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과 미국의 '부적절한 관계'
  •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rena@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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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등 '유착 증거' 잇달아 폭로
7월 두바이 병원에서 CIA 요원과 만나
지난 10월31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미국에서 테러 참사가 벌어지기 두 달 전인 7월, 오사마 빈 라덴이 두바이(아랍에미리트)의 미국 병원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과 만났다고 보도했다. 오사마가 대체 누군가? 그 때 오사마의 목에는 연방수사국이 내건 현상금 수백만 달러가 걸려 있지 않았던가?


미국 정부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미국대사관이 동시에 공격당하자 오사마를 배후 인물로 지목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을 크루즈 미사일로 폭격했다. 미국은 두 나라 정부가 오사마의 테러 조직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올해 미국 함선이 파괴된 사건의 배후 인물로도 오사마를 지목했다. 탈레반 정부가 오사마를 숨기고 있다고 해서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는 내내 긴장이 감돈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법원은 지난 5월 말, 오사마의 지령을 받아 이 테러 사건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회교도 4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 중 1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그들의 두목은 '미국 병원'에서 '열흘'간 치료를 받고 '무사히' 돌아갔으며 미국 정보부 요원의 '방문'까지 받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병에 시달리던 '반미 테러 전사' 오사마는 세상이 알아주는 명의를 찾아 적의 소굴에 들어가는 용기를 발휘했고 미국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를 치료한 것일까? 그렇다면 기력을 회복한 오사마는 두 달 만에 적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테러로 미국의 은혜에 보답한 셈이다.


미국이 공개 수배하고 있는 오사마가 미국 중앙정보국과 접촉했다는 이 '엽기적'인 사건을 〈르 피가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오사마는 7월4일, 개인 주치의와 심복 장교, 경호원 4명, 알제리 남자 간호원을 동반하고 파키스탄 케타 공항을 떠났다. 그는 두바이 공항에 내린 직후 미국 병원으로 직행해 열흘간 입원했고, 저명한 비뇨기과 의사 캘러웨이 박사에게 치료받았다. 치명적인 신장병을 갖고 있는 오사마는 예전에도 병 치료 때문에 해외 여행을 했다. 두바이에는 사업상의 이유로 몇 차례 방문한 일이 있다. 병원에는 그의 집안 식구들과 사우디·아랍에미리트의 유력 인사들이 찾아왔다. 두바이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이 오사마의 입원실을 방문하는 것도 목격되었다. 며칠 후 오사마를 만났다고 주변 인물들에게 자랑한 정보국 요원은 오사마가 파키스탄으로 떠난 다음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오사마가 반미 테러 활동을 해 집안에서 '버린 자식'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추방되었다는 통설은 믿지 못할 말이다. 중앙정보국의 감시망이 깔려 있는 곳에 버젓이 드나들며 정보국 요원과 접촉하는 오사마를, 미국이 찾는 테러범이라고 볼 이유도 없다. 중앙정보국이 〈르 피가로〉 보도를 터무니 없다고 반박하자 '프랑스 국제 라디오' 방송은 오사마를 만난 정보국원 이름이 래리 미첼(Larry Mitchell)이라고까지 보도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보수 계열 신문이나 국제 라디오 방송이 이런 정보까지 공개하면서 터무니없는 일을 꾸밀 이유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르 피가로〉는, 과거 부시 정부 관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기업 칼라일이 막대한 지분을 갖고 있는 언론이다. 칼라일에 투자하고 있던 빈 라덴 그룹은 9월 테러 이후에 자금을 빼갔다고 한다. 그러니 〈르 피가로〉가 없는 사실을 꾸며 현재나 과거의 물주를 괴롭힐 까닭은 없다. 오사마를 치료했다는 캘러웨이 박사가 〈르 피가로〉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도 이 보도에 나타나 의혹을 더해준다.


"오사마·CIA는 20년 넘게 '주고받는' 관계"




〈르 피가로〉 보도에서 9월 테러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지난 8월 파리의 미국대사관에서 프랑스와 미국 정보원이 긴급 회의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서 '반미 테러와 관련된 특수 정보'가 미국 쪽에 전달되었는데 중앙정보국원은 이 때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7월 말 아랍에미리트 세관은 두바이 공항에서 프랑스 국적 알제리계 자멜 벵갈을 체포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오사마 조직 알카에다의 고위급 요인을 만나 콩코드 광장 부근 미국대사관을 폭파하라는 지령를 받았다고 자백했다. 프랑스와 미국은 8월 초 이 사실을 통고받고 비상 회의를 열었다. 아랍 외교 소식통과 프랑스 정보부에 따르면, 반미 테러와 관련된 특수 정보가 중앙정보국에 전달되었다. 이 모임에서 미국측은 극도의 두려움에 빠져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고 알제리 테러범에 관련된 극히 특수한 정보만 캐물었다. 당신들이 두려워 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은 이상하게도 침묵을 지켰다.'


〈르 피가로〉는 끝으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덧붙였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오사마의 접촉은 1979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빈 라덴 그룹의 사업을 책임지고 있던 오사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에 맞서 싸울 지원병들을 모집했다.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테러 사건을 수사하던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사건에 사용된 폭탄이 미군 무기이며, 이 폭탄이 아프가니스탄에 (사건) 3년 전에 전달된 것임을 밝혔다. 연방수사국은 수사 과정에서 중앙정보국이 몇 해 동안 그들의 아랍 친구들과 맺은 자금조달 협약도 찾아냈다. 그렇다면 두바이에서 있었던 비밀 회동은 미국의 정책과 어긋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7월 비밀 접촉은 오사마와 중앙정보국이 20년이 넘도록 유지해온 밀착 관계의 후속편이며, 그들은 '주고 받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영국 BBC는 지난 11월6일, 방영한 프로그램 〈BBC 뉴스 나이트〉에서 오사마와 미국 사이의 흑막을 드러내는 또 한 가지 사실을 소개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이나 군 정보부가 9월 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이들은 오사마 조직 수사에 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손발이 묶여 있었다는 것이다. BBC는 이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미국 연방수사국의 비밀 문서를 공개했다. 국가 안보 관련 사항임을 뜻하는 고유번호(1991 WF213589)가 붙어 있는 이 문서에 따르면, 연방수사국은 미국에 살고 있는 오사마 가족과 사우디의 자금 지원을 받는 이슬람 청년조직의 테러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연방수사국 조사는 결론이 나기 전인 1996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청년조직은 바로 인도 정부가 카슈미르 테러의 배후 조직으로 지목해 왔다. 그러나 이 조직은 미국이 9월 테러 이후에 새로 지정한 테러 지원 조직에 끼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자금 통제도 받지 않는다.


BBC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오랫동안 가려진 역사가 있다고 지적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자를 발급하는 미국 관리의 말을 소개했다. 이 관리는 오사마가 모집한 청년들이 중앙정보국이 지원하는 테러 훈련을 받은 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는 일이 미국의 정책으로 굳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11월7일, '사우디아라비아가 관련된 수사에는 언제나 엄격한 통제가 따랐는데, 부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런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미국 고위 정보통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들이 벌이고 있던 수사 중에는 사실상 '숨을 멈춘' 경우도 있다고 한다. 9월 참사가 있기 두 달 전에도 오사마와 미국이 비밀 접촉을 하고, 미국에서 오사마와 연계된 조직에 대한 수사가 통제를 받았다면, 9·11 테러는 물론 미국이 오사마를 배후로 지목한 모든 테러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BBC는 9·11 참사의 실제 원인을 미국·오사마·사우디아라비아의 유착 관계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오사마가 파괴한 미군기지, 빈 라덴 그룹이 재건




오사마는 페르시아 만 전쟁 이후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에 주둔하자 반미 테러를 결심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에는 1980년대부터 무려 2천억 달러 규모의 미군 기지가 건설되고 있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곳의 군 시설이 미국 본토 내의 기지를 빼면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식 기지라고 말한다. 2천억 달러라는 상상을 넘는 자금에는 9백50억 달러의 미군 무기 구입 예산과 핵공격에도 견딘다는 6백50억 달러의 군 하부 구조, 최신 미군 폭격기 수백 기가 주둔하는 공군 기지, 군항 건설 비용이 포함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 중 1천5백60억 달러를 부담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 시설 건설을 맡은 시공업체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업체가 바로 빈 라덴 그룹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그의 가족 그룹이 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공사를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사마는 198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직접 건설업자로 나서서, 반소 게릴라 전쟁을 지원하는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 수십억 달러를 들여 지하 동굴 기지를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 오사마가 은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국과 영국이 폭격하고 있는 지하 기지는 바로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오사마는 중동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테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사마 조직이 파괴한 미군 기지는 그때마다 빈 라덴 그룹이 최신식으로 다시 재건하는 묘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오사마는 그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되어 수단으로 도피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통설이다. 그런데 수단의 국방장관은 1996년 5월 오사마를 미국으로 넘기려는 방침을 미국에 타진했다. 지난 10월3일 이 사실을 소개한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은 수단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왜? 미국은 그때 오사마를 테러범으로 확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증거가 없으니 오사마를 재판에 회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후 수단은 오사마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겠다는 뜻이 있음을 미국에 알렸는데, 미국도 여기에는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은 1995년 2월, 오사마를 뉴욕 무역센터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한 일이 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1년 후 오사마를 넘기겠다는 수단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은 그 후 2년이 지난 1998년 수단을 폭격했다. 폭격 이유는 수단이 오사마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사마를 잡아가라고 제안했던 수단을, 오사마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격했으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오사마가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탈레반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알려진 후에도 미국의 탈레반 지원 정책에는 변화가 없었다. 탈레반 전문가로 유명한 파키스탄 출신 기자 라쉬드는 미국대사관이 아프리카에서 테러 공격을 받기 바로 전에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도요타 트럭 4백대를 탈레반에 보냈다고 말한다. 오사마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삼각관계는 이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 무렵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가 오사마 체포를 거부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반 탈레반 세력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두바이에서 있었던 오사마와 중앙정보국의 비밀 접촉이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준 정책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르 피가로〉의 분석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오사마는 9·11 참사 1주일 만에 왜 말 바꾸었을까


최근 오사마가 보여주는 변신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오사마는 9·11 테러 이후 서방 언론에 보도된 첫 발언에서 자기가 테러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의 주범으로 이스라엘·러시아·인도·세르비아의 테러 조직을 지목했다. 그는 9·11 테러가 '사탄이 저지른 범죄'이며 그의 조직 알카에다는 미국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후 1주일이 지나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신은 미국의 가장 취약한 곳을 타격했으며 이 공격을 완수한 이슬람 전사들에게는 하늘의 극락을 선물로 준다는 것이다. '사탄이 저지른 범죄'가 바로 1주일 만에 '이슬람 전사들이 완수한 신의 보복'으로 바뀌었다. 이 두 번째 발언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시작하고 그 폭격을 '아랍의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 나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 전쟁이나 코소보 전쟁에서 서방이 전범이나 인종학살범으로 몰아세운 후세인이나 밀로셰비치가 인터뷰를 통해 서방 언론에 나타난 일은 없었다. 유독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 이같은 인터뷰가 공개된다는 사실도 이상하다.


9·11 테러 이후 서방 언론의 보도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그동안 가려진 오사마의 정체는 그 전모가 드러날 때가 머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밝혀야 할 부분은 오사마의 돈줄이다. 〈르 피가로〉가 보도했듯이 오사마와 중앙정보국 사이에 유지되고 있다는 '자금 협력'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다. 아프가니스탄 폭격에 참여한 서방이 '오사마가 9·11 테러의 배후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속사정도 그 때 완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부시 정부는 '반 테러 전쟁'이 우리 세대에 끝나지 않는 장기전이라고 말했다. 그 장기전을 앞당겨 끝내는 일은 오사마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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