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반테러 전쟁', 세계는 어디로
  • 파키스탄 페샤와르·김진화 편집위원 (chinwkim@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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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잿더미 위에 '꼭두각시 정권' 선다/
미국, 속전속결→유엔 감시 총선 시나리오…
미·영·파키스탄 합의, 자히드 왕·랍바니 연정수반 구도 유력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으로 막이 오른 21세기 첫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또 전쟁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중앙아시아 패권 전략은? 세계 각지 특파원들의 현지 취재로 입체 조명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었다. 21세기의 서막을 여는 첫 전쟁이다. 지난 10월8일 미국과 영국의 아프간 공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9·11 미국 테러 이후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오히려 테러발생 직후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보였던 단호하고 강경했던 태도에 비교하면 늦은 감이 있다.




미국 테러 사태에 대해 빈 라덴과 탈레반뿐 아니라 이라크를 비롯한 주요 테러 지원 국가들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하겠다던 미국 행정부내 강경 세력의 입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되었다. 그 대신 무력 대응을 서두르기보다는 국제 사회의 지지를 확보해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고, 공격 대상도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에 국한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득세했다.


집권 초기 오만한 외교, 일방주의, 패권주의라고 비판을 받던 부시 행정부의 외교 스타일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일극주의적 패권 정책이 국제 사회라는 벽에 부딪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주일간 미국 전략가들이 보여온 행보를 살펴보면 또 다른 측면도 엿볼 수 있다. 바로 미국의 반 테러 공격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제거하고 그곳에 친미 정권을 세우는 데 목표를 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전략 거점이다. 따라서 이곳에 친미 정권이 세워지면 미국은 중앙아시아와 카스피 해 유전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가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설파한 21세기 미국의 전략, 즉 '유라시아 전략'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전쟁'을 앞두고 국제 열강은 이해 득실을 따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영국과 일본, 그리고 겉으로는 공감하면서 속으로는 견제와 경계를 감추지 않는 러시아·중국·나토가 바쁜 시간을 보냈다. '탈레반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열강의 복잡한 속사정을 〈시사저널〉 해외 필진이 분석했다.




탈레반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공격은 잠수함을 동원한 해군함과 최신예 전폭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현지 시간 10월8일 밤 미·영 연합군은 아프간 수도 카불을 비롯해 칸다하르·마자르 이 샤리프·잘랄라바드·콘두즈·헤라트 6개 도시를 강타했고, 공격 목표에는 대통령궁과 내무부·국방부 등 주요 건물 및 빈 라덴의 훈련 캠프 등이 포함되었다. 공격이 시작되기 꼭 48시간 전, 블레어 영국 총리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탈레반 이후 새 정부는 푸슈툰족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부족을 망라한 범부족 연립 정부여야 한다… 새 정부는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이해 관계가 있는 파키스탄의 이해가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 시각만 해도 탈레반 정부가 엄연히 수도 카불에 건재했었고 미·영 연합군은 총 한 방 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영국 총리는 아프가니스탄의 90%를 통치하는 '탈레반 이후'의 정부 구성과 옆나라 파키스탄의 이해까지 '보장'하고 나선 것이다. 약소 국가의 운명이 강대국의 마음대로 이렇게 요리될 수도 있구나, 생생하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부족 연합 통치 제도 '로야 지르가' 복구


연합군 침공 여섯 시간 만에, 로마에 은둔하고 있던 자히드 샤 전 국왕(86)은 귀국할 뜻을 밝히고, 즉각 비상 범국민 연립정부 구성을 제의했다. 사촌의 쿠데타로 쫓겨난 이래, 로마 북부 한가한 동네에서 30년째 망명 중인 자히드 국왕은 '탈레반 이후' 권력 공백을 일시적으로 메울 인물로 주목되어 왔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통적으로 정부 구성을 최고 통치자가 주도하지 않았다. 그것은 '로야 지르가'의 몫이었다. 로야 지르가는 여러 부족의 추장, 종파(宗派)·정파(政派) 지도자, 학자, 사회 지도층이 한자리에 모여 협의와 토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는 일종의 원로 협의 제도이다.


블레어 총리가 말한 '모든 부족을 총망라한 정부'는 로야 지르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7백∼1천명 선의 '원로'(로야)들을 '한자리에 모아'(지르가) 협의하는 이 제도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운명이 탄생시킨 지극히 '아프간적인' 통치 제도이다.


한반도의 3배 반이 넘는 땅 아프가니스탄은 해발 2000∼3000m의 높고 거친 산악이 즐비한 나라다. 산과 산이 부족들을 갈라놓아 사람 왕래가 어렵다.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에 가려면 조랑말로 며칠을 가야 한다. 이 나라 서쪽 끝 고르 주(洲)에서 수도 카불까지는 두 달 반이 걸린다. 나귀를 타고서…. 이런 자연 조건 때문에 직접 선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평생 자기 부족, 자기 마을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어서 배타적이고 고집 세고 타협과 양보가 없어 분쟁이 잦다. 분쟁을 해결하려면 서로 만나 대화해야 한다. 대화할 필요에서 생긴 원로들 모임이 '로야 지르가'인 셈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도로 올라온 원로들은 나무 베는 문제에서부터 새 헌법 인준과 같은 큰 일에 이르기까지 토론하고 협의해 합의에 이른다. 회의는 단 하루에 끝나기도 하고, 한 달이 걸려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합의한 사항은 구속력을 갖는다.


자히드 왕 망명과 함께 사라졌던 이 제도는 30여년 만에 90세 가까운 노인과 함께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복귀할 채비를 하고 있다.


반 탈레반 북부연합 세력(최근 '통일전선'으로 개칭)과 자히드 왕은 지난주 아프가니스탄 최고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1백20명으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로야 지르가를 소집하고, 로야 지르가는 국가 원수를 옹립하며, 범국민 연립정부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파키스탄, 자히드 왕 밀사 불러 협의




아프가니스탄의 부족 구성은 복잡하다. 푸슈툰족 45%, 타지크족 25%, 하자마족 12%, 우즈벡족 11% 순이다. 유목민과 쿠치족·키르키족의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부족은 다시 소수 부족 및 씨족으로 나뉜다. 같은 부족이라도 산 이쪽과 저쪽이 다르고,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다반사다.


나라 밖에 사는 피난민 5백50만여명은 더욱 복잡하다. 이 나라 저 나라 난민촌에 흩어져 있는 난민들은 부족끼리가 아니라 난민촌 별로 흩어져 있다. 20여년을 한 곳에 머무르고 있는 난민도 있고, 최근에 도착한 난민도 있다(일부 난민촌은 가능한 한 부족 별로 수용한다).


이런 복잡한 여건에서 최고위원 1백20명을 뽑는 일도, 이들이 다시 로야 지르가 대표 천여 명을 선출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같은 원 구성의 어려움과 구닥다리 유물이라는 이유로 로야 지르가를 반대하는 측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로야 지르가 외에 잡다한 파벌들을 협상에 끌어들일 방법이 달리 없는 현실이, 더구나 연합군의 침공으로 더욱 당겨진 탈레반의 종말이, 선택할 여지를 좁히고 있다.


탈레반 이후를 스스로 책임진 미국·영국·파키스탄은 이미 로야 지르가 원 구성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공격 하루 만에 자히드 왕의 밀사를 이슬라마바드로 '불러들여' 협의에 들어갔다. 탈레반에게 쫓겨나 이곳에 망명하는 아프가니스탄 정객들은 파키스탄 정보부와 물밑·물위 접촉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미·영·파 3개 국의 낙점을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푸슈툰족 출신으로서, 파키스탄에 우호적이며, 탈레반 온건파를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군주가 아니라 국민 화합의 상징으로 고국에 돌아오기를 원하는 자히드 국왕은 푸슈툰족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은 인물이다. 같은 푸슈툰족인 탈레반내 온건론자들과의 관계는 왕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힘 없는 상징적 국가 수반 밑에서 연정의 수반이 되려는 야심가는 많다. 그러나 닭은 많고 꿩은 드물다.




모하메드 파임 : 통일전선의 총사령관. 한때 공산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내다가 무자히딘에 합류했다. 소수 민족 출신인 데다, 미·영으로부터 집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숙적 인도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는 등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샤나와즈 타니이 : 1990년 나지블라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내다, 쿠데타에 실패하고 탈레반으로 전향. 온건파로 통한다. 푸슈툰족 출신으로 파키스탄 정부가 선호하는 인물.


압둘 하크 : 옛 소련 점령군을 상대로 과감한 전투를 벌이다 한쪽 다리를 잃은 무자히딘의 영웅. 통일전선 총사령관직 제의를 받았으나, 최근 파키스탄으로 망명. 푸슈툰족 출신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사교적이며, 탈레반내 온건 세력과도 가까운 관계.


부르하누딘 랍바니 : 60세. 카불 대학 교수 출신. 자미아티 이슬라미 당수. 탈레반이 쓰러뜨린 무자히딘 정권의 대통령으로 4년간 재임. 최근 통일전선의 최고지도자로 추대됨. 유엔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의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엔 의석을 유지하고 있음.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으나, 푸슈툰족 출신에 온건하고 합리적이어서, 가장 유력한 차기 정권 담당자로 지목되고 있음.




카불을 향해 : 진격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반 탈레반 '통일전선' 전사들(오른쪽). 맨 오른쪽은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미국의 공격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이슬람 시위대.


현시점에서 미국과 영국을 거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흐르는 정치 기류는 자히드 왕에 랍바니 행정수반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가고 있다. 미국은 속전속결로 조속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서고, 유엔과 이슬람 국가기구를 앞세워 이들 감시하에 총선을 실시한다는 전략이다.


거칠고 고집 센 아프간 사람들이 30년 만에 돌아오는 왕을 어떻게 맞이할는지 의문이다. 왕과 국민은 너무 오래 떨어져 있던 친구 사이처럼, 서로가 못 알아보지는 않을까? 왕이 30년 전에 헤어진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알아볼 수 있을는지 서로가 불안한 상태다.


지난 30년간 계속되어 온 쿠데타와 내란과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이 나라의 부족들과 종파·정파 들은 예로부터 모반·배신·음모·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강대국과 외세가 '탈레반 이후'를 카불에 세워 놓는다 해도, '탈레반 이후의 이후'가 몇 번이나 계속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 사이, 전국민이 피난민이 되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비극은 그 도를 더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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