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부모의 큰 사랑 '유산 남기지 않기’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8.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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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돈을 끌어다가 불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은행 간부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의외이다. 보람은행 한남동 지점장 이재문씨. 그는 지난해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84년 손봉호 교수(서울대·사회교육학)와 김경래씨(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 사무총장) 등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이래 현재 회원만 4백여 명에 이르는 이 운동은,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말고 사회에 환원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씨의 나이 마흔여섯. 유산·유언 따위를 생각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이다. 그러나 12년 전 엄청난 시련을 겪은 뒤 그는 돈의 가치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어떤 사기범이 서명을 위조해 돈을 찾아가면서 시련은 시작되었다. 사기를 당한 예금주는 서명 확인을 소홀히 한 은행원에게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예금주가 요구한 보상 금액은 4천5백50만원. 당시 시가로 강남에 32평짜리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액수였다. 그로부터 송사가 지속된 2년 반 동안 그는 일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를 보냈다. 종교에 귀의한 어느날 깨달음은 번개처럼 찾아왔다. ‘돈 때문에 내 삶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생각이 바뀌니 세상도 어느덧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다.

개업한 점포마다 성공시켜 ‘잘 나가는 지점장’으로 통하는 오늘날에도 그는 단골 고객 생일이면 장미다발을 들고 직접 고객 집을 찾아간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상대도 마음을 연다. 돈은 그 다음에 절로 굴러 들어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중학교 2학년인 두 아이에게 그가 물려주고 싶은 것은 이같은 믿음이다. 대신 유산은 ‘전세집을 얻을 수 있을 정도’만 남겨주고 나머지는 선교 재단에 헌납할 생각이다.

자기 뜻을 공개한 뒤 그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많은 문의를 받았다. 개중에는 ‘나도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은데 자식들이 어떻게든 유산을 가로채려 할 것이다.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 노인도 있었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이 확산되어, 자식이 부모에게 물질 아닌 정신적인 유산을 기대하게 될 때 세상은 좀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라고 이씨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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