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보다 외교" 오부치 구상
  • ()
  • 승인 1998.08.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쇼쿤>에 공표한 오부치 총재의 ‘정책 구상’ 요약
오부치 자민당 총재는 자신이 집권하면 어떤 정책을 추진해 갈 것인가를 일본 월간지 <쇼쿤(諸君)> 8월호에 공표했다. <쇼쿤>에 기고한 그의 정책 구상을 요약했다.<편집자>


나는 학생 시절 세계 십수 개국을 여행했다. 여행한 나라들의 정치·경제·문화를 접하면서 그때의 경험을 언젠가 일본 정치에 활용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외무장관을 지낼 때 미국·영국·러시아·한국 등지를 정력적으로 돌아다니며 일본 외교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외교 우위’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느 모임에서 한 재계 인사로부터 서양 제국은 외교가 6∼7인 데 비해 내정(內政)은 3∼4의 비율이다. 반면 일본은 외교는 2 정도이고 내정이 8이라고 지적하는 말을 들었다. 일본은 항상 내정이 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를 내정의 부속물 정도로 여기는 것이 기본적 인식이다.

국제 사회에서 무거운 화제로 등장한 것이 핵 문제이다. 미국의 핵우산에 갇힌 일본이 핵실험을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핵 억지력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안정되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해 가면서 핵병기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가야 한다.

지금 미·일 동맹을 위험하게 여기는 소리가 들린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을 경유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콤플렉스이다. 전후 50여 년 동안 역사상 예가 없는 강고한 2국 관계를 구축해 온 미·일 관계에 좀더 자신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외무장관 취임 때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으로부터 축전을 받고 곧장 답례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내가 그때 37년생이라고 하니까 그도 37년생이라고 밝혔다. 그후 뉴욕에서 만났을 때 그가 “37년생은 좋은 정치가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말해 내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37년생이다”라고 받아넘겨 함께 웃은 적이 있다.

“총리는 최소한 4년 역임해야”

총리대신은 최소한 4년은 해야 한다. 영국 대처 총리는 11년 반,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14년 동안 권좌에 있었고, 독일 콜 총리는 16년째로 접어 들고 있다. 외교에는 어느 정도 지속성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 문제도 외교보다 내정을 중시해 왔기 때문에 발생한 면이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금융기관의 호송 선단 방식이다. 최근 공공 투자가 경기 부양에 효과가 없는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런 주장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경제기획청의 최신 모델에 따르면, 공공 투자를 1조 엔 추가하면 유발 수요를 포함하여 국민총생산(GDP)이 1조3천2백억 엔 늘어난다고 한다. 다만 이런 수요 자극책만으로 일본 경제의 전망이 밝아진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본을 둘러싼 조류 변화 가운데 하나가 낮은 출생률과 노령화이다. 이것은 곧 노동력과 자본 투입 확대 면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 기술 수준 향상과 효율성 상승이 경제 성장의 원천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소득세 과세 최저 한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최저 한도는 영국이 1백5만 엔, 미국이 2백45만 엔, 일본이 3백61만 엔이다. 국민의 비판이 있겠지만 법인세를 낮추고 과세 최저 한도도 낮추어야 한다.

일본 근대사를 보면 첫 번째 개국은 페리 제독에 의한 개국이었고, 두 번째 개국은 맥아더 원수에 의한 개국이었다. 지금 제3의 개국이 미국의 귀중한 조언에 의해 이루어지려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미국의 감세(減稅) 요구 등에 피해 망상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엔의 국제화에 대해서는 대찬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엔을 매력적인 통화로 육성할 수 있는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

나는 세 가지 말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하나는 ‘국덕(國德)’인데, 이것은 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씨가 즐겨 쓰던 말이다. 또 하나는 통산성 간부가 남긴 ‘아름다운 일본, 품격 있는 국가’라는 말이고, 와세다 대학 교수가 들려 준 ‘부국 유덕(富國有德)’이라는 말도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하시모토 전 총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지만, 그를 옆에서 보면서 참으로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왔다. 다케시타 씨는 정계에 커다란 발언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책을 실현하는 데 지금의 국회의원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케시타 씨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나카소네(전 총리) 씨는 <요미우리 신분>에 핵 문제에 대해서 자기 입장을 강조한 바 있는데, 내 개인으로서는 나카소네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가지야마(전 관방장관) 씨와는 본래 마음이 통했지만, 특히 정치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총리가 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총리가 된 뒤에 무엇을 하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항상 ‘2010년에 실현하고 싶은 일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왔다. 첫째, 풍요함을 보장하는 경제력 확보. 둘째, 확실한 생활 보장. 셋째,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의 명확한 역할 분담. 넷째, 충실한 외부 체크 기능. 다섯째, 마음의 연대를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 구축. 여섯째, 사회적 통일성 확보 등이다. 정치가로서 책임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5∼6년이라고 생각하고 이 목표를 향해 정진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