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은 '컨텐츠 전쟁'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넷, 후보 능력 검증·선거운동 '결전장' 될 듯…
'제3 후보' 탄생도 쉬워져


한강 백사장이나 보라매공원, 동네 복덕방과 미장원에서 표가 나오던 때가 있었다. 텔레비전 토론이 첫선을 보인 1997년 대선에서는 브라운관에서 표가 나왔다. 그러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 표밭은 인터넷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인터넷은 내년 대선에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이미지 선거'에서 '컨텐츠 선거'로. 내년 대선에서 인터넷이 몰고 올 것으로 보이는 가장 큰 변화다. 인터넷 정치 사이트인 보트 코리아 천호선 대표는 "그동안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후보자들의 제한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해 왔으나, 인터넷 대선에서는 후보자들이 알몸뚱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많아야 네댓 번 열리는 텔레비전 토론과 달리 시간과 횟수 제한이 별로 없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인터넷 토론에서는 후보자들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리라는 얘기다. 인터넷 토론에서는 다루어질 쟁점도 예전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 문제나 경제 문제 등 굵직한 이슈뿐만이 아니라 낙태·동성애·안락사 등 인터넷형 이슈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터넷 대선에서는 개방적이고 소신 있는 후보, 구체적인 정책 역량이 강한 후보가 유리하리라고 예상한다. 네티즌들의 다양한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려면 개방적인 자세와 유연성은 필수. 그러면서도 극단론이 지배하는 인터넷에서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가 여야 대선 후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한 정치인은 동성애와 안락사 등 생소한 이슈에 대해 도덕 교과서 같은 답변을 해 네티즌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이 몰고 올 선거운동의 변화도 흥미로운 대목. 2000년 미국 대선에서도 인터넷은 홍보·자금 동원·자원봉사자 모집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존 매케인 후보는 9개월 간의 유세 기간에 인터넷만으로 6백40만 달러를 모금하고 자원봉사자를 1백42만 명이나 모집해 놀라게 했다.


맞춤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인터넷 선거운동의 특징이다. 민주당 고어 후보는 어린이를 위한 '키드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어린이를 통해 부모에게 접근했다. 공화당 부시 후보는 자신의 감세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동원했다. 네티즌들이 부시의 사이트에 들어가 현재 자신이 내는 세금 내역을 적어 올리면, 부시가 집권할 경우 세금을 얼마나 덜 내게 되는지 자동으로 계산해서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난해 8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386세대인 김민석 후보가 중앙당과 지구당, 지역·계층 별로 대의원을 분류해 각각에 맞는 메시지를 보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내년 대선에서는 계층과 세대, 심지어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선거운동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이 선거 구도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관측하는 이도 있다. 인터넷 정치 사이트 이윈컴 김능구 대표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라면서, 기존 거대 정당 후보가 아닌 제3 후보 출현이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8년 미국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서 프로 레슬러 출신 제시 벤추라 후보는 정당 추천이나 공식 선거 조직도 없이 자신의 명성과 인터넷 선거운동만으로 젊은 유권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기도 했다. 내년 대선에서 여야 모두 네티즌을 만족시키는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인터넷을 통해 파괴력 있는 제3 후보가 등장할 수도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과연 인터넷이 실제 표를 움직이는 데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네티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젊은층은 투표율이 낮은 편이어서 인터넷이 실제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리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가정용 초고속 통신망이 확대된 뒤로 네티즌 가운데 투표 참여 계층인 30∼40대와 주부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인터넷 여론이 실제 표로 연결될 가능성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젊은층의 경우에도 인터넷 때문에 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열기가 높아지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e메일 레터 사건. 고이즈미 총리가 원하는 사람에게 e메일을 보내겠다고 알리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신청 열기가 폭발해 그 숫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인터넷 언론과 전문 대선 사이트도 네티즌의 참여 열기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전문 사이트인 이윈컴과 아이워치코리아는 각각 오는 8월과 가을부터 2002년 대선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이다.


여야 대선 주자, 홈페이지 관리 수준에 머물러




전문가들은 상업 사이트들이 펼치는 대선 마케팅도 네티즌을 유혹하리라고 본다. 할인 판매·공동 구매·경품 이벤트 등 대선을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해지리라는 것이다. 지난 16대 총선 때 부산의 한 식당에서는 선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음식값을 할인해 주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투표 참여 캠페인과 마케팅을 결합하겠다는 기업도 있다.


당연히 여야 정당과 대선 주자 진영은 인터넷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의 경우 아직 대부분은 홈페이지 관리 이외에 특별한 실행 계획이 없다. 선발 주자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네티즌 지지도가 높은 민주당 노무현 고문, 김근태 최고위원 등이 앞서 가는 편이다.


최근 이들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수동적인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e메일을 이용한 '푸시(push) 전략'을 새롭게 선보였다. 김근태 최고위원측은 지지자 2천여 명에게 '사발통문'이라는 e메일을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다. 노무현 고문측도 지지자 7천여 명에게 정기적으로 e메일을 보내고 있는데, 민주당 경선 때까지는 그 수를 10만 명으로 늘리고 민주당 후보가 되면 100만 명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회창 총재도 올 가을 홈페이지 개편과 동시에 현재 관리하고 있는 팬클럽 회원 3천명에게 정기적으로 e메일을 보낼 계획이다.


여야 모두 아직 후보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당 차원의 인터넷 전략.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5명 정도의 실무자로 구성된 사이버 지원단이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을 뿐 아직 거당적 차원의 인터넷 대책은 없다. 온라인 조직화 수준도 매우 낮아, 민주당의 경우 대의원 9천여 명 가운데 e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2백명도 채 안 된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은 쓰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여야 정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선에서의 활용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 1월부터는 지자체 선거운동과 후보 경선이 펼쳐지고 하반기부터는 대선 정국이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보트 코리아 천호선 대표는 "인터넷 대선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늦어도 올 가을부터는 각 정당이 중앙당과 지구당, 대의원과 당원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놓아야 한다"라며 온라인 조직화가 시급하다고 충고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