨운 교신을 주고받아야 했다. 그는 북한으로부터 ‘도착한 원사는 잘 받았으며, 황해도 송림공단 내의 한 편직물 공장에서 여공들이 옷을 가공하고 있다’는 답신을 받았다. 문제는 유행이었다. 공장 현지 방문이 불가능한 악조건 속에서 그는 몇 차례 홍콩·중국으로 날아가 북측 관계자들을 만나 ‘유행 지도’ 작업을 벌여야 했다.

그로부터 2년 세월이 흐른 지난 1월18일, 공들인 결과물이 남포항을 출발해 인천으로 들어왔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화물을 뜯어본 그는 복받치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북한 여성들은 불안 속에 살아온 이 젊은 실업가에게 안도와 희망을 한꺼번에 선물했던 것이다. 9천여 벌의 여성용 스웨터들은 한결같이 바느질과 뒷마무리가 깔끔해 숙련된 노동력의 냄새를 물씬 풍겼다. 이만하면 한국의 숙련공이 만든 옷이라 해도 감쪽같이 속을 정도였다.

그는 이 의류를 이미 계약한 일부 전문 매장과 동대문 시장에 풀었다. 도매업자들의 반응도 한결같이 좋았다. 전사장은 지난 2년간 헛수고하지 않았다는 보람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는 기쁨이 샘솟았다.

북한, 대기업 행태에 실망

“이 사업에 손대기 전에 코오롱그룹 의류수출팀에서 10년간 근무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 섬유류의 명성이 인건비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점점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기회는 북한이라고 판단했다. 위탁 가공 결과를 보니 북한과 손잡으면 세계 시장에서 우리가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전범열 사장은 앞으로 대북 합작을 통해 선진국 섬유시장을 한국이 다시 장악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대훈코리아의 대북 위탁 가공 사례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이루어낸 성공담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우·쌍용·LG·삼성 등 주로 대기업체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대북 위탁 가공 분야에 중소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들어 북한의 경수로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관계가 경색돼 전반적인 남북 교역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와중에서도 중소기업의 교역 추진에는 그동안 핵문제와 연계했던 빗장을 풀었다. 3월22일 나웅배 통일 부총리는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시범적인 위탁가공 및 중소 규모 생필품 교역 등 교류 사업을 핵문제 진전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확대할 방침이고, 청와대에도 이대로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수로 건설 문제로 남북한 당국이 팽팽한 긴장을 보이던 3월 하순께 북한측 관계자를 만나고 돌아온 한 기업인은 북한의 물밑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한다. 그동안의 대기업 방북이 말만 무성했지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이제는 말많은 잔치보다는 소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성사 가능한 것부터 적극적으로 해나가자는 북한측의 채근을 들었다는 것이다.

씨피코국제교역 노정호 사장(33)은 북한측의 그같은 변화를 읽어내면서 집요하게 교역 확대를 추진하는 대표적 중소기업가이다.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은 나진·선봉 지대. 이를 위해 그는 이미 북한과 독특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진·선봉 지대 공장부지에 둘러칠 철조망 80㎞를 공급하는 대가로 나진·선봉 지대 땅 4만㎡ 이용권을 획득한 것이다. 그는 지난 1월6일 인천항을 통해 북한으로 철조망을 보냈다. 제공 받은 땅에는 오피스텔을 건립키로 하고, 현재 국내 남광엔지니어링에 건물 설계 용역을 준 상태이다. 오피스텔이 건립되면 국내외 투자 진출 업체들의 숙박·사무 시설로 분양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근 북경에서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 도착한 철조망에 대한 답변을 듣고 앞으로 추진할 오피스텔 건립 사업까지 논의하고 돌아온 노사장은, 자신이 감지한 북한측의 기류를 이렇게 말한다.

“북한은 평양축전 행사가 끝나는 4월 말에 나진·선봉 지대 전면 개방을 선언하고, 대외 개방에 전념하겠다는 방침을 전해 왔다. 당이나 정무원쪽, 무역상사원 모두 같은 얘기를 반복했는데, 그들은 특히 올해 초 대기업 방북단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희망 섞인 얘기만 잔뜩 하고서는 한국에 돌아가 언론에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안돼 있어 전망이 어둡다’는 식으로 말해 배신감마저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측 태도가 ‘앞으로는 나진·선봉도 중소기업들과 물꼬를 터보자’는 쪽으로 변하는 것을 감지했다고 말한다. 노사장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음은 물론이다. ‘중소기업체 대표 방북단 구성’이 그것으로, 현재 그가 추진하는 사업 계획이다. 북경에서 북한측 책임자급 인사들과 이 문제를 깊숙이 논의했다는 그는, 5월 초순 방북을 목표로 현재 통일원과 협의하고 있다.

이처럼 이름 없는 중소기업들이 독특한 방식을 통해 나름대로 대북 위탁 가공과 직접 투자 길을 뚫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중소기업은 소규모 교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일원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대북 물자 교역에 참여한 업체는 4백여 개에 달한다. 이들의 교역 총액은 7억달러 가량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1회성 교역에 그쳤다. 거래를 꾸준히 지속해 온 업체는 30여 개로 한정된다(위 표 참조).

오랫동안 대북 물자 교역을 추진해온 중소기업들은 숱한 시행 착오와 애로를 겪어야 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남북관계의 또 다른 역사이며, 철저히 계산된 경제 행위와는 다른 민족 내부 거래의 애환을 담고 있다. 대북교역 중견 전문 업체인 효원물산 김영일 사장(54)이 털어놓는 경험담과 고민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26세 때부터 무역업에 뛰어들어 미국·유럽·일본 등과 플라스틱류를 전문으로 거래해 오던 김사장이 북한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90년이었다. 홍콩에 있는 중개상이 국내에 북한산 시멘트를 반입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는 주택 2백만 호 건설 붐으로 시멘트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중개상 말만 믿고 북한산 시멘트를 2만t 주문했다. 그러나 북한측에는 그만한 시멘트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겨우 5천여 t밖에 안되는 물량을 반입하는 데 그쳤는데 중개상의 농간으로 2억여 원 적자를 보았다.

교역 장애물은 한국 통관 행정

김사장은 이때야 비로소 대북 교역은 북한측 인사와 직접 접촉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일본으로 날아가 조총련계 회사 사장을 만나 가까스로 북한 상사원과 접촉해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 만남이 전화 위복이 되어 북측은 신의를 지키고 피해를 보전해 준다는 뜻에서 다른 사업을 직접 주겠다고 제의해 왔다. 북한측 명태 천t을 공급해 줄 테니 대금으로 비디오(VCR) 7백50대와 텔레비전 7백50대(합계 39만달러어치)를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구상무역이었다. 그는 통일원의 승인을 받은 후 91년 10월 마산항에서 북한 명태를 실은 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다. 마산 세관은 이 명태가 북한산이라는 증거를 대라며 통관시켜 주지 않는 것이었다. 경제기획원과 수산청은 당시 폭등하는 명태 가격 안정을 위해 세관에 조속히 풀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통일원이 개입해 지침서를 내려보냄으로써 명태는 통관됐다. 그러나 마산 세관에 ‘압류’된 지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수입 당시 1㎏에 천원하던 명태값이 2백원으로 곤두박질친 뒤였기 때문에 이를 팔아 세관 창고비를 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이은 실패로 실의에 빠졌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측과 직교역 루트를 확보한 기업이 드물었기 때문에 그 루트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쿄에서 북한쪽 파트너를 만나 손해만 본 얘기를 하며 계속 교역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는 같은 동포로서 자금이 적다고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거래선을 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너무도 순박한 그들의 태도에 깊은 신뢰를 느꼈다.”

세 번째 교역 품목은 호두였다. 호두 백t을 함경남도 원산 칠봉리 호두농장에서 보내왔는데 이번에도 말썽이 생겼다. 그들이 항구에서 선적할 때 서류를 필사본으로 작성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타자 글씨가 아니어서 의심스럽다며 약 3개월 동안 불려다니며 세관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정보기관에서까지 미행이 따라붙었다. 일본·중국·홍콩을 오가면서 북한 사람을 만나는 사실을 의심했던 것이다.

“결국 북한측이 원산지 증명 확인서를 보내 온 뒤에야 의심이 풀려 통관했지만 정월 대보름을 겨냥해 들여온 호두가 3개월간 묶인 바람에 또 헛장사하고 말았다. 정보기관도 내가 정부 승인 아래 움직이는 대북 무역업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야 미행을 그만두었다.”

거듭되는 교역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북 교역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북한측 상사원과 거래하면서 그동안 세계 각국과 무역할 때는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과 신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북측은 내가 어려운 시기에 남북 교역에 열성을 보이다 계속 손해만 보는 것을 동포 입장에서 외면할 수 없다며 로열젤리 독점 공급권을 주었다. 한국양봉협회와 협의해 들여오는 데 성공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이익을 남겼다.”

그는 이후 북한산 당면을 임가공 형식으로 품질 지도를 거친 후 들여와 두 번째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워낙 실패가 많았기 때문에 총 수지를 따지면 5억여원의 적자를 면치 못한다. 소규모 무역업자로서 막대한 투자 재원을 날리고 기진맥진해 있지만 그는 속으로는 결코 손해보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손해를 봤어도 북측 때문에 손해본 적은 없다. 처음 직교역을 튼 상사원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악조건에서 고투하는 나를 도우면서 교역해 왔기 때문에 나에게 그보다 더 값진 재산은 없다는 생각이다. 이게 바로 26년 간 무역 경험을 통해 얻은 북한 시장과 다른 나라 시장의 차이이다.”
김사장은 현재 두 가지 새로운 대북 교역 사업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에 싼 잣이 풍부하다는 데 착안해 잣죽 가공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고, 전복·대합 등 해산물 합작 가공공장 설립도 추진중이다. 가공품은 모두 한국에서 소화하는 조건이다. 또 그가 지난해 12월22일 반입하려 했던 북한산 참깨 3천t이 통일원의 긍정적 답변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위장품일지도 모른다는 농수산부의 우려로 무산됨에 따라 북한측 휴전선 일대에 참깨를 계약 재배해 들여오는 쪽으로 사업 계획을 전환했다고 한다.

5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고 중견 남북교역업자로 우뚝 선 기업인답게 김사장은 동료 중소기업인과 정부에게 할 말이 많다. “아직까지 남북 교역의 책임은 당사자인 개인이나 기업이 질 수밖에 없다. 처음 시작하는 중소기업인들은 실패 위험을 줄이기 위해 경험 있는 파트너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정부는 부처간 이기주의 때문에 중소기업의 남북 교역을 가로막는 일이 많은데, 통일원의 힘이 지금보다 강력해져야 할 것이다.”

효원물산의 이같은 경험은 비교적 오랫동안 대북 교역을 해온 다른 중소기업들도 비슷하게 겪었던 시행 착오라고 한다. 남북 교역이 허용된 지 6년이 지났어도 물자 교역과 초보적인 위탁 가공조차 더디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시행 착오를 거듭하며 북측과 터온 작은 물꼬는 남북이 실리를 위주로 서로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데 밑거름이 된 측면도 있다. 남북한 사이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는 있지만 중소 규모 경제 교류에 한해서만은 양측 모두 빗장을 풀고 있다는 것에서도 그 점은 느껴진다. 서로 대화는 안했어도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정책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속마음은 내비친 셈이다.

중소 규모 교류에 대한 남북한 양측의 실리적 접근은 서로간의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이 어떤 형태의 투자를 원하는지는 93년 11월에 발표한 ‘나진·선봉 투자 대상 안내’에 나타나 있는데 전체 68개 제조업 중 식품가공업?의류겱탁?등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되는 33개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도 대부분이 노동 집약적인 전기·전자 업종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연구원 이석기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업종은 그동안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키워온 것으로서 지금은 고임금 추세에 따라 구조 조정을 겪고 있는 업종들이다. 실속 있는 남북 경협에서 중소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밝힌다.

‘북한 물건 사주기’ 아량 베풀어야

그러나 아직은 잠재력만 갖고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남북경협이 계속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중소 규모의 물자 교역과 위탁 가공을 확대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남북경협의 주종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북한측도 적극 호응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권장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런 분위기가 실속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명분과 체면을 살려주는 정책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으로부터 10여 종의 물품을 반입한 적이 있는 한 중소 무역업자의 지적은 그런 의미에서 귀를 기울일 만하다.

“정부는 우리측 생필품을 북한에 적극 공급하라고 하는데 저쪽은 달러가 없다. 그렇다고 무상으로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가 생필품 교역을 잘 하려면 북한 물건 사주기 정책도 함께 펴야 한다. 북한이 우리에게 자랑할 수 있는 품목은 농림수산물인데 현재 대부분이 교역 제한 품목으로 묶여 있는 상태이다. 이 빗장을 함께 풀어야 교역도 되고 교류도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