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을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5.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극적·내성적 기질 '개조' 가능…부적응 성격은 치료해야


성격을 바꾸려고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어서 되는 일이 없어요."


서울 종로3가 한국인성개발원에서 만난 이길호씨(29·서울시 관악구 봉천동)가 성격을 개조하려는 이유이다. 컴퓨터 A/S 업체에서 근무하던 그는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그 때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자신이 일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일을 그르치곤 했다. 평소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일을 꺼렸고, 누가 말을 걸어오면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여자 친구에게 프로포즈하던 날에는 신경안정제를 사 먹을 정도였다.


이씨처럼 성격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혼 사유 첫 번째가 '성격 차이'이고, 직장이나 조직에서 '성격'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성격은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김혜숙 교수(아주대·심리학)는 "성격을 타고나는 기질로 본다면 쉽사리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환경과 교육에 의해 형성되는 행동 특성이라고 한다면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다.


성격은 한 인간이 일상 생활에서 흔히 나타내는 행동 특성을 말한다. 크게는 내향적·외향적으로 나누지만, 세세하게는 급하다, 차분하다, 공격적이다, 온화하다 등 수없이 많은 갈래가 있다. 게다가 성격에는 기질적 특성 외에 개인의 자아정체감과 각종 심리적 욕구는 물론 인생관까지 반영되어 있다. 박아청 소장(계명대 학생생활연구소)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은 사과처럼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이다(그림 참조, 〈성격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기질과 기성(기질적인 성격), 역할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이 층을 이루어 형성된다. 박소장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질이나 기성은 바꾸기 힘들지만, 역할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은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성 형질의 유전>





























형질 유전성(%) 환경(%)
외향성 47 53
개방성 46 54
신경질증 46 54
의식성 40 60
화합성 39 61
인격 전체 45 55



자료 : <유전자와 인간의 운명>(R. 그랜트 스틴 지음 전파과학사)


선천적인 유전성을 강조하는 유전학자들이 성격을 바라보는 시각은 '콩 심은 데 콩 난다'이다. 유전자에 없는 성격이 발현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심해 보이던 사람이 일정한 훈련과 노력을 통해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 경우, 이는 전혀 새로운 성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적극적인 기질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환경의 여러 가지 억압과 통제 때문에 발현되지 못하다가 특정한 계기를 통하여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전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성격 개조 훈련은 심은 콩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팥을 새로 심는 과정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일란성 쌍생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과학자들은 따로 격리되어 성장한 일란성 쌍생아들을 추적해 그들의 성격 차이를 조사한 바 있다. 그들은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다른 집에서 자랐고 조사할 때까지 서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연구 결과 일란성 쌍생아들은 취미와 가치관이 서로 유사했다. 비슷한 직업을 택했고, 배우자도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용하는 자가용·비누·치약도 비슷했다. 이같은 쌍생아 연구는 엄격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그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하지만, 유전자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로 쓰인다.


부모 양육 방법에 따라 성격 달라질 수도




그러나 유전학자들도 일부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행동유전학을 연구하는 추종길 교수(중앙대·생명과학과)는 "성격의 상당 부분을 유전이 지배하지만, 환경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성격의 상당 부분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지만, 환경과 교육에 의해 변화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행동유전학자인 그랜트 스틴 교수(미국 워싱턴 대학)도 쌍생아 성격 비교 연구를 종합하여, 인성은 대략 45% 가량 유전된다고 주장한다(표 참조, 〈유전자와 인간의 운명〉). 나머지 55% 가량은 환경에 의해서 변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전은 성격의 기초가 되는 활동량이나 정서·적응성 그리고 사회성 등에 영향을 미칠 뿐 실제 개인이 생활하면서 드러내는 행동 특성 모두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성격에 대한 유전의 영향력은 줄어든다고 유전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후천적인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바움린트라는 심리학자는 3∼4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자제력·호기심·생동감·자립심·사교성 다섯 가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부모의 훈육 방법이 아이들의 심리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애정을 쏟고, 대화를 통해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녀가 해야 할 행동의 기준을 분명히 정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반대로 자녀에게 따뜻한 정을 많이 주지만 엄격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다.


또 자녀 서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첫째 아이는 지능이 우수하고 모범생이지만, 둘째 아이는 반항적이고 질투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첫째 아이에게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기 때문인데, 둘째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소외되는 만큼 반항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 셋째나 막내 아이는 의존적이고 자립심이 부족하기 쉬운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가 귀엽게 대하는 반면, 통제를 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부모들의 양육 방법에 따라 성격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어떤 동기나 욕망을 갖고 있고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사회심리학자 맥클랜드는 어린이의 독립심을 키우고 잘한 행동을 칭찬하며 적당한 모험심을 장려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취 동기가 높아 적극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야단과 꾸지람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자존심과 성취 동기가 떨어져 성장한 뒤에도 소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성격 좋다/나쁘다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


그러나 성격이 어릴 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로저스나 에릭슨 같은 심리학자는 성격이 일생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대인관계, 직업 및 결혼에서 성공하면 자신에 관해서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갖게 되어 자신만만하고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여러 가지 사회 생활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 열등감이 많고 소극적이며 비사교적인 사람이 된다. 이밖에 그 사람이 속한 문화 배경과 시대의 특징도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시골 출신과 도시 출신, 386 세대와 N세대 사이에서 성격 차이가 발생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성격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에 단순한 지표나 검사로 파악할 수 없다. 또 유전적이고 고착된 습관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성격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성격을 좋다/나쁘다로 구분하여 고치려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 김인자 소장은 "성격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성격/아픈 성격, 또는 적응적 성격/부적응적 성격으로 구분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간혹 아프고 부적응적인 성격 때문에 일상 생활에 장애가 생긴다면 치료나 상담, 훈련 등을 통해 성격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성격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굳혀온 것이기 때문에 하루 이틀 사이에 호락호락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훈구 교수(연세대·심리학)는 "성격을 단 1주일 동안에 바꿀 수 있다는 프로그램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성격이 형성되는 데 걸린 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엄청난 자기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