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당] 고비용·저효율 어떻게 줄일까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8.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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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개혁 앞장, 국민회의는 느긋
한국의 정당 조직은 여러 면에서 공산당 조직을 빼닮았다. 우선 중앙당으로부터 지구당으로 내려가는 상명하달식 계통이 그렇고, 중앙당·지구당 할 것 없이 각종 직능 단체까지 아우르는 방대함이 그렇다. 엄청난 정치 자금이 드는 구조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지금의 정당 틀이 광복 이후 좌우 대립 시기를 거치면서 굳어졌기 때문이다. 한민당 등 보수 정당은 조직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남로당 등 좌파 세력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과 비슷한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 지금도 큰 틀에는 변화가 없다. 또한 국회보다 정당이 우위에 있는 정치 현실도 정당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즉 정치의 중심이 정당에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방대한 당 조직을 갖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치권이 정당 개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방향은 비대한 중앙당 조직의 몸집을 줄이고, 지구당 조직을 폐지 또는 축소하는 쪽이다. 그동안 정치권으로 흘러든 정치 자금이 주로 방대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경직성 경비에 소요되었기 때문에, 정당 개혁의 성공 여부야말로 ‘돈 안드는’ 정치 구조 형성의 가늠자로 인식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객관적 조건은 갖춰진 편이다. 물론 IMF 여파 때문이다. 요즘 정치권은 말 그대로 돈이 말라붙었다. 자금원이던 재계는 제 코가 석자여서 정치권 챙길 엄두를 못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나라당 상황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정당 개혁에서 가장 큰 쟁점은 지구당 폐지 또는 축소 문제. 본래 지구당 폐지론은 여당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유지비만 월 평균 2천만원이 든다는 지구당은, 잘 알려진 대로 정치 자금의‘블랙 홀’같은 존재이다. 정치권 자금 수요의 원천을 없애지 않고서는 정치 구조 조정이 요원하고, 따라서 지구당 폐지론이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회의는 지구당 폐지론에서 한 발짝 물러선 반면, 오히려 한나라당이 적극 환영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당, 경조사비 등 비용 줄이기 주력

대선 이후 한나라당은 매달 6백만원씩 내려보내던 지구당 운영 보조비를 완전히 없앴다. 야당으로 전락한 뒤부터는 정치 자금 모으기도 여의치 않은 데다가 중앙에서 내려오던 보조비마저 끊긴 한나라당 의원들로서는, 지구당 폐지론이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되었다. 서울 지역의 한나라당 소속 한 초선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지구당은 폐쇄한 상태나 다름없다. 어차피 유지하기도 어려운데, 지구당 폐지 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나라당은 △직원만 4백50명에 달하는 중앙당을 정책 및 당원 관리 기능만 남기고 대폭 축소하는 방안 △시·도 지부를 연락사무소 수준으로 축소하고 지구당 조직은 후원회 성격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안은 아예 지구당 관리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선거구제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현행 선거구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지구당 조직을 폐지했다가는 사조직만 활개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중·대 선거구제 전환을 전제로 지구당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회의는 지구당 폐지론에 반대하되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DJ는 지난 2월7일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정치개혁특위에 참석해 ‘경조사비도 2만원 이상 사용할 경우 재판을 받아 (국회의원 자격이) 실격되도록 법으로 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경조사비 제한은 정치권 개혁과 관련해 DJ가 언급한 가장 구체적인 발언인 셈인데, 현재의 정치 구조나 풍토를 현실로 인정하고 그 대신 정치 비용의 수요처를 하나하나 줄여 가겠다는 뜻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경조사비는 지구당 관리비의 절반이 들어갈 정도로 막대하다.

국민회의는 중앙당 조직도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되, 정책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고 있다. 현재의 야당식 구조를 집권당 위상에 걸맞게 재편할 현실적인 필요가 있고, 그 경우 지금의 인력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정당 개혁에서만큼은 국민회의가 변죽만 울리고 슬쩍 몸을 사리는 반면, 야당은 예상 외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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