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한 임금 인상… 조직 관리도 엉망진창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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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산하 기관, 변칙적 임금 인상 ‘기막힐’ 지경… 조직·직원 관리도 엉망진창
한국통신이 전화 가입자에게 배포한 서울시 상호편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 이어 이른바 정부 산하 기관들의 전화 번호가 나와 있다. 산하 기관들은 96쪽에서부터 146쪽까지 장장 51쪽(2백33개)에 걸쳐 실려 있다. 정부가 주인인 은행과 지방으로 본부를 옮긴 공기업, 지방자치단체들이 거느린 산하 기관은 빠졌는데도 그렇다.

정부 산하 기관들은 이처럼 수가 많기도 하지만, 예산 낭비와 비효율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있어 더 문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산하 기관 수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산하 기관을 정비하지 않고는 공공 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직원 특별 승급…퇴직금 ‘어마어마’

최근 감사원이 인수위에 보고한 산하 기관 감사 결과를 보면, 언론에 간헐적으로 보도된 이들의 비효율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산하 기관들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손쉽게 번 이익이나 정부 지원금(출연·보조금)을 자기 배를 불리는 데 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한국전력공사·한국통신·산업은행 등 정부투자기관 18개 전부는 93∼96년 체력단련비와 상여금 지급 기준을 올리거나, 실적급으로 주어야 하는 시간외 수당·휴일 수당·여비·교통비 등을 급여성 인건비로 둔갑시켜 임금을 크게 올렸다. 이렇게 해서 4년 동안 누적된 임금 인상률은 ‘정부투자기관 예산 편성 공통 지침’에 의한 인상률보다 10.3∼46.2%나 높았다. 이로 인한 초과 집행액은 1조8천2백억원. 사장·감사 등 임원들은 더 많이 가져갔다. 이들의 임금은 3년간 지침 상의 인상률보다 20.6∼66.7%나 높았다. 한국통신 등 16개 정부투자기관은 임금을 편법 인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직원에게 10∼30%씩 특별 보너스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자기 배 불리기는 수당 과다 지급으로도 이어졌다. 한국통신 등 3개 정부투자기관은 특정 업무 수행자에게만 주어야 할 출납·전산·외국어 관련 업무 수당을 전직원에게 골고루 월 2만∼10만 원씩 서비스했다. 또 한국전력·한국통신·산업은행·도로공사·토지공사 등 정부투자기관 대부분은 시간외 근무·휴일 근무·출장·야근을 하지 않은 직원들에도 일률적으로 적게는 몇만원에서 몇십만원까지 수당과 경비를 지급했다.

변칙적 임금 인상 수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주택공사는 주택 백만호 건설 달성을 기념한다며 공적이 없는 직원을 포함해 전직원을 특별 승급시켰으며 △대한석탄공사는 여직원 군미필자도 군경력 인정 사유로 1∼3호봉씩 승급시켰고 △한국수자원공사 등 8개 기관은 해마다 모든 직원에게 기본급의 50∼300%씩 장기 근속 포상금을 주었다.
정부투자기관 임직원들이 호주머니에 넣는 돈은 더 많다. 한국가스공사 등 10개 기관은 94년부터 개인 연금과 단체 보험 가입자에게 통상 임금의 5% 혹은 2만∼5만 원씩을 지원했다. 한국관광공사 등 6개 기관은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운용하면서 93년부터 해마다 생일축하금·문화활동지원금 조로 9만∼80만 원을 주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16개 기관은 임금 인상에서 그치지 않고 93년부터 무이자, 혹은 높아도 연 5%의 금리와 10∼20년의 장기 조건으로 주택자금을 8천3백5억원 융자해 왔다. 현재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가장 유리한 조건인 국민주택기금 대출 금리(연 7.5%)에 비해서도 파격 지원인 것은 틀림없다. 97년 10월 국정 감사에서 이윤수 의원(국민회의)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감사원의 시정 지시도 묵살했다.

정부투자기관은 임직원이 퇴직할 때에도 마지막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가스공사 등 9개 기관은 81년부터 적용된 정부의 직원 퇴직금 기준 급여 범위를 멋대로 넓혀 퇴직금을 많이 주었다. 기준 급여 범위(기본급·상여금 및 다섯 가지 수당)에 체력 단련비·자격 수당·가족 수당까지 집어넣은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등 8개 기관은 임원 퇴직금(본봉+직무급)에 상여금까지 넣는 것으로 관련 규정을 고쳐 임원들의 배도 두둑이 채워 주었다. 최근 2∼3년간 이루어진 명예 퇴직 과정에서도 정부의 산정 기초인 기준 급여의 범위를 임의로 넓혀 두툼한 퇴직금 봉투를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부 기관은 퇴직금을 너무 많이 주어 이미 자본금을 잠식한 상태이다.

의료보험조합, 최소한 2천2백명 줄여야

임금 관리가 이 지경인데 조직·인력 관리가 온전할 리 없다. 한국석유개발공사 등 10개 기관은 사람이 많다는 비난을 의식해 하위직은 조금 줄였지만, 2급 이상 상위직은 별도 정원을 늘리거나 관리급을 새로 만들어 직급을 높이고 부서를 더 잘게 쪼개는 방식으로 늘렸다. 그 결과 기관에 따라 1.9∼159%까지 상위직을 늘린 가분수 조직이 생겨났다. 가령 조폐공사 등 4개 기관에서는 5명 이하 부(2급 부서장) 및 10명 이하 처·국(1급 부서장) 조직이 24∼74%에 달했다.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은 감축 대상자로 분류된 기술 진부화 인력을 절반 가량 그대로 두거나, 변전소에 무인화 시설을 갖추고도 오히려 관련 인력을 증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인력 관리를 해왔다.

국내에서의 방만한 경영은 세계화 바람을 타고 해외로 이어졌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농수산물 수출길을 뚫기 위해 92년부터 미국·일본·싱가포르·네덜란드의 6개 도시에 막대한 돈을 들여 전시관(홍보관)을 설치했다. 뉴욕·로스앤젤레스에 전시관을 세우는 데 1천35만달러가 들었다. 기가 막힌 사실은 여섯 곳 가운데 네 곳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더 가관인 것은 정부출자기관인 포항제철의 사례이다. 포철은 95년 8월 미국 하와이에 콘도미니엄을 지어 분양하기 위해 1천2백50만달러를 들여 땅을 샀다. 그런데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채 땅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밝힌 매입 목적이 걸작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으로 미국 본토 진출에 대비해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콘도 부지를 샀다’는 것이다.

전력·통신·가스 등 공공성이 강한 국가 기간 산업을 맡은 정부투자기관들이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97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토지공사와 도로공사의 예를 보자. 토지공사는 양산·물금 지구 택지 조성 사업을 시행하면서 연약 지반 침하량 계측 자료를 거짓 작성하고, 연약 지반 처리용 모래를 비싼 값으로 공급받는 등 관리 감독을 게을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공사도 중앙1건설사업소가 중앙고속도로 확장 공사 때 도로 선형 설계를 변경하면서 오르막 차도가 필요 없는 강원도 원주시 소재 판교 2교 위에 오르막 1개 차로를 설치해 공사비 18억원을 불필요하게 늘린 사례가 적발되었다. 한국관광공사도 해외 지사들이 국제 관광객을 유치하기보다는 정·관계 유력 인사의 안내원 노릇을 주로 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자회사 설립에 골몰하는 것도 정부투자기관들의 특징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14개 기관이 90년 이후 자회사를 24개(총 40개) 설립해 40개 자회사 임원의 75.4%를 모회사에서 내려보냈다. 또 산업은행·포철 등의 사례를 보면, 자회사가 모회사와 관련성이 없거나 적어, 자회사를 만든 목적이 업무 효율성보다 모회사의 인사 적체 해소용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이익을 남기는 몇몇 기관은 자회사의 손실도 메워주고 있다. 한국전력은 한전정보네트워크를 통해 전산기기를 비싸게 사주었으며, 한국통신도 표준 원가 방식이 아닌 실비 보상 방식으로 자회사로부터 통신 카드를 비싸게 샀다. 도로공사도 고속도로관리공단에 도로 유지·보수를 맡겨 민간 경쟁 업체에 비해 보수비를 더 들였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따라 경영 상황을 정부로부터 감시당하는 투자기관들이 이 지경이라면, 거의 아무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 산하 기관들의 방만함은 말할 것도 없다. 생산기술연구원·기계연구원 등 25개 정부 출연 연구소는 자체 수입을 축소해 신고하는 수법으로 95∼96년 정부 출연금을 천억원 더 끌어다 썼는데, 이 돈은 주로 상여금·수당·판공비와 해외여행비로 소비되었다. 52개에 이르는 정부 출연 연구소는 대부분 정부가 90% 이상 예산 지원(출연금)을 하고 있으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개발원은 96년 연구비가 전체 예산(정부 출연금 63억원)의 15.3%밖에 되지 않고, 정신문화연구원은 관리 직원 수가 연구 직원의 2배나 되는 등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센터가 인건비 비중이 큰 정부 출연 연구소 5개와 민간 연구소 5개의 관리직 1인당 연구원 수를 측정한 결과 각각 평균 1.5명과 3.16명으로 드러났다.

다른 산하 기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재정경제원 산하 증권감독원과 증권거래소는 95년 공무원의 2∼4배 수준인 14.2∼28.9%나 임금을 올렸고, 섭외성 경비를 90년 대비 508∼1700%나 늘렸다. 교육부 산하 한국장학회·사학진흥재단·학술진흥재단은 업무가 비슷한데도 청사를 각각 따로 지어 2백억원이나 썼다. 전국 지역·직장 의료보험조합은 보건복지부 자체 조직 진단에서도 15.1%(2천2백여 명)의 인력이 필요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의료보험 관리 조직들의 연간 관리 운영비는 5천6백억원으로, 총지출 중 8.9%나 차지한다. 선진국(3%)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이다. 93년 생긴 대전엑스포기념재단은 처음 79명으로 출발했는데 조직 진단 결과 적정 인원이 20명 안팎으로 나오자 59명으로 줄이고 자회사(엑스포과학소년단)를 세워 잉여 인력 10여 명을 소화했다.

건설교통부 산하 도공종합감리공단 등 4개 감리공단은 직원의 10%(26명)가 일이 없어 대기 발령을 받은 상태에서도 1백31명을 새로 뽑았다. 6백억원 가까운 돈이 투자된 영화진흥공사의 종합 촬영소 이용률이 고작 18%라는 사실도 산하 기관의 불필요한 투자 혹은 시설 운용이 많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한국마사회는 엄청난 이익을 주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기부금을 주는 것으로 해소했다.

산하 기관들의 방만한 경영 행태는 민간 기업에도 해악을 끼친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96년 말로 폐지된 수입 부담금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회비’로 이름만 바꾸어 계속 거두려고 했다. 수입 부담금이야 징수할 근거(대외무역관리규정)라도 있었지만, 이 회비는 징수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무역협회는 통관을 시키지 않겠다고 협박해 중소 수입업체의 등을 친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무역협회의 무역진흥기금 5천억원 등 7개 기금이 법적 근거 없이 징수되어 기업 부담을 가중시켜 왔다. 이렇게 거두어들인 돈도 꼭 필요한 곳에 지원한다기보다는 기술신용보증기금 사례 등에서 보듯이 방만하게 운영해, 관리 부실 우려가 있는 기금(총 76개로 75조원)이 40개에 이르고 있다.

혈세 낭비 막을 감시·통제 장치 절실

산하 기관이 비효율적이고 방만하게 경영되는 것은 감시 및 통제 장치가 없고 정부와 공생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료와 정치인 들은 퇴임 후를 위해 산하 기관을 늘리는 데 협조하고, 산하 기관은 자리 만들기, 경비 부담, 정치 자금 제공으로 정·관계의 수발을 들어온 것이다. 문민 정부 출범 이후 97년 9월 말 현재 18개 정부투자기관의 사장과 감사를 지낸 73명 가운데 94.5%인 69명이 이른바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급 부처 관료(45.2%)가 가장 많았고, 정치인(23.2%), 군 (12.3%) 출신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전문성이 없는 무자격자이다. 이들이 고액 연봉과 판공비를 받는 점보다 더 큰 문제는 내부 경영에 관심이 없어 경영 부실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투자기관을 비롯한 정부 산하 기관은 ‘제2의 정부’이다. ‘제1의 정부’보다 덩지가 훨씬 크다. 이들의 비효율과 방만함은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해악에 그치지 않는다. 자유기업센터 공병호 소장은 “산하 기관의 생존 기반인 각종 규제가 민간의 자율성을 해쳐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김병섭 교수(서울대·행정학)는, 전통적인 정부 기관도 민간 부문도 아닌 이른바 ‘제3의 부문’ 형태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 생겨나야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 생겨나고 그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통제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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