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문제'는 아직도 살아 있다
  • 張榮熙 기자 ()
  • 승인 200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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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책임론' 재연될 듯 ··· 금융감독원 특별반 보고서가 변수
금융감독원의 별도 조직으로 지난해 12월 발족한 ‘대우그룹 분식 회계 조사·감리 특별반’(특별반)은 아직도 ‘활동’중이다. 이 특별반의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이 BFC 문제를 취재하고 있다고 하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BFC가 대우 부실과 어떤 연결 고리를 갖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물론 특별반의 역할은 대우가 회계 처리를 제대로 했는지, 대우를 실사한 회계법인들이 제대로 조사했는지를 감리하는 데 있다. 이 관계자는 “활동 시한이 당초 계획인 6월 말보다 다소 늦추어질 것 같지만, 7월 중에는 끝낼 작정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을 거치기 전까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대우가 회계 장부를 상당 정도 분식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런 흔적은 삼일회계법인 등 4개 회계법인이 채권단에 제출한 실사 보고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12개 사에 대해 대우측이 밝힌 순자산 가치는 14조원이었다. 하지만 최종 실사 결과 순자산 가치는 마이너스 29조원으로 둔갑했다. 회계 감사 기준과 실사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려 43조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대우가 자산을 부풀리고 부채를 줄이지 않았다면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빠르면 오는 7월 말께 특별반이 내놓을 감리 보고서는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우가 왜 부실해졌는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우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시점은 1998년 초로 거슬러올라가지만, 청와대가 대우 문제로 아연 긴장하기 시작한 때는 그 해 10월 말께였다. 이 때부터 매일 그룹 자금 사정을 챙기는 비상 작업에 돌입했는데, ‘대우가 위기에 휩싸였다’는 노무라증권 보고서가 나온 직후였다.

대우는 물론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다행히도 1997년 5월께 김회장이 불원간 외환 위기가 닥칠 것 같다며 자금 확보를 지시해 그 해 말 3조원을 비축해 놓았지만, 이는 겨우 서너 달 연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빚 독촉에 몰린 대우가 무리수를 거듭한 것은 1998년 5월께부터. 이 때부터 1999년 6월까지 1년1개월간 대우는 회사채와 기업 어음을 무려 37조원어치 발행했다. 이율도 18∼35%로 평균 25%에 달했다. 한 대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대우가 원리금을 갚기 위해 조달해야 했던 돈은 하루 평균 무려 1조2천억원에 달했다. 심지어 2조5천억원이나 된 때도 있었다.
1999년 7월께까지 대우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정부의 ‘창구 지도’덕분이었다. 정부가 대우를 부도 내지 말라며 금융기관들의 팔을 비틀어댔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1999년 6월께부터는 더 이상 금융기관들을 닦달할 수 없었다. 먹히지도 않았다. 기가 막힌 것은 정부가 사실상 1년 가까이 시간을 주었는데도 대우가 돈 되는 자산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재벌들이 구조 조정에 열중한 것과는 판이한 태도였다. 급기야 청와대는 대우에 최후 통첩을 보냈다.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를 물은 것이었다. 청와대에 불려간 정주호 당시 구조조정본부장(현 대우자동차 사장)은 10조원이라고 대답했지만 대우 내부에서는 적어도 40조원은 필요하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지지부진하던 워크아웃, 최근 급물살 타

그러나 이 국면에서도 정부는 대우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정부는 과연 대우로 인한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워크아웃이라는 강공책을 펼 수 없었지만 대우에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몰아쳤다. 그래서 나온 것이 7월19일의 구조 조정 계획. 이 계획에서 눈길을 모은 것은 단연 10조원어치 담보 제공 건이었다. 10조원 담보를 믿고 금융기관들은 다시 어렵사리 4조원을 지원했지만, 이 돈은 눈녹듯 없어졌다. 이미 대우는 웬만한 돈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한 ‘괴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1999년 8월26일 정부가 대우 계열 12개 사를 워크아웃 처리키로 결정한 것은 그 방법 외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우 워크아웃을 주도한 것은 경제 장관들이 아니라 당시 청와대 김중권 비서실장이었다.

그로부터 10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대우 워크아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기본적으로 대우 계열 12개 사가 주채권 은행과 모두 워크아웃 협정을 맺은 시점은 지난 3월. 이렇게 난항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우 워크아웃은 채권 규모가 무려 6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부실 기업을 회생시켜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복잡한 채권 구조 탓도 컸다. 대우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 가운데 워크아웃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이른바 ‘비협약 채권자’ 비율이 일반적인 워크아웃 경우보다 2∼3배 가량 많은 14%나 되었던 것이다. 소액 주주와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이성규 사무국장은 “그동안 이런 장애물들이 워크아웃의 순항을 막아 왔지만 이제부터는 빠르게 추진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전망이 가능한 것은, 우선 해외 채권단과의 문제가 매듭지어졌기 때문이다. ‘대우 계열 구조조정 추진 협의회’(협의회)는 해외 채권단 대표들과 올 1월과 3월 두 차례 협상해 대우 채권에 대한 평균 지급 비율을 39∼40%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협의회는 총 채권 55억 달러(잠정치) 가운데 17억 달러를 8월 말까지 지급할 계획이다.

현재 (주)대우와 대우중공업에서는 이른바 클린 컴퍼니와 배드 컴퍼니로 나누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가령 대우중공업은 조선 부문과 종합 기계 부문이 각각 독립해 깨끗한 회사로 재출발하며, 부실 채권은 부실 청산 회사(배드 컴퍼니)로 집중시켜 털어버리게 된다. (주)대우도 무역과 건설이라는 2개의 깨끗한 회사로 거듭난다. 두 회사는 8월과 9월에 각각 분할 등기를 마칠 계획이다.

여기에 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대우자동차 입찰이 있다. 협의회는 6월26일 입찰을 희망한 5개 업체로부터 1차 제안서를 받아 6월 말께 우선 협상 대상자 한두 업체를 지정할 작정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9월께는 대우차에 새 주인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올 9월께는 대우의 주력 회사들인 대우차·(주)대우·대우중공업 매각과 분리 작업이 끝나 사실상 대우 워크아웃이 큰 줄기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9월까지의 여정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이것이 지니는 의미는 대우 워크아웃의 첫 단추를 끼운 데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정작 12개 회사들이 빚을 갚을 정도로 회생해 기업으로서 독자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 때부터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대우 부실로 인한 금융기관의 후유증도 더 지켜보아야 할 대목. 이미 대우 채권단은 28조원의 채무 조정을 끝낸 상태다. 현재 추정되는 채권단의 손실 부담률은 50%. 빌려준 돈의 절반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추가 부실이 얼마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투신사 등 금융기관들은 대우 담보 기업어음에 대해 자산관리공사로부터 80%밖에 지급받지 못하게 되어 20%(8천억원)의 예상치 않은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정부가 100% 지급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80%라는 지급 비율도 따지고 보면 정부가 자산관리공사를 종용해 높여 놓은 것이다. 자산관리공사는 실사 결과 부실이 커지고 담보 가치가 하락했다는 ‘정당한’ 이유를 들어 적정 지급 비율이 51%라고 버텼던 것이다.

사실 이런 분란은 예고되어 있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대우측이 내놓은 10조원의 담보 가치는 턱없이 부풀려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보다 주가가 떨어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난해 7월 이미 현금화할 수 있는 담보 물건은 2조원대에 불과했는데 이를 정부가 묵인했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당시 금융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지상 명제였겠지만, 두고두고 분쟁거리가 될 소지를 남긴 셈이다.

한 경제학자는 “문제는 우리가 대우 문제 수습 과정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 해결은 김 전 회장을 비롯해 대우 부실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응하는 조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중 전 회장이 이끌었던 대우는 해체되고 있지만, 대우 문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는 7월 말께 특별반의 감리 결과가 나오면 대우에는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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