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저울 이상 있다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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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부자에 약하고 약자·빈자에 강한 기형적 납세 구조 진단
 
어느 재벌 총수가 막대한 상속세를 냈다는 보도를 들을 때 중산층의 심정은 어떨 까. 대개는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상속세를 내도 좋으니 물려 받을 재산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산층이 이와 같이 역설적인 심정을 느끼는 것은 여간한 부자가 아니면 상속세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내는 인구가 고작 1만2천여 가구 3만4천여명이라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그런데 중산층이라면 누구나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6월3일 재경원이 주최한 상속세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벌어졌다. 이 날 공청회에서 재경원은 상속세와 증여세 과세 구간과 세율을 4단계로 통합한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그 목적으로 중산층의 세부담 경감과 고액 재산가에 대한 과세 강화를 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산층을 당혹케 한 것은, 재경원이 상속세를 낼 만큼 재산도 없는 자신들의 세부담을 덜어주려고 상속세법을 개정한다는 점이었다.

상속세법 개정안의 과세 구간과 세율은 1억원 이하는 10%, 5억원 이하는 20%, 10억원 이하는 30%, 10억원 초과는 40%이다. 반면 현행 상속세법은 5천만원 이하가 10%, 2억5천만원 이하가 20%, 5억5천만원 이하가 30%, 그를 넘으면40%로 되어 있다. 따라서 상속액이 5억원일 경우 지금은 상속세를 30% 부담하지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20%만 물면 된다. 결국 개정안은 현행안보다 고액 재산가들의 상속세 부담을 경감해 주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재경원은 상속세법 개정안의 목적이 중산층의 세부담을 경감해 주는 데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공청회 다음날 모든 신문의 1면에는 ‘재경원이 중산층을 껴안기 위해 상속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대부분의 언론이 재경원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상속세법 개정안이 어느 계층을 위한 것인지 언론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세 전문가들의 비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상속세를 내는 인구가 재산 규모를 기준으로 전국민 중 상위 1%가 안되는데도 재경원이 이들의 세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상속세법 개정에 착수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상속세법이 사실상 소득 재분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배의 정의라는 관점에서 우리나라 세제는 상속세 이외에 종합소득세제 미정착, 높은 간접세 비중, 재산세 기능 미약 그리고 사업 소득에 대한 조세 감면 집중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 세제 중에서 소득 재분배 기능과 가장 거리가 먼 세금은 소득세다.
소득이 적은 계층이 소득이 많은 계층보다 소득세를 많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세 불균형은 근로 소득자(봉급 생활자와 기능공 등)와 근로외 소득자(자영업자, 개인 경영자, 법인 경영자, 자유업자 등)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봉급 생활자들이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 자영업자들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낸다는 것이 상식에 속한 지는 이미 오래다.

저소득 근로자 가구, 소득세 부담률 훨씬 높아

그럼에도 근로 소득자와 근로외 소득자 간의 조세 불균형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 까닭은 국세청이 소득 계층 별로 세부담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 안종범 연구위원은 “재정경제원 산하 연구기관인 우리 연구원이 요청해도 국세청은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국민의 소득세 납부 자료를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돈을 받고 판매하는 미국 국세청(IRS)과 대조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세제 전문가들은 <도시 가계 연보>라는 통계청 자료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도시 가계 연보>에는 통계청이 매년 도시 가구 5천여 명의 소득·지출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들어 있어, 근로 소득자와 근로외 소득자 간의 조세 불균형을 확인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이 4월에 이들 두 소득 계층 간의 세부담률 차이 연구에 동원한 자료가 기껏해야 통계청의 87년도 <도시 가계 연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세청 자료를 사용하지 못했는데도 이 연구는 근로 소득자와 근로외 소득자의 소득세 부담 차이를 잘 보여준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형평성 측정’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에 따르면, 87년 당시 근로외 소득자의 연평균 소득은 1천6백19만원으로 4백83만8천원에 불과한 근로 소득자의 연평균 소득보다 3.3배나 많았다. 그런데 평균 소득세 부담률은 근로외 소득자가 2.67%로 근로 소득자의 3.35%보다 훨씬 낮다고 밝혀진 것이다.

 
간접세의 대표적인 세금인 부가가치세 부담 차이도 소득세와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앞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로 소득자의 평균 부가가치세 부담률은 5.93%로 2.31%에 불과한 근로외 소득자의 부담률보다 무려 두 배나 높았다. 게다가 부가가치세가 소득 재분배 기능에 역행하는 역진성을 갖는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서 근로 소득자와 근로외 소득자를 가릴 것 없이 소득이 높을수록 오히려 부가가치세 부담이 낮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 연구위원과 한림대 나성린 교수가 공동으로 행한 이 연구의 가장 큰 가치는, 근로외 소득자가 근로 소득자보다 소득이 많은데도 소득세를 적게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는 소득의 크기와 세금이 비례해야 한다는 이른바 수직적 형평성이 우리나라 소득세에서는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이 연구는 같은 수준의 소득을 가진 가구들 사이의 소득세액이 크게 다르다는 점도 밝혀냈다. 조세의 수평적 형평성이 파괴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앞서 연구 결과에 따라 소득세 및 부가가치세 납부에서 하나의 상식으로까지 회자되어온 ‘봉급 생활자는 봉’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같은 세부담 불균형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다만 소득세가 급여에서 원천 징수되는 근로 소득자와 달리 근로외 소득자는 수입을 자진 신고해서 과세를 받기 때문에 소득세를 적게 낼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같은 가능성이 많은 근로외 소득자 직업이 바로 변호사와 의사라는 것도 상식에 속한 지 이미 오래다. 그 까닭은 이들 전문 자영업자의 수입원이 불투명해 과표를 양성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변호사들의 경우 고액 사건을 맡으면서도 소송 의뢰인으로부터 수임료를 은밀히 주고 받는 등 수입액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소득세 자진신고제가 올해부터 실시되면서 변호사들이 실제 번 것보다 적은 소득세를 낼 가능성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변호사가 탈세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기업들로부터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들의 경우 세원이 노출되어 근본적으로 탈세하기 어렵다. 김&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매년 소득세 납부 기준으로 매기는 변호사 소득 순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장은 주로 해외 투자·국제 무역·금융·보험 등 개인 변호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전문 사건들을 국내외 대기업들로부터 수임한다.

의사의 경우 변호사에 비해 소득세 탈루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89년 7월에 전국민 의료보험화가 실시됨으로써 의사의 수입원 중 많은 부분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보험 처리가 거의 안되는 성형외과 의사의 경우 실제로 번 것보다 적은 수입액을 신고할 가능성이 많다. 국세청 노석우 소득세과장은 “성형외과 의사들의 수입원은 이와 같이 별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국세청은 이들에 대해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결국 근로 소득자와 근로외 소득자 간의 소득세 부담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수입원을 제대로 밝혀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예전과 달리 이제는 근로외 소득자들이 수입액을 자진 신고하기 때문에 국세청으로서는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소득세를 부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국세청은 근로외 소득자들의 연평균 수입을 직종 별로 확인한 뒤 이에 비해 신고 수입액이 적으면 더 많이 과세하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성형외과 의사들과 달리 변호사들의 수입원에 대한 과표를 양성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조세 전문가들의 지적이

다. 물론 국세청은 그동안 변호사들이 신고한 소득 금액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떨치지 못한 채 세원을 포착할 기회를 엿보아 왔다. 게다가 실제 소득액보다 적게 신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변호사들에게 세무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국세청은 변호사들의 세원을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부자의 사회”

매년 걷히는 세금이 국가의 물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국세청만큼 막강한 기관이 없을 정도다. 이는 국세청의 세무 조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업자가 없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그런 국세청이 변호사들의 수입원에 대한 과표를 현실화하지 못하는 것은 석연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윤건영 교수(연세대·경제학)는 “국세청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변호사들의 세원을 확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국세청이 아예 변호사의 세원을 포착하려 들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조세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83년 국세청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싸움을 보면 수긍이 간다. 당시 국세청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세무 자료로 소속 변호사들의 수임 사건 수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만약 거부하면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결국 거절 당했다. 그런데도 국세청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고작 벌금 50만원을 물리는 것으로 싸움을 끝내고 말았다.

국세청이 독한 마음만 먹었다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세무 자료를 내지 않고는 못배겼을 것이다. 그런데 국세청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힘겨루기에서 변호사회에 밀렸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 한 조세 전문가의 분석이다. 다시 말해 국세청의 권력이 우리나라의 지배층을 사실상 점령하고 있는 변호사들의 영향력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변호사들의 수입원에 대한 과표를 양성화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근로외 소득자들에 대한 국세청의 무기력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조세 정책 자체가 고액 재산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고액 재산가들에 대한 재산세와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너무 관대하다는 것이 윤건영 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91년 종합토지세 및 도시계획세의 토지 보유에 따른 세부담이 7천1백31억원으로, 전 국토의 66%에 해당하는 과세 대상 토지의 지가 총액 8백67조원의 0.08%에 불과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부동산 관련 세수는 총세수의 18.7%로서 매우 높다. 그러나 7천1백31억원이라는 토지 보유 세부담은 총세수의 1.9%로 형편 없이 낮다. 우리나라 소득계층 중에서 상위 5%가 과세 대상 토지의 50.6%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부동산 보유 과세를 비롯한 재산세가 얼마나 소득 재분배 기능을 못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부동산 보유 세부담률은 미국의 3분의 1도 안되는 실정이다(표 참조).

우리나라 조세 구조는 이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 자영업자일수록 소득세를 탈루할 가능성이 많고 고소득층일수록 세부담이 적은 모순을 안고 있다. 세금에 관한 한 한국은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부자의 사회’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조세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와 같이 소득 재분배와는 맞지 않은 조세 구조를 방치할 경우 근로 소득자를 비롯한 중산층이 조세 저항을 할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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