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스승은 '아이 자신'
  • 김진아(〈즐거운 뉴스〉기자)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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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안 시키고 명문대생·'영어 박사' 만드는 비결


부모들은 흔히 '주위에서 모두 다 하는데 나만 빠질 수는 없다'는 말로 자녀에게 과외 시키는 이유를 합리화하곤 한다. 그렇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자녀를 과외로 내몰지 않고도 훌륭하게 키워내는 부모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과외 없이도 아이를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고 영어 박사로 만드는 이들 부모의 교육 비결은 무엇일까.




이들이 말하는 첫 번째 비결은 억지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올해 초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한 윤석준씨(20). 그의 토익 성적은 975점. 만점에 가까운 그 점수를 윤씨는 고등학생 신분이던 지난해 여름에 따냈다. 그는 영어 방송인 아리랑 TV의 '퀴즈 챔피언' 전에 나가 친구들과 함께 5주 연승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외국물 좀 먹었거나 엄청나게 훌륭한 과외라도 받았을 거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윤씨는 해외 연수는 물론이고 과외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다. 중학교 때 딱 한 번 무료 티켓으로 학원에 다닌 일이 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학원에서 굳이 따로 배울 필요가 있나 싶어' 곧 그만두었다.


그의 학습 비결은 수업 시간에 무섭도록 집중하는 것. 학교 교사인 부모님은 '무조건 수업에 충실하라'고 가르쳤고, 윤씨는 어려서부터 이를 충실히 따랐다. 수업 태도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는 아들의 공부나 성적에 대해 일절 말이 없었던 부모는 대신 방학 때마다 온가족이 사회과부도를 들고 전국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체험 학습에 열을 쏟았다. 여행중 아들이 역사책이나 비석·현판 따위를 읽어 내리면 부모는 '재롱 잔치를 보듯' 즐거워했고, 이 과정에서 윤씨는 책 읽는 재미를 자연스럽게 붙이게 되었다.


그의 영어 실력 또한 영어에 재미를 붙이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것이다. 고교 입학 이후에야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또래에 비해서는 한참 늦은 셈이었지만 1학년 때 만난 젊은 담임 선생님은 윤씨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선생님은 영어를 '문자'가 아닌 '언어'로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수업 교재를 사용하곤 했다. 선생님이 좋아 학급 서기까지 자원한 윤씨는 영어에 한층 공력을 들였다. 그 결과 윤씨는 3년 만에 '영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과외? 재미 없어서 안해요" : 고3 시절 학교 수업만으로 토익 975점을 맞은 윤석준씨(오른쪽)와 글 쓰기로 각종 경시대회를 휩쓴 한이(맨 오른쪽).


그래도 과외가 필요악이라고 믿는 부모라면 차선책에 귀를 기울이자. "과외를 할 수도 있다. 단 아이가 원할 때 시킨다." 이것이 바로 과외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를 잘 키운 부모들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이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신혜원씨(37)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어진이와 함께 동네 텃밭을 일구며 보고 느낀 자연 생태를 〈어진이의 농장 일기〉라는 책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은 동화 작가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어진이의 구김 없는 시각과 맑은 상상력은 보는 이들을 자못 즐겁게 만든다.


단 어진이의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씨는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은 공부를 위한 시절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런데 1년 전 어느 날 어진이가 문득 영어 학습지를 하고 싶다고 청해 왔다. 신씨는 이를 받아들였고, 어진이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학습지를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는 요즘 영어뿐 아니라 엄마가 공부하는 일본어를 옆에서 넘겨보며 부쩍 관심을 보인다. "어진이가 어학에 재능이 상당한데 왜 내버려두느냐"고 학습지 교사가 종용할 정도로 아이의 발전 속도는 놀랄 만하다.


아이와 함께 수다 떠는 엄마


과외 없이 아이를 잘 키우는 세 번째 비결은 부모 스스로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한이의 엄마 이빈파씨(41·서울 관악구)는 주변에서 유일하게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에 공부 1등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금은 놀기만도 너무 바쁜 시기이다'라고 이씨는 믿는다.


대신 이씨는 한이에게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게 해 주고, 재미있는 캠프에 보내 주고, 학교 관현악반에서 플루트를 배우도록 허락했다. 무엇보다 이씨가 주력한 것은, 함께 수다를 떠는 엄마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자녀 교육에서 가정이 맡아야 할 몫까지 학원에 떠넘겨 버리는 부모 대신 '피곤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길을 택한 것이다.


공부보다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한이는 전국과학독후감 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을 비롯해 각종 경시대회에서 타온 상장이 20장 가까이 된다. 영어 실력도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를 제외하고는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씨의 신념은 오히려 전혀 의외의 방향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한이가 학교에서 이른바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수업 시간에 뭐 물어보고 토론하려고 하면, 자기들은 다 아는 거라고, 쟤 바보 아니냐고, 재수 없다고 괴롭힌다"라는 아이의 호소를 듣고 같은 반 학부모들을 만난 이씨는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미 중증 과외 중독에 빠진 부모들은 과외 없는 자녀 교육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부모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라고 잘라 말하는 이씨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적극 참가하며 학부모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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