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쇼’ 월드컵 대차대조표
  • 金尙益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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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예상 총수입 4천8백28억원…“스포츠가 아니라 이미 거대한 산업”
장난 같은 계산이지만,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축구 대회 때 국제축구연맹(FIFA)은 ‘여러분은 최소한 3백만달러 이상 가치가 있는 지상 최대의 쇼를 관전했다’고 자랑하기도 했으니, 웃어 넘길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월드컵 축구 대회는 올림픽과 함께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규모의 스포츠 행사이자 가장 값비싼 상품이다. 이런 큰 경기를 안방에 편안히 앉아 텔레비전으로 공짜 구경하는 재미도 재미겠지만 정작 돈더미에 올라앉는 것은 이 대회를 개최하는 FIFA이다.

2002년 월드컵 순이익은 1천9백91억원

FIFA는 월드컵 대회 운영도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 때부터 상업성을 대회 유치국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추가한 것이다. 아벨란제 FIFA 회장의 말처럼 ‘축구는 한 스포츠 종목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이 되어 버렸다.

월드컵 축구 대회는 주최측으로서는 밑질래야 밑질 수 없는 스포츠 이벤트이다. 왜 그런가. FIFA의 재무 규정이 아벨란제의 스포츠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FIFA는 대회 운영에 필요한 재원 조달과 경비 지출 등 모든 재정 활동에 대해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개최국의 축구협회나 대회조직위원회는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

월드컵 대회의 총수입은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94년 미국 월드컵 기준). 즉 △입장권 판매 △텔레비전 방영권 판매 △경기장 광고권 판매 수입이 그것이다.

FIFA는 무조건 총수입의 25%를 떼어 4년간의 경비와 축구발전기금으로 사용한다. 한편 대회조직위원회는 총수입의 9%를 경비로 쓸 수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입장권 판매 수입의 30%를 경기장 임대료 및 세금으로 사용한다. 또 텔레비전 방영권 판매 수입의 2%를 비상 예비비로 한다.
이와 같이 FIFA 기금과 대회 운영 비용을 수입의 일정 비율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월드컵 축구대회는 항상 이익을 남길 수밖에 없다. 순이익 중 70%는 본선 참가국에 배당하며 나머지 30%는 대회조직위원회 몫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예상대로,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릴 경우 총수입을 4천8백28억원으로 추산할 때 FIFA는 1천2백7억원을 기금으로 가져가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대회와 관련된 경비를 1천6백30억원으로 어림잡고 있으므로 총수입에서 FIFA 기금과 지출을 뺀 순이익 규모는 1천9백91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FIFA가 만년 흑자를 기록할 수 있도록 재무 규정을 세우고, 축구라는 게임 자체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벨란제 회장과 블래터 사무총장이라는 돈벌이의 귀재들이 궁합을 잘 맞추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월드컵의 3대 수입을 늘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냈다.

월드컵 대회의 총수입에서 텔레비전 방영권 판매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년 이탈리아 대회 때부터 입장권 판매 수입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78년 아르헨티나 대회 때 1천2백90만달러이던 텔레비전 방영권 수입은 94년 미국 월드컵 대회 때 9천1백만달러로 8배 가까이 늘어났다.

텔레비전의 위력은 올림픽 대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바이브 심슨과 앤드루 제닝스의 저서 <올림픽의 귀족들>에는 텔레비전 덕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적혀 있다. ‘60년대 IOC의 재정 상태는 적자로 엉망 진창이었다. 60년 로마 대회는 3억리라나 적자였다. 그러나 희망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다. 세계의 텔레비전 방송사가 구원의 손길을 뻗쳐 준 것이다.'

아벨란제는 입장권 판매 수입과 텔레비전 중계권 판매 수입을 올리기 위해 월드컵 대회 본선 진출 팀의 수를 늘리는 방법도 구사했다. 아벨란제 자서전의 다음 대목을 보자.

‘월드컵 참가국의 숫자를 늘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FIFA 이사회를 설득하는 논리적 근거는 재정적인 수치에 있었다. 16개국이 참가할 경우 25일 동안 32게임을 치르게 된다. 24개국이 될 경우에는 30일 동안 52게임을 치르게 된다. 종전에는 6게임을 치르고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이제는 7게임을 치르게 된다. 참가국 숫자를 계획대로 늘리면 수입은 기하학적으로 늘게 된다.’
아벨란제, 세계적 축구 프로그램에 관심

아벨란제는 축구장의 펜스도 광고판으로 활용했다. 경기장을 빙 둘러가며 스폰서의 간판을 붙일 수 있도록 경기장은 반드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야만 했다. FIFA 대회가 펼쳐지는 경기장은 반드시 깨끗이 해둘 것. 이것도 FIFA의 규칙이었다.

아벨란제는 왜 지난 22년간 ‘아마추어리즘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축구의 상업화에 매달린 것일까. <국제축구연맹 80년사>에는 아벨란제 회장이 전세계적인 축구 개발 프로그램에 매우 큰 관심을 쏟아 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FIFA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재정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아벨란제 회장은 그래서 사업가로서의 폭넓은 경험과 자유로운 발상을 제공했다.’

아벨란제는 아마추어 스포츠 정신이 넘쳐 흐르던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축구는 거대한 산업’이라는 발상을 월드컵이라는 세계 규모의 단일 브랜드로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22년간 쌓아 올린 스포츠 산업론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스포츠를 과연 진정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뼈아픈 질문 앞에 서있다.
만약에 2002년에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면,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한 경기의 값어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95년 6월에 한국개발연구원이 추정한 2002년 월드컵의 총수입은 4천8백28억원이다. 그런데 아벨란제는 98년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 팀을 32개로 예정하고 있으므로 예선 경기와 결승전을 포함해 모두 64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총수입을 경기 수로 나눈 한 경기의 값어치는 무려 75억4천3백75만원(약 천만달러)이나 된다. 이를 전후반 90분으로 다시 나누면 1분에 8천3백80만원짜리 경기라는 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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