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더위, 당신의 목숨 노린다
  • 안은주 기자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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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이 이번 여름 10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고해 폭염 비상이 걸렸다. 폭염이 계속되면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도 크게 늘어난다. 살인 더위의 공습에서 살아남는 법.
누구라 할 것 없이 올 여름 최대의 적은 더위가 될 것 같다. 기상청이 10년 만에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티베트 고원의 적설량을 토대로 무더위를 예보했다. 티베트 고원의 적설량이 적으면 그 해 한반도의 여름은 고온 건조한 기후를 띠는 경향이 높다. 지난 봄 티베트의 적설량은 예년보다 훨씬 적었다. 지난 5월 말~6월 중순, 한국의 하루 최고 기온은 이미 30℃를 웃돌았다. 중국과 일본의 일부 지역은 이미 폭염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 고원의 적은 적설량이 주는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태풍이나 폭우에 비하면 폭염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기상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1995년 7월 미국의 시카고로 돌아가 보자. 7월 평균기온이 24.3℃로 서울과 비슷한 이곳에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왔다. 7월12~20일 하루 최고기온이 34~40℃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결과, 긴급 구호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5백14명이나 발생했다. 이 지역 인구 10만명당 12명이 죽은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병원 응급실은 평소보다 3천3백명이나 많은 환자가 밀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고, 시신 보관소는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시신들은 급기야 냉동 트럭 신세를 져야 했다.

지난해 유럽 전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예기치 않게 폭염이 들이닥쳐 무려 3만5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피해가 심각했다. 1873년 이래 최고 기온인 40℃를 웃도는 날이 많아지면서 1만4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염의 ‘급습’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1994년 7~8월, 한국의 전체 사망자 수는 1993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9백88명)나 늘어났다(표 참조). 이유는 간단했다. 폭염 탓이었다. 당시 서울은 30℃를 넘는 날이 50일이 넘었다. 한국에서도 ‘살인적인 더위’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태풍이나 폭우가 주는 피해는 금세 드러난다. 그러나 폭염은 다르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매우 광범위하게, 그리고 인체의 내부에까지 피해를 준다. 사소하게는 식욕 부진에서, 심하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폭염이 주는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열사병(熱射病)이다. 열사병은 직접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불청객이다. 장시간 고온 환경에 노출되면 열 방출 기능에 문제가 생겨 심부 체온(내장 등 몸속 깊은 곳의 체온)이 상승한다. 그리고 땀샘이 과도하게 수분을 배출함으로써 피로해지고, 더 이상 땀이 나지 않는 상태로 발전하여 체열이 방출되지 않는다. 이처럼 열사병은 기온이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육체 활동을 할 경우 발생할 위험이 높다. 군대에서는 기후가 고온 다습하면 야외 훈련을 자제한다. 병사들의 열사병 예방에 그보다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열사병에 걸리면 두통, 메스꺼움, 구토, 무력감, 권태감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직장(直腸)의 온도가 40℃를 넘게 되고, 발한이 정지된다. 또 피부가 잿빛 색깔을 띠기도 한다. 일단 증세가 보이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체온을 낮추어야 한다. 옷을 벗기고, 물을 끼얹고, 사지를 주물러주는 것도 좋다.

폭염은 열사병 같은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심혈관계 및 뇌혈관계에 영향을 미쳐 우회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폭염이 발생하면 신체는 체온 상승을 막기 위해 심박출량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 무더위가 지속될 때 심혈관 질환자가 많이 사망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94년 여름, 폭염으로 인해 국내 사망률이 올라갔을 때 심혈관 질환자가 많았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특히 심혈관·뇌혈관·호흡기 질환 등으로 임종이 임박한 노인일수록 폭염 피해가 크다. 노인들은 체온 조절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심혈관계의 기능과 땀을 분비하는 능력이 정상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태아들도 폭염 앞에서는 무방비나 다름없다. 더위가 심한 지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저체중(2.5kg 미만) 비율이 높고, 태어난 뒤 1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영아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폭염 피해가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농촌 거주자보다 도시 지역 거주자가 폭염 피해를 더 크게 본다. 인구와 각종 시설이 밀집한 도시 지역에서는 인공 열이 더 많이 발생하고, 고층 건물이 통풍을 막아 열의 원활한 이동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주거지에 에어컨 시설이 있는지, 필요한 때 냉방 시설을 가동할 수 있을 만큼 전력 공급 사정은 양호한지, 폭염 피해를 본 사람들을 제때 치료할 의료 체계가 마련되어 있는지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요소들도 폭염의 피해 정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95년 시카고 폭염의 희생자 대부분이 만성 질환자,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사람, 독거 노인, 에어컨 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 건물 최고층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폭염 아래서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

폭염은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폭염 기간 동안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밤의 최저 기온이 높다는 것이다. 야간 최저 기온이 25℃ 이상인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잠을 이루기 힘들다. 인간의 체온과 ‘수면 호르몬’으로 알려진 멜라토닌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열대야와 같은 상황에서는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잠이 잘 오지 않고,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피로감 증가와 집중력 저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뚜렷한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피로를 자주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염이 몰고오는 제2의 재앙 ‘오존’

폭염은 대기를 오염시킨다. 오존이 대표적인 물질이다. 오존은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방출되는 질소 산화물이 태양빛과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2차 오염 물질이다. 태양광선이 강하고 기온이 높은 환경에서는 오존 농도가 올라간다. 지난 6월 서울에서는 오존 주의보가 자주 발령되었는데, 평년보다 높았던 기온 탓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오존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침입한 뒤 점막을 자극하여 각종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고, 천식 증세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연구들이 오존 농도가 높은 지역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이다. 무더운 날에는 외출이나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냉방 시설이 잘 된 실내에 머무르면서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단,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는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폭염을 폭풍이나 태풍과 같은 재난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사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제 폭염은 어쩌다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하면 불청객이 가져오는 재난에 대한 대비책이 미비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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