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 선거구·정당 공천 ‘뜨거운 감자’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8.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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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광역 의원 수 축소 ‘기정 사실’…돈 안드는 선거 만들기도 개혁 과제
전남 곡성에 사는 김 아무개씨는 요즘 신경이 온통 서울로 쏠려 있다. 지방 행정 관료 출신인 그는 평생 얻은 지식과 경험을 자신의 고장을 위해 써볼 요량으로 지방 선거에 출마할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군수를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광역 의원 숫자가 준다는 소문이 들려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광역 의원 수가 줄면 희소 가치가 높아지니까, 공천받기 어렵고 돈 많이 드는 군수직 대신 차라리 광역 의원이 낫겠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그는 정말 의원 수가 주는 것인지, 줄면 얼마나 주는 것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이런 고민은 비단 김씨만 하는 것이 아니다. 6·4 지방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전국의 예비 정치인들이 모두 혼란에 빠져 있다. 선거를 겨우 넉 달 앞두고 지자제 선거판을 확 뒤집을 수 있는 정치 구조 개혁 논의가 한창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 당직자는 앞으로 한 달 반 이내에 지자제 선거 개혁 작업을 끝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정작 지자제 선거 입후보자들이 새 제도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은 한 달 정도이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이나 지망생이나 빠듯한 일정이다.

6·4 지방 선거에서 확실히 바뀌는 것은 의원 수다. 여야 모두 지방 의원이 너무 많아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기초·광역 의원을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축소할 방침이다. 현재 1개 동에 1∼4명 배정되어 있는 기초 의회 의원은 일률적으로 1동에 1명씩으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경우 현재 4천5백여 명인 기초 의원을 3천7백명대로 줄일 수 있다.

광역 의회 의원 역시 30% 축소를 목표로 잡고 있다. 현재 시·군·구 당 3명씩인 광역 의원을 각각 2명(시·군·구가 여러 개의 국회의원 선거구로 나뉘어 있는 경우는 국회의원 선거구당 3명씩)으로 줄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소 선거구냐 중·대 선거구냐 의견 양분

국민회의는 인원을 줄이는 대신 지방 의원의 권한을 강화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겠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명예직으로 되어있는 지방 의원을 정무직으로 돌려놓는 방안과, 지방 의원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차원에서 농·수·축협 직원과 지방 공사·지방 공단 직원들에게도 입후보할 기회를 주도록 입후보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축소 폭을 더 크게 잡고 있다. 지자제법개정특위 김중위 위원장은 지방 의원 수를 절반 또는 70%까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6일 한나라당이 주최한 <지자제 개선과 관련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 주제 발표자로 나선 명지대 정세욱 교수 역시 광역 의원을 시·군·구 별로 1명씩 뽑는 방안을 제안했다.

결국 지방 의원 수를 줄이는 문제는 당사자인 지방 의원들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어 대폭이냐 소폭이냐 하는 문제만 남았을 뿐 정치권이 합의를 도출하는 데는 마찰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선거구제와 정당 공천 문제로 옮아가면 여야간 이견이 팽팽히 맞선다. 국민회의는 소 선거구제 유지 쪽이다. 지방 의원의 지역 대표성이 분명하고 후보자의 식견이나 인물 됨됨이를 파악하기 쉽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국민회의 정치구조개혁특위의 한 관계자는 ‘선거구제는 지역 대표성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중·대 선거구제를 선호한다. 소 선거구제는 의원들이 출신 지역의 이익에 집착해 예산이 소규모 지역 사업에 편중되는 등 비합리적으로 운용될 수 있고, 마을 간의 알력과 갈등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 선거구제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 구조라는 지적이다. 자민련은 특히 이번 지방 선거에서부터 중·대 선거구제를 채택해야 자연스럽게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중·대 선거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지방 의원 선거구제에 대한 선관위의 입장은 야권 쪽에 가깝다. 선관위가 최근 마련한 ‘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 개정안’에는 지방 의원을 뽑을 때 정당명부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각 정당이 제출한 명부를 보고 유권자가 정당을 선택하면, 각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이럴 경우 연고나 인물 위주 선거운동이 정견·정책 중심 선거로 바뀌고, 평상시 지구당이나 지역구 관리에 드는 경비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초 단체장과 지방 의회 의원 ‘정당 공천’에 대해서도 여야간 의견이 갈린다. 한나라당 박헌기 의원은 “중앙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 생활 자치를 구현하려면 기초 단체장 선거의 정당 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현행 정당 공천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당 공천 없이 선거가 치러질 경우 어중이 떠중이 모두 출마하겠다고 나서 금권 선거 등 선거판이 오히려 혼탁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방 의원의 선거구제와 정당 공천 문제는 앞으로 지자제법 개정 과정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하지만 한동안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킨 ‘구청장 임명제 논란’은 더 재론되지 않을 것 같다. 여권이 현행 민선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야권도 이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한때 선거비 절감과 원활한 광역 행정을 위해 구청장은 자치단체장이 임명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지금은 오히려 상·하수도나 교통 문제 등 광역 단체장이 거머쥐고 있는 자치 행정을 구에 많이 이양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지자제 선거에도 미디어 시대 열릴 듯

선거 판 짜기에 치여 뒷전에 밀려 있지만, 선거운동 방식을 어떻게 바꾸느냐도 이번 지자제 개혁의 핵심 줄기다. 각당은 선거공영제를 확대한다는 대원칙만 세워놓고 아직 구체적인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는 95년 6·27 지방 선거와 96년 4·11 총선, 9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해 여러 가지 개선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선관위 안에 따르면, 올 지방 선거에서도 미디어가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선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각종 집회 대신 지난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미디어 선거를 지방 선거에까지 확산시킨다는 복안이다. 시장·도지사 선거에서 홍보 효과가 적은 방송 광고를 폐지하고, 대신 방송 연설 횟수를 현행 1회에서 5회로 늘리는 것이나, 기초 단체장 선거에서 1회 10분 이내 방송 연설을 허용하는 것 등이 ‘미디어 선거 활성화’의 일환으로 검토되는 방안이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또 지방 선거 입후보자들의 연설·대담·토론을 최대한 방송에 담아 유권자들이 판단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선거공영제가 확대될 경우 선거 비용 부담이 줄어 무작정 출마하고 보는 허수 후보가 난립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기탁금을 상향 조정하고 선거 비용 보전 요건을 까다롭게 하면 후보 난립을 막을 수 있다. 선관위는 광역 단체장의 경우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기초 단체장은 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광역 의회 의원은 4백만원에서 5백만원으로 기탁금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또 현재는 유효 투표의 10%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는데, 이를 2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선거법을 위반해 처벌받을 경우 선거 비용을 보전해 주지 않도록 규정을 강화하면 선거공영제 악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선관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 밖에 선관위가 내놓은 안에는,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방안 등 눈에 띄는 대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선관위는 이 안을 이미 국민회의에 제출했고, 현재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정치구조개혁특위가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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