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속 ‘어린 양’ 구하는 사이버 교회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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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사이버 교회·신학교 우후죽순…한국 기독교, 디지털 시대 정체성 찾기 나서
“형제들이여, 가상 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도마처럼 자기 손을 그리스도의 상처에 대볼 수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감으로써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을 수도 있습니다. (중략) 단 주의 왕국을 일요일마다 방문하려면 여러분은 단돈 5백99달러만 내면 됩니다.”

“예수는 인터넷·멀티 미디어 통해 재림”

사이먼 페니 교수(미국 카네기멜론 대학)는 가상 현실과 기독교의 만남을 이렇게 풍자한다. 종교계 처지에서 사이버 공간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목사가 고백한 대로 ‘네트워크를 물신(物神)으로 섬기는 이단아들이 넘실대는’ 이 공간은 공포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는 이제껏 사이버 공간을 방치해 왔다. 때로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한 목회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선교 도구로서의 유용성에 주목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과 유럽의 목회자들은 이미 인터넷 공간에 수많은 사이버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고 이곳에서 예배까지 드리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신학을 가다듬으려는 시도 또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들 중에는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한다면 반드시 인터넷과 멀티 미디어를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 따르면 성서의 구약 시대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음성으로만 존재한다.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할 때나, 모세에게 사명을 줄 때나 하나님은 음성으로 메시지를 전했을 뿐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구체적인 형상으로 인간 앞에 나타났다. 이를 디지털 시대로 확장하면 예수가 멀티 미디어 형태로 세상에 오게 될 것이라고 유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는 지난 10월9일 ‘사이버 공간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발제자로 나온 최인식 교수(서울신학대)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신학자 제니퍼 콥을 소개했다. 그는 사이버 공간에 걸맞는 신학을 체계화한 최초의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기독교 처지에서 사이버 공간이 문제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공간이 ‘몸의 소외’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버리고 기계의 힘을 빌려 ‘실재보다 더 증대된 실재감’을 경험하는 이 공간은 기독교의 창조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곳에서 가상 현실을 재현하는 기계 아이폰(eyephone)은 창조주를 대체한다.

제니퍼 콥에 따르면, 전통적인 신학 방법으로는 몸의 소외라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전통적인 신학은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제니퍼 콥은 프랑스 신학자 샤르뎅의 진화론을 빌려 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사람이 출현한 뒤 생명은 완전히 새로운 진화 단계로 들어갔다는 것이 샤르뎅의 철학이다. ‘생각’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의식으로 통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끼리 생각을 나누는 ‘미디어’로서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기술 세계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더 깊이 있는’ 신성한 의식이 산출된다. 이것이 제니퍼 콥이 말하는 사이버 공간의 가능성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천국의 문’ 집단 자살 사건은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김성기 교수(한일신학대)가 비유한 대로 컴퓨터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이 사이비 종교 단체는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천국의 문에 들어가려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공간을 헤매는 영혼들을 어루만지면서 디지털 문명에 걸맞게 기독교의 정체성 또한 바로 세워야 하는 대장정을 한국 교회는 지금 막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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