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한국보다 교도소 선진국
  • 김은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간사) ()
  • 승인 199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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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빌리비드 교도소 현장 탐방기/정치범 단식 때 의사 대기…재소자들, 옥중 노점 운영도
내가 필리핀을 찾은 것은 지난 1월24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제1회 ‘인권과 개발에 관한 아태지역 사회사업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나는 필리핀 감옥을 방문하기로 했다. 마침 필리핀 정치범들이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있었다.

방문하는 날 아침, 회의를 주관한 단체 관계자로부터 감옥을 방문할 때는 긴 바지를 입고 노출이 심한 옷을 피하라는 주의사항을 전달 받았다. 법으로 제한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성에 굶주린 죄수들이 달겨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의 감옥과 면회실 구조로 미루어 보아 창살이 웬만큼 넓지 않으면 복도 중간까지 팔도 뻗칠 수가 없을 터인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휴양지 분위기…평상시 사복차림

아침 8시쯤 숙소 앞에서 짚차를 개조한 차를 타고 달린 지 세 시간여만에 목적지인 감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서니 확 트인 하늘을 인 흰 건물이 당당하다. 깃발만 좀 요란하면 영락없이 성이나 휴양지 호텔 모습이다.

감옥 입구에서 신분증(여권)을 검사 받고 가방과 카메라는 다 맡겨 놓았다.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소지품은 여자 간수가 꼼꼼하게 검사했다. 돈이나 음식, 사소한 작은 물품은 제한이 없고, 아마 마약이나 총기류가 있나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듯했다. 물병은 마개를 따서 냄새를 맡아보고 몸수색까지 한 뒤 그들은 쇠창살 문을 열었다. 5m쯤 되는 짧은 복도와 쇠창살 문을 둘 지나서 다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이윽고 감옥 마당에 들어섰다.

밝고 고즈넉한 햇살 아래 펼쳐진 그곳의 모습은 작은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가운데로 울타리를 친 밭이 있고, 군데군데 대충 지어놓은 단층 마을회관 같은 집도 서 있었다. 그 사이로 닭이 뛰어다녔다. 담을 따라 이어진 회랑 그늘 아래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보자 쫓아와 나무로 만든 보석함·필통·액자 따위를 사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러닝셔츠에 반바지차림이다. 한쪽 노점상 같은 데서는 무언가 익힌 음식도 팔고 있었다.

감옥 안에 이렇게 잡상인을 두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내하던 필리핀 단체 사람은 그들이 바로 죄수라고 말했다. 그들이 범죄자임을 알 수 있을 만한 단서는 몇몇 사람들 팔에 새긴 문신 정도였을 뿐, 죄수복을 입지 않고 있어 면회 간 사람이나 다를 바 없이 자유스러워 보였다. 죄수복은 필요한 경우에만 입힌다는 것이다.

정치범들은 한곳에 모여 2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다. 큰 방에 침대를 죽 늘어놓고 누워 있는 그들 머리맡 벽에는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다른 쪽 벽에도 지지 단체에서 보내온 플래카드와, 이번 단식을 다룬 신문기사들이 붙어 있었다. 작은 텔레비전 앞에는 외부에서 보내온 쌀부대 몇 개가 쌓여 있었다. 한국의 양심수들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그들 옆에는 의사들이 체중계와 응급 약품을 벌여 놓고 앉아 있었다. 평복차림인 의사들은 정치범을 지지하는 외부 의사 그룹인데, 이렇게 매일 들어와 단식하는 사람들을 보살핀다는 것이다. 단식 기간에는 외부 민간 단체도 매일 방문해 소식을 확인해 가고 바깥 세상 소식도 전해주며, 언론에 이들의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정치범들과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고, 한국의 양심수들도 기억해 달라는 당부를 남긴 채 감옥을 나섰다. 필리핀 마닐라 교외의 문티루파에 위치한 신(新)빌리비드 국립 감옥 방문은 이렇게 끝났다.

정치범 2백91명 석방을 내걸고 벌인 전국적인 단식 투쟁에 동참했던 신빌리비드 감옥 정치범 48명은 2월13일 41일 간의 싸움을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얻어낸 것은 정치범 25명 석방과 그들의 존재에 대한 라모스 정부의 인정이었다. 그간 라모스 정부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계엄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필리핀에는 정치범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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