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짐질방 동성애 실태를 고발한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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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밝힌 어느 에이즈 감염자의 ‘이유 있는 절규’
에이즈 감염자 박광서씨(26·서울)가 자살 유혹과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에서 비로소 ‘해방된’ 날은 10월19일이었다. 그날 그는 에이즈 감염자들에게 천형처럼 따라다니는 ‘감염 사실 노출 공포증’을 스스로 벗어 던지는 길을 택했다. 양심 선언과 사회와 보건 당국을 향한 절규라는 두 가지 카드를 들고 <시사저널> 편집국을 찾아온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내쫓길 곳도 없는 삶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감염자의 밥과 잠자리와 인권, 무방비 상태에 놓인 일반인들의 감염 방지를 위해 ‘에이즈 감염자 박광서’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는 이어 육신이 건강한 에이즈 감염자는 대한민국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 정부와 국민에게 묻고 싶다며, 자기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채 생존을 위해 드나들 수밖에 없었던 에이즈 전파 위험 지대가 어디인지 밝혔다.

찜질방·휴게텔에서 목격한 집단 동성 연애

4년 전 교통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갔다가 우연히 감염 사실을 알게 된 박씨가 그간 살아온 삶은 말 그대로 형극의 길이었다. 외모로 보아서는 여느 건강한 20대 청년과 달라 보이지 않는(에이즈는 감염된 지 평균 10년 후에 발병함) 박씨에게 목숨은 모질기만 했다. 보건 당국의 ‘실수’로 고향에 감염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그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 이후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자 해도 그가 발을 디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는 곳마다 그는 ‘시체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결국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그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음습한 지대’ 뿐이었다.

10월26일 기자는 박광서씨와 함께 그가 에이즈 전파 위험 지대로 지목한 현장을 찾아 나섰다. 이날 자정 무렵 서울 영등포역 옆 ㄷ빌딩 3층에 위치한 남성 전용 찜질방은 백여 명의 이용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이지만 날씨가 추워지자 한뎃잠을 피해 들어온 노숙자도 꽤 된다는 것이 인근 주민의 말이었다. 하룻밤 이용료가 5천원으로 비교적 싸기 때문이다.

외견상 여느 사우나 시설과 똑같아 보이는 그 찜질방은 그러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3∼4명 단위로 뒤엉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난교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방은 모두 5개인데 방마다 20∼30명씩 들어가 온통 난교에 열중이었다. 기자가 몸을 씻고 찜질방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 옆에서 난교를 행하던 2명의 남성이 금방 성폭행을 하려 들었다. 이들을 뿌리치자 다른 10대 후반 남성이 자기 사진을 건네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에이즈 예방 조처(콘돔)도 없었다.

이날 현장을 안내한 박씨는 “이용자들 가운데 누가 에이즈 감염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 곳이 없어 이곳을 찾았지만 양심상 이런 시설에 오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감염자가 달리 갈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찜질방 이용자 가운데는 ‘바이’(이성애와 동성애를 함께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30분 후쯤 찜질방을 나서자 계단으로 경찰관 10여 명이 뛰어 올라왔다. 2층 당구장에서 폭행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출동한 경찰에게 기자가 목격한 3층의 실태를 들려 주며 왜 단속을 않느냐고 물었다. 그 경찰관은 ‘출동해 봐야 난교하던 사람들이 자는 척 해 버리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면서 사실상 알고서도 묵인한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튿날 밤 박씨의 안내로 동대문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시설을 찾았다. ‘ㅇ휴게텔’이라고 간판을 단 이곳은 화장실에 샤워 시설만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노래방 같은 구조의 방이 8개 있었다. 방 안에는 싱글 침대가 하나씩 놓여 있었는데 방마다 역시 남성들이 뒤엉켜 난교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곳 이용자는 약 50여 명.

<시사저널> 취재진이 추적한 바에 따르면 서울에만 이런 시설이 10여 곳에 이른다. 각 업소마다 자연스런 역할 분담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등포의 찜질방은 값이 가장 싸서 1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연령층이 이용하고, 이태원에 있는 ‘ㅇ찜질방’은 주로 20대 초반 남성들이 찾는다. 장충동에 있는 ‘ㅇ사우나’는 30대 남성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있다.

10월28일 박광서씨는 구청을 다녀왔다. 구청 방역계의 관리 대상인 박씨는 6개월에 한번씩 면역 검사를 위해 구청에 들러야 한다. 그러나 요즘 박씨는 구청에 가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감염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생존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핵심은 숙소와 일자리. 그러나 구청측은 박씨에게 그 흔한 생활 보호 대상자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날 박씨는 구청 간부로부터 ‘당신은 관리 대상인데 연락처가 없어 골치 아프다.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장만하지 않고 뭐하냐’는 핀잔을 듣고 기가 막혔다며, 이것이 보건 당국의 감염자 관리 정책 현주소라고 말했다.

물론 구청 관리 공무원의 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신원 보증을 서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관리 대상’에 대한 지원 제도를 통해서라기보다는 담당 공무원의 개인적 배려였다. 그나마 박씨가 따지고 다니니까 구청측에서는 추석 연휴 5일 동안 처음으로 여관방을 잡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간에 박씨는 쫄쫄 굶어야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 구해도 쫓겨나기 일쑤

감염자인 박씨로서는 생존을 위한 ‘홀로 서기’가 급선무다. 그러나 감염자 자활 지원책은 전무하다. 그들이 혼자서 사회에 나가 일을 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박씨도 수 차례 취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쫓겨나야 했다. 주유소·편의점·순대국집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보건증 발급 또는 건강 검진 문제 등으로 감염 사실이 노출되기 직전 도망쳐 나와야 했다.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일자리를 찾아 나설 엄두가 안난다.

박씨는 한때 에이즈 감염자에게는 감옥 생활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년 전 어느날 하루 종일 배를 곯은 박씨는 남의 돈 3만원을 훔치다 붙잡혀 절도죄로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감옥은 사회보다 더욱 끔찍했다. 수감 생활 동안 박씨가 갇혀 지내던 독방(0.57평) 문이 열린 것은 딱 한 번, 재판정에 갈 때뿐이었다고 한다. 감옥에서 흉악범이나 사형수에게도 보장되기 마련인 최소한의 인권조차 박광서씨에게는 예외였다. 수감 기간 내내 단 한 차례의 운동은 물론 세수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소내에서 흉악범을 다스리는 도구로 이용됐다. 구치소에서 골치를 썩이는 흉악범들을 징벌방에 가두는 대신 ‘에이즈 보균자 박광서 방에 넣겠다’고 위협하면 통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어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목숨은 모질기만 했다.”
멸시와 천대 속에 감염 사실 노출 공포증에 시달려 온 박씨는 여름이면 시내 대학 캠퍼스를 전전하며 잔디밭에서라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얼어 죽지 않으려면 따뜻한 잠자리가 필요하다. 며칠 동안 일을 해 주급을 받으면 그나마 심야 만화방이라도 가지만 일자리가 없다. 여러 날 빨래를 하지 못하면 하는 수 없이 심야 찜질방(사우나)을 이용해야 하지만 그곳에 가기만 하면 성폭행을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의 에이즈 감염자 관리 정책에 절망감을 갖고, 방치된 자신의 생활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박광서씨는 이렇게 절규했다.

“감염자를 자살과 보복 심리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사회의 냉대와 에이즈 감염자 정책을 두고 누가 에이즈 확산 방지에 성공했다고 자신하겠는가.” 박씨는 양심 고백 후 자기의 밥과 잠자리, 그리고 동료 감염자들의 인권을 위해 얼굴을 드러내고 사회의 편견과 천대에 대항하는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감염자를 양지로 끌어내는 에이즈 정책 펴라”

10월29일 박광서씨는 생전 처음으로 국회 구경을 했다. 국회 인권 포럼(위원장 황우려 의원)과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주최한 ‘에이즈 감염인 인권 심포지엄’ 행사장에 기자와 동행한 길이었다. 이 자리에는 주최측이 비밀리에 초대한 에이즈 감염자가 여러 명 나왔다. 사례 발표자로 나선 이들 감염자의 사연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일반인과 정부에 대한 호소는 결국 한 가지였다. ‘감염자도 인간임을 인정하는 관리 정책을 펴달라. 일터를 주고 일반인 상대 에이즈 예방 교육 등에 산 증인으로 써 달라.’ 감염 사실을 안 뒤 가족과 함께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숨어 살고 있다는 우 아무개씨는 “남들만큼 산다는 보장이 없기에 감염자들은 가을 들녘의 국화꽃도 일반인보다 열 배 이상 아름답게 보인다. 여생 동안 인간임을 느낄 수 있도록 제발 자유를 박탈하는 감시는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임신 6개월 만에 감염 사실을 알고 나서 중절 수술을 못하고, 딸아이를 낳은 뒤 3년째 딸과 떨어져 살고 있다는 여성 감염자 서 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딸아이가 없었다면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감염인들에게 ‘낳지 말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딸아이를 보며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에이즈 감염자에게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해 주고 싶다. 전문가들은 이론적이고 딱딱한 근거로 임신과 출산을 공격하지만 말고 차라리 안전하게 출산할 방법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 주고 보호해 달라.”

감염인들의 절규를 들은 보건복지부 전병용 방역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감염자들이 자기를 드러낸 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도 에이즈 퇴치와 감염자 인권이 진일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진행 중인 에이즈 예방법 개정 작업 내용을 소개했다.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에이즈 감염자 강제 격리 조항을 삭제할 것이며, 요양 시설 설치·생활 보호 조항 등을 담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외국과 달리 법적으로 익명 검사를 금지하고 있는 조항도 삭제해 익명 검사를 인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전향적인 ‘공약’은 일부 감염자들에게 그리 미더워 보이지 않는 듯했다. 보건 당국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음성 판정을 번갈아 받는 바람에 피해를 보았다며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지난 10월19일 대법원에서 패소한 정민숙씨(36)가 나섰다. “보건 당국이 여섯 번을 검사해 세 번은 양성, 세 번은 음성이라는 웃지 못할 결과가 나왔다. 1, 2심에서는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에서 뒤집은 것은, 한국에는 아직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일 뿐이다.” 정부가 에이즈 관련 정책을 제발 체계적으로 마련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이튿날 박광서씨와 함께 정민숙씨가 운영하는 희망나눔터를 찾았다.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이 공개된 경우이다. 감염자 16명을 모아 서로 의지하며 상담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정씨는 어느새 ‘에이즈 감염자 인권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그는 박광서씨가 신분을 드러내고 양심 선언을 한 데 대해 반가움을 표시하며 “그동안 보건 당국으로부터 양성 판정을 통보받은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자살했는데 국내 검진 수준이 그 모양이라면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이즈 양성 판정 사실과 얼굴을 스스로 공개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정씨와 박씨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잘못된 에이즈 감염자 관리 정책이 일반인들의 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보건 당국은 기존 감염자들을 벼랑으로 몰아붙여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게 만들었다. 감염자에 대한 따뜻한 대책이 없이 감시만 강조하다 보니 대부분의 감염자가 지하로 숨어들고 있다. 극한 소외감에 몸부림치며 보복 감정까지 갖게 된 감염자들을 우리 감염인 스스로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정부와 사회도 이제 그들의 인권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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