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실업자들의 '이유 있는 반란'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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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거리 투쟁·위자료 청구 소송 준비… 정부의 취업 대책 미흡이 원인
취업 시즌이다. 그러나 예년 같으면 싱글 정장을 갖추어 입고 졸업 사진 촬영이다, 입사 면접이다 해서 활기가 넘쳐야 할 대학 졸업생들의 분위기가 요즈음은 영 심상치 않다. 아직도 도서관 구석 자리를 떠나지 않는 졸업 예정자가 셀 수 없으리만큼 많고, 취업 설명회는 일부 외국인 회사를 제외하고서는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인턴 자리나, 리크루트 등 취업 전문 회사들이 계획했던 대학생 채용 박람회는 참여하는 기업이 없어 잇달아 취소되었고, 노동부가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대학 순회 취업 설명회도 같은 이유로 몇 군데서 열었다가 참가자들의 빈축만 사고 연기되었다. 정작 취업 정보는 하나도 제공하지 못하면서 ‘뜬구름 잡는’ 정책 홍보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학생들이 ‘일할 기회를 달라’며 거리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전 고연제가 열린 잠실 주경기장에 내걸린 구호는 과거처럼 정치성 짙은 내용이 아니라 순전히 ‘고용 안정 보장’과 ‘취업 대책 수립’같은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두 대학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상 초유의 취업난을 겪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라는 ‘국난’을 초래한 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예비 실업자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부와 기업,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

연세대와 고려대가 이 정도라면 웬만한 대학에서는 사정이 더욱 다급할 것이다. 각 대학마다 이맘때쯤 만들어지는 졸업준비위원회라는 기구는 예전 같으면 졸업 앨범을 공동 제작하거나 취업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올해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학교 별로만 활동하던 조직을 확대 개편해 지역별 조직과 전국 조직을 만들어 정부에 취업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전국대학 졸업준비위원회 연합’이 만들어졌고, 다음 달까지는 각 지역 조직 결성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대학생 취업 대란이 본격화하는 다음 달부터는 청와대와 국회에 탄원서를 내고, 정부측과 함께 정책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목소리를 높여 가겠다고 한다. 각 기업의 채용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는 함께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졸업 예정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전국대학졸업준비위원회연합 이종구 위원장(광운대 경영학과 4)은 “기업이 신규 인력을 뽑으려고 해도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통에 공개적으로 채용 공고를 내지 못하는 등 정부와 기업의 책임 떠넘기기와 눈치 보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취업 대책으로 내놓은 정보화 공공 사업 등도 6개월에 그치고 있는데다, 이 기간이 취업 경력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어서 6개월이 지나면 결국 ‘연쇄 실업 현상’이 또 닥쳐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대학 순회 취업 설명회를 중단하고 연기한 것도 사실은 대기업의 채용 계획이 거의 없어 정부가 마련하는 대졸 예정자 대상 공공 근로 사업 계획이 확정된 뒤에 설명회를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이마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 이상은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김호기 교수(연세대·사회학)는 “졸업 예정자 미취업에 따른 문제는 이들에게 사회적 좌절감과 무력감을 불러일으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회 문제화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물론 대학생들도 자신의 희망 사항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낮추고 바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눈높이를 낮추어도 막힐 대로 막힌 취업 문을 뚫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아직도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는 학생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대학생이 들려준 말은 허탈감에 빠진 대학생들의 처지를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토익 점수 7백50점 이상에, 학점 3.5 이상을 원한다는 공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3평짜리 복덕방이었다. 이것이 지금 대학생 취업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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