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영환 박사의 '판문점 사건 공모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8.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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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영환 박사, ‘총선 북풍’ 남북 지도부 공모설 처음 제기
96년 4·11 총선 당시 북풍 사건에 대해 ‘남북 지도부 공모설’을 공식으로 처음 제기한 사람은 고 조영환 박사(전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이다. 지난 4월 숙환으로 타계한 조박사는 총선 직후인 96년 5월 〈월간 조선〉(6월호)에 기고한 ‘북은 신한국당의 승리를 원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공모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또 관련 증언 등을 수집해 자신의 가설을 보완한 ‘1996년 총선 직전에 북한은 왜 판문점 사건을 일으켰을까?--김영삼과 김정일의 밀월 그리고 배반?’이라는 제목의 글을 같은해 11월에 펴낸 자신의 책 〈매우 특별한 인물, 김정일〉에 실었다. 또 조박사는 지난 3월 〈연합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4·11 총선 전에 김영삼 대통령의 친지가 대북 밀사로 베이징에 파견되었다”라고 남북 공모 의혹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 논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가설 1·2·3은 생략).

“북한, 신한국당 출신 대통령 원했다”

‘마지막으로 충격적인 가설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예상했던 대로 여소 야대가 되었더라면 15대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여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야당이 득세했을 것이다. 신한국당은 이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상상하기 어려운 인물을 영입하고 당명을 바꾸는 등 ‘최후의 발악’을 했다. 즉 신한국당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한으로 밀사를 보내 공안 정국을 만드는 것을 포함해 안보에 민감한 한국 국민들의 투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암시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 4가 근거가 없다 해도 북한이 의도적으로 신한국당의 승리를 선호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한국당이 대선에서 유리하면 북한도 이득이 크다.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가 9명이든 11명이든 그들은 북한 문제를 DJ나 JP처럼 연구했거나 다루어 본 일이 없다. 미국 스칼라피노 교수는 최근 ‘차기 한국 대통령은 세계화되어 있고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의 수세적인 상태에서는 오히려 북한을 잘 모르고 이념적으로 흡수 통일에 가까운 신한국당 후보가 이념적으로 타협할 여지가 없는 북한이 생존하는 데 더 유리하다. 이 점에서 북한은 DJ나 JP보다 신한국당 출신 대통령이 상대하기 쉽다고 믿는다.’

조박사는 자신의 가설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 정보 제공자나 증언을 글에서 일부 익명으로 처리해 소개했다. 조박사의 글에서 추정컨대 그중 한 사람은 그가 96년 5월 중국에서 만난 ‘한국 정부 기관원 3명’ 중 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조박사는 또 귀국해서 만난 ‘한국 국방계의 최고 지위에 있었던 아무개 장군이 이 파북 밀사의 인명까지 알려 주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조박사는 ‘96년 10월7일 이 가설을 뒷받침할 또 다른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북한에 주재했던 미국계 사업가가 북한에서 이에 관한 말을 듣고 필자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적었다. 또 조박사는 이 글의 각주에서 ‘이 글을 쓴 후 정부 기관의 한 보좌관도 선거 전에 비밀 접촉이 있었다고 귀띔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흥미롭게도 이 ‘미국계 사업가’는 나중에 김양일씨(전 미주 한인식품상총연합회장)로 확인되었다. 김씨는 청와대 지시로 이루어진 현대그룹의 ‘밀가루 북송 사업’을 중개한 장본인이다. 김씨가 조박사에게 전한 말을 옮기면 이렇다.

“북한에서는 ‘우리가 신한국당에 유리하게 행동했으므로 김영삼 정부로부터 좋은 소식이 올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 … 북한 지도급 인사에게 ‘남한에 손 좀 벌리면 얼마든지 식량을 보내줄 텐데 왜 가만 있냐’고 물으니 ‘괘씸해서 굶으면 굶었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한다. 북한 지도자들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지도급 인사는 왜 한국이 식량을 지원했는데도 괘씸하다고 했을까?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한국이 무력 시위의 대가로 지원키로 한 물자의 절반만 주고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 아닐까?

세 번 방북한 조박사는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이루어진 〈연합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끝내 익명의 다른 제보자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파북 밀사는 북한이 아니라 베이징으로 파견된 대북 밀사이며 △아무개 장군은 전 국방부장관 ㅇ씨이고 △정부 기관의 보좌관은 ‘아무개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라면서 “대북 밀사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친지로서 나이가 많다는 것 외에는 더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교수의 집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 대북 밀사와 관련해 “조교수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직계 친척을 가장한 기관원’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당시 베이징에 간 YS의 친지 또는 안기부 간부로서 성이 김씨인 인물’이 바로 판문점 북풍을 중개한 대북 밀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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