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통신 인프라인가 ‘게임 중독’ 소굴인가
  • 宋 俊 기자 ()
  • 승인 1998.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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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인터넷 PC방, 순기능·문제점 점검
요즘 불황이 무색하게 초호황을 누리는 신종 사업이 있다. 인터넷 PC방. ‘매일 PC방이 1∼2개씩 새로 생겨난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대개 20∼30평 규모의 공간에 컴퓨터 30∼50대 가량을 구비해 놓고 시간당 2천원 안팎의 이용료를 받는데, ‘월 소득이 5백만원을 넘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난 가을부터 창업 붐이 일기 시작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백일 남짓 동안 전국에 1천5백여 개가 생겨났다. 체인점 본사만 무려 8개다.

그런데 갑자기 잘 나가던 분위기가 발칵 뒤집혔다. 11월 말부터 신문과 방송이 일제히 ‘PC은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라고 질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사 제목만 보아도 언론이 전하려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인터넷 게임방 넋 빠진 10대들’ ‘마약 같은 중독증, 학교도 가기 싫다’ ‘모르면 왕따된다, 너도나도 밤샘 몰두’….

PC방에서 음란물 열람 불가능

기사 논조는 ‘게임방(PC방) 이용자의 70% 이상이 중고생이고, 담배를 문 채 고함을 지르며 게임에 몰두하다 밤을 새우기 일쑤’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인터넷 음란물 사이트의 해악을 경고하는가 하면, 대부분이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쓴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청소년 탈선을 부추기는 불법 우범 지대’라는 내용들이다.

이 기사들은 ‘독자 편지’ 형식으로 재생산되고, 컴퓨터 통신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PC방 업주들은 11월30일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 인터넷 PC 대여업 협회’(회장 박원서) 창립 대회를 열고 자기네 입장을 밝혔다. “사실과 다르니 억울하다. 강경 대응하겠다”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처럼 두드러진 견해 차이의 원인과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PC방의 실체와 창업 붐의 배경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시사저널>은 서울 신촌·노량진·신림동·사당동·강남역 일대 PC방 10여 곳을 밀착 취재했다. 취재 시간은 이용자가 몰려드는 오후 3시부터 이튿날 오전 4시까지.

현장을 살펴본 결과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범 지대’로 몰아붙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가게 이름은 제각각이었다. ‘PC방’ ‘CD게임방’ ‘인터넷 게임방’ 등. 고객 중 70% 이상이 게임을 즐기러 온 사람이고, 인터넷이나 통신을 통해 정보를 찾는 이는 10∼20% 정도였다. 자정 이전까지 PC방에 있는 사람의 평균 게임 시간은 1시간30분 내외. 오후 3시부터 7시까지는 중고생이, 7시부터 10시까지는 대학생과 20대 직장인이 주요 고객이었다.

대개 24시간 영업을 했는데, 번화가의 경우 자정 이후에도 10∼20명이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 가운데 완전히 밤을 새우는 사람은 3분의 1 정도. 술이 깬 뒤 차를 몰고 가려고 3시간 가량 게임을 하는 직장인이나, 새벽 2∼3시께 영업을 끝낸 유흥업소 종업원도 상당수 있었다.

임의로 불쑥 찾아간 취재였지만, 심야에 만난 중고생은 없었다. 주택가와 학교 주변 게임방에서 몇몇 중고생이 밤새도록 게임에 몰두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업체 태반이 번화가에 몰려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중치의 가닥이 잡힌다.

또 하나, 음란물 열람 문제는 어불 성설이었다. PC방의 개방적 구조에서 사람들이 보는데 버젓이 음란물을 열람하기란 성인의 경우도 어지간한 철면피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업체 대부분이 정품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문제는 PC방의 존재 의의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부 업주의 근시안이다. 프린터 등 기본 부대 시설마저 생략한 채 컴퓨터를 게임 용도로만 대여하는 업체가 상당수였다. 헤드폰을 설치하지 않아 소음이 심하거나 담배 연기 때문에 공기가 탁한 PC방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PC방 설립 목적은 ‘멀티 미디어 서비스’ 제공

PC방의 본디 목적은 전자 오락이 아니다. 여러 대의 고성능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 전용선을 갖추고 ‘멀티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반 가정의 컴퓨터는 전용선이 아닌 전화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통신 속도와 질에서 큰 차이가 난다. 각 개인이 PC방 수준의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많은 돈을 들여 갖추기도 난망할 뿐더러, 새로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버전 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그렇게 한다 해도 국가 차원에서 이용 효율을 따져볼 때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제대로 운영되기만 한다면, PC방은 ‘민간 차원의 정보 통신 인프라’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이나 통신 정보 위주로만 PC방을 운영할 경우 경영이 불안정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직은 수요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게임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 ‘민간 정보 통신 인프라’의 경비를 보전해 주는 것이다.

신촌의 ‘두루넷 슬기방’이 좋은 본보기다. 널찍한 공간에 컴퓨터 84대와 레이저 프린터·칼라 프린터·스캐너·팩스·복사기 등을 구비했다.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인터넷 정보 공간으로 할애해 ‘게임족’의 침범을 원천 봉쇄했다. 한쪽 구석에는 ‘청오정보통신’이라는 벤처 기업 사무실을 열었다. 두루넷 슬기방을 운영하면서 소비자의 욕구 변화와 컴퓨터 시장의 동향을 감지하고, 청오정보통신이 이를 상품 개발에 응용한다는 전략이다.

컴퓨터 보급률과 이용률에서 안정 국면에 들어선 선진국의 경우 가장 흔한 스타일은 ‘인터넷 카페’다. 주로 유학생이나 해외 여행객이 간편하고 값싸게 본국에 E메일을 보내거나 정보를 검색하려고 이용한다. 한국의 인터넷 카페는 손님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컴퓨터를 구비하고 있는 수준이다.

핀란드에서 온 유학생 밀라 하말라이넨 양은 매일 두루넷 슬기방 신촌점을 찾는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낙이다. 전에는 인터넷 카페를 이용했지만 깨끗하고 조용한 이곳 시설이 아주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광화문의 ‘넷 하우스’는 정보 서비스에 중점을 둔 경우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의 이용률도 매우 높아서, 영어로 안내문을 써붙였을 정도다.
천재 프로그래머가 자라는 학습장?

동국대학교 전산원 학생인 이성묵씨는 ‘비즈니스 룸’ 개념을 도입한 PC방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다. 게임 공간 한켠에 인터넷 정보 공간을 두는 것은 기본이고, 첨단 시설을 공동 이용하는 ‘소호 비즈니스 룸’까지 한데 아우른 개념의 PC방 대리점을 보급하고 있다.

이같은 PC방 본연의 역할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프린터조차 없는 ‘게임방’ 창업 붐을 부른 것은, 한 편의 게임 소프트웨어 <스타 크래프트>(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였다. 인기 순위 2위인 게임이 PC방 인터넷 이용자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1위 <스타 크래프트>의 위력은 막강하다.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가 시들고 대체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면 문 닫는 PC방이 부지기수일 것이다”라고 이성묵씨는 말한다.

이같은 첨단 프로그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세계적인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스타 크래프트>의 경제적 성과는 <쥐라기 공원>에 비견될 만하다. 복제 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번식력에서는 <스타 크래프트>가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어쩌면 PC방은 미래의 천재 프로그래머가 자라나는 학습장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언론은 PC방의 잠재력과 순기능을 도외시한 채 부작용 쪽을 극대화해서 보도했을까. 취재 의도와 판단 근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문화관광부와 ‘한국 컴퓨터 게임 산업 중앙회’(한컴산)가 쓴 문서들이 하나의 힌트를 제공해 줄 듯하다.

문화관광부는 11월12일자로 ‘PC/인터넷 이용 게임장업 관리 지침’이라는 공문서를 각 시·도와 경찰청 등에 보냈다. 요약하면 ‘최근 급증하는 CD게임방·PC방·인터넷방 따위가 무허가 영업을 하면서 청소년 문제와 많은 민원을 야기하고 있으니 첨부한 지침에 의거하여 관리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첨부 자료는 ‘PC방과 관련한 현행 법규가 모호하므로 법령을 정비할 때까지 컴퓨터게임장업(전자오락실)과 동일하게 허가 조처하고, 올해 말까지는 행정 지도, 내년부터는 일제 단속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관리 지침’ 수신처 중에는 민간 단체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한컴산이다. 전국 전자오락실 업자들의 대표 성격을 띤 한컴산은 지회장들에게 보내는 11월13일자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PC/인터넷을 이용한 불법·무허가 영업이 성행하고 있어 관련 부처에 단속을 요청했으니 우리 회원이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

PC방이 뜰 무렵부터 전자오락실 고객이 줄자, 일부 오락실에서는 게임기 절반 정도를 컴퓨터로 바꾸고 24시간 영업했다는 보고도 있다. 전자오락실과 PC방의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컴산은 PC방의 불법·변태 영업을 비난하면서 단속을 요청하는 공문을 각 지자체와 전국 경찰망에 송부하기도 했다. 한컴산과 문화관광부의 문서 내용이 쌍둥이처럼 닮은 모습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설사 우연이라 해도 언론 보도와 문화관광부의 관리 지침은 한컴산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PC방 쪽이 항의하고 나섰다. ‘한국 인터넷 PC대여업 협회’(인터넷PC협회)는 ‘컴퓨터를 단순 게임 기구로 볼 수 없다’는 96년 서울 고법 판례를 들먹이며, 단속이 시작되면 공무원을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벌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인터넷PC협회 김형철 사무국장은 “문화 상품 하나가 한국산 자동차 1년치 수출 소득과 맞먹는다는 계산에는 솔깃하면서 그 풀뿌리를 이렇게 취급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인터넷PC협회는 PC방이 생기면서 천억원에 가까운 컴퓨터 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요를 창출해 컴퓨터산업이 IMF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으며, 매달 백억원 정도의 소비 창출 효과를 유발해 소프트웨어 벤처 회사의 활로를 여는 데도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국가를 대신해 인터넷 고속망을 주택가까지 보급한 성과도 있다고 자부한다.

인터넷PC협회는 이미 밝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자율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즉 오후 10시 이후부터는 청소년 출입을 금하고, 제품의 미성년자 등급 규정을 준수하며,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문제를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영상음반과 곽영진 과장은 “오해가 있다. 이번 관리 지침은 공공 질서 확립과 문화 산업 육성이라는 양면을 함께 고민한 고육지책이다”라고 말했다. 청소년이 출입하는 곳이어서 관리가 불가피할 뿐더러, 벌써부터 PC방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어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공급을 조절할 필요를 느꼈다는 설명이다. “업종 구분을 ‘컴퓨터 게임장업(PC/인터넷 이용 게임장업)’으로 세분화한 부분을 주목해 달라. 법령이 정비될 때 PC/인터넷 분야를 별도 조처하겠다는 ‘육성’의 의미가 담긴 것이다.” 곽과장은 또 “한컴산측이 관리 지침을 빌미로 PC방 업자에게 회원 가입을 강요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PC방은 외국에서 군침 흘리는 벤처 산업

그렇지만 문화관광부의 의지를 인정하더라도,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의문은 남는다. 두루넷 슬기방처럼 일정 공간을 분명하게 인터넷용으로 확보한 업체들까지 ‘전자오락실’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의문이다. 굳이 단속·규제 개념을 고수하는 모습도 비문화적이다.

협회측의 자율 조정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한 PC방 사업자는 “차라리 일정 공간과 장비를 인터넷 등 작업용으로 확보하는 의무 조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그럴 경우 자본 부담이 커져서 창업 붐이 가라앉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오정보통신 배진호 이사의 지적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선진국에서는 컴퓨터로 과제물을 작성하도록 교육 편제가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 교육도 컴퓨터를 활용하는 수준으로 변해야 한다. 게임말고도 할 일이 많다면 저절로 인터넷에 재미를 붙이지 않겠는가.” 배이사에 따르면, PC방은 한국이 개발한 고유 상품이다. 벌써 일본과 뉴질랜드 등에서 수입 문의가 왔다고 한다. 외국에서 군침 흘리는 벤처 산업의 미래가 자기 나라에서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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