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땅은 미국 신무기 시험장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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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각종 병기 성능 검증 기회로 삼아
미국의 21세기 첫 전쟁은, 겉으로는 '빈 라덴의 테러 행위에 대한 보복'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명분일 뿐, 미국이 테러 응징을 내세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패권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숨겨진 전쟁 목표는 또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국토를 무기 성능 시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자국 내에서 생화학 무기를 동원한 추가 테러 가능성을 점치면서 미국이 일찍부터 21세기 새 전쟁 유형이라고 지목했던 '재앙적 테러'와의 전쟁에 자국민을 동원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B52 전략 폭격기는 왜 출격했나




아프가니스탄 공격 초기 국면은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개전과 동시에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의 군사력을 무력화해 기선을 제압하는 작전 방식이 이번 전쟁에서도 채택되었다.


페르시아 만 전쟁 때 미국과 다국적군은 개전과 동시에 대규모 공습을 통해 이라크의 주요 군사 시설과 전략적 산업 시설을 초토화해 지상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이번에도 공습과 폭격을 단행한 지 3일 만에 공습 체제를 '야간 공습'에서 '주야간 공습'으로 전환했고, 바로 이튿날에는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습에 동원된 무기도 페르시아 만 전쟁과 비교해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공격 개시 직후 미국 국방부는 첫 공습에 폭격기 15대와 전투기 25대를 동원했으며,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50기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은 이미 페르시아 만 전쟁 때 선보인 바 있다. 또 작전에 동원된 전투기나 폭격기도 FA18 호넷, F14 톰캣, B1, B52 등 낯익은 것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양상이 다르다. 무기 전문가들은 우선 B52 스트래토포트레스 폭격기가 폭격에 참가한 사실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의 군사 거점이나 여기저기 흩어진 테러 훈련 캠프 등 소규모 제한적인 목표물을 폭격하는 데, B52와 같은 전략 폭격기를 동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 전문가 앤드루 브루크스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이는 다분히 심리적 위협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이유는 다를 수 있다.


B52는 1980년대 말 냉전 종식과 함께 변화하는 전쟁 환경에 맞추어 개량되어 왔다. 이번 참전은, 바로 이같은 개량 결과를 실전에서 검증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폭격기'인 B2 스텔스 폭격기가 미국 본토 미주리 주의 와이트맨 기지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장까지 장거리 비행 끝에 폭격에 참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되고 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때 처음 실전에 투입된 B2 스텔스는 자유 낙하 폭탄으로서 위성에 유도되어 목표물을 찾아가는 고도 정밀 무기인 'JDAM'으로 무장하고 있다. (주)군사정보 안승범 편집인은 "이번 공격에서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이들 폭격기의 임무 수행 능력과 함께, 인공 위성이나 레이저로 유도되는 JDAM·AGM 86 같은 정밀 무기, 각종 전자 장비의 성능 시험이 이루어졌을 공산이 높다"라고 말한다. 무기 전문가들은 특히 알 카에다 지하 기지 폭격에 동원된 신병기 '벙커 버스터'의 등장에 주목하고 있다.


전쟁 결과, 미국 안보 전략에 큰 영향 미칠 듯




지상전 무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영국 언론은 지상전에 미국의 산악 사단·델타 포스·네이비 실 등 특수 부대와 함께, UH60 블랙호크·AH64 아파치·AC130 등의 병기가 투입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병력 수송 기능에 전투 능력을 보탠 AC130에 전문가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안승범 편집인은 "대공포와 야포가 달린 이 비행기는 탁월한 파괴력을 자랑하지만, 저고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스팅어 미사일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스팅어 미사일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과의 대결에 미국이 AC130기를 출전시킨다면, 여기에는 '숨긴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은 미국 정부가 무기 문제와는 별도로 21세기 안보 전략을 확정하고 적용하는 데에도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 규모의 군비를 유지하는 명분으로 '깡패 국가'들에 의한 미사일 등 대량 살상 무기의 위협과, '재앙적 테러'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장관과 북한 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가 강조했던 이른바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C 리스트'의 주요 목록이다. 이 중 재앙적 테러는 지난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의 참사로 현실화함으로써 설득력이 한층 높아졌다.


문제는 대량 살상 무기와 재앙적 테러 위협이, 경우에 따라 미국의 대외 영향력 유지 및 확대를 위한 구실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 정부는 반테러 전쟁을 확대할 뜻을 비치며, 국제 사회에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번 전쟁이 결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정의로운 전쟁의 장막 뒤에서 전쟁의 이해 득실을 따지기 위해 분주하게 주판알을 튀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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