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남녀 4인의 '직설 수다'/"우린 이렇게 산다"
  • 정리/차형석·신호철 기자 (papaipip@e-sisa.co.kr)
  • 승인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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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에 미쳤다면 동거를 왜 하겠나?"/
"부당한 차별 · 편견 없었으면"
동거를 감행하는 이는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이 동거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 결혼의 그날까지 '솔로'인 양 행동해야 하는 한국의 '동거 남녀'.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다판을 벌였다.




유응오 : 2년 넘게 동거하고 있다. 동거하게 된 데는 경제적 이유가 컸다. 집주인이 갑자기 방을 빼라고 해서 자취를 하던 여자 친구가 갈 데가 없어 자연스레 방을 합쳤다.


박홍미 : 나도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남자 친구와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전부터 동거에 대한 고민은 많았다. 둘이 살면서도 이 문제로 치열하게 토론했다. 비록 14개월 만에 헤어지기는 했지만.


유은정 : 지금 동거하는 남자 친구 집에 자꾸 드나들다 보니 점점 그 집에 내 짐이 많아졌다. 그전에도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했다. 자주 드나들다 자연스레 동거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전한해원 : 나는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다.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40만원을 주고 방 4개짜리 집을 구했다. 일부일처제로 대표되는 기존의 가족제도에 반대하는 친구들이라고 보면 된다.


유응오 : 지금은 결혼할 게 확실하지만, 동거를 시작할 때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장가를 안 간 형들을 제치고 먼저 결혼하는 것에 반대해 동거를 유지해 왔다.


유은정 : 나는 아직 안 알렸다. 앞으로도 알릴 생각이 없고. 부모님에게는 친구와 살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유응오 : 흔히 남자는 그래도 된다, 손해 볼 것 없다고 말한다. 애인이 동거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하는 것을 꺼렸지만 말했다. 죄짓는 것도 아닌데, 상대쪽 식구들이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박홍미 : 나는 처음부터 동거를 결혼의 전 단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동거를 시작한 직후 부모님도 이해할 것 같아 얘기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얘기한 게 조금 실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유은정 : 왜?


박홍미 : 양쪽 부모들이 화를 내지 않고 의외로 쉽게 넘어간 건, 이미 나를 며느리로, 남자 친구를 사위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뒤 나는 대소사에 참석하며 며느리와 비슷한 역할을 요구받았다. 한번은 화가 나 남자 친구에게 '니네 집 며느리 아니라고 가서 엄마에게 말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응오 :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사람이 있는데, 그 집에는 술 사들고 밤에 안 가는데 우리 집에는 새벽에 맥주 사들고 온다. 그게 귀찮다면 귀찮고, 서운하다면 서운했다. 우리도 같이 사는 부부인데 말이다.


전한해원 :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생각한다면 동거는 여성에게 위험 부담이 더 큰 게 현실이다.


유은정 : 공감한다. 최근 대학가 성폭력 사건 때 게시판에 올라온 남자들 반응을 보면서 경계심이 들었다. 지금은 안 하지만 나중에 30대, 40대 돼서 '너 예전에 누구와 동거했지' 하며 공격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홍미 : 내 경우 동거 사실을 밝혔을 때 '와, 대단하다'며 축하해준 친구들이 많았다.


유응오 :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남자도 사람들 눈총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2년 넘게 살면서 애인이나 나나 윤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근래 애인이 여보·당신이라는 말을 잘 쓴다. 무의식적인 자기 방어 기제가 아닌가 싶다.


유은정 : 같이 사는 남자 친구의 가족이 두 달에 한 번 올 때마다 전날 밤에 물건을 다 치운다. 그 때마다 우리가 동거하고 있구나 하는 존재감이 든다. 한번은 스타킹을 방에 놔두고 온 적이 있었는데, 누가 거기에 두고 간 것 같다고 남자 친구가 대충 변명했다.


박홍미 : 평소에는 가사 노동을 잘 하던 남자 친구가 부모님만 오시면 전혀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가시고 나면 '넌 이중 인격자야' 하며 남자 친구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웃음) 부모님이 오시는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남자 친구 엄마가 와서 나를 따로 불러 '화장실이 지저분하다. 여자가 있는 집에' 하며 나무라기도 했다. 나는 며느리 아닌 며느리였다.


유응오 : 처음 동거를 했을 때 와이프는 학원 강사였다. 호칭이 재미있었는데, 집주인 아줌마가 전기세를 받으러 오면 나는 학생이라 부르고 와이프는 꼭 새댁이라 불렀다.(웃음)


박홍미 : 나도 새댁 소리 많이 들었다. 학생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는데도 꼭 새댁이라 불렀다.


유응오 : 여자 친구가 다니는 학원의 원장은 아이들 교육에 나쁘니 애들에게는 얘기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전한해원 : 대학생들도 연애를 하다 보면 섹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 조사를 해도 혼전 섹스를 찬성하는 편이 반대하는 사람보다 많다. 기성세대는 혼전 순결을 내세워 동거를 백안시하지만 현실과는 들어맞지 않는 생각인 것 같다.


유은정 : 혼전 순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딱히 동거가 아니라 하더라도, 연애하는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해보면 사귀는 사람과 자주 성관계를 갖는 건 아주 흔하다.


박홍미 : 동거를 주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별 소리를 다 들어 보았다. '섹스에 미친 년'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오히려 섹스에 미쳤다면 동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항상 동거를 섹스와 연결해서 생각하려 한다.


유응오 :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대학 재학중이거나 대졸자들이다. 우리보다 더 눈총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마이너리티일 것이다. 우리는 그나마 학력 수준이 높아 사람들이 동거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다. 학력 수준이 낮고 경제 여건까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동거 사실이 드러나면 윤리 관념이 희박한 사람인 것처럼 더욱 눈총을 받는다.


유은정 : 다른 사람이 동거한다면, 피임에 신경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친구 하나는 동거하다가 임신을 했다. 수술할까 어쩔까 고민하던 중 자연 유산이 되기는 했는데, 그것 때문에 마음 고생·몸 고생 엄청나게 하고 두 사람 관계도 결국 깨지는 걸 보았다.


박홍미 : 생각만 가지고 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미리 어느 정도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살아야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사전 합의가 중요하다.


전한해원 : 굳이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난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일부일처제 가족 형태말고 여러 가지 가족 형태를 실험해볼 생각이다.


박홍미 : 동거야말로 기존 가족 제도에서 탈피한 또 하나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상이라고 보는 가족 이외의 또 다른 삶의 방식 중 하나이다.


유응오 : 그렇지만 동거 부부는 가족으로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다. 제도 안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 보험·대출 같은 혜택도 받지 못한다.


유은정 : 아직 대학생이어서 의료보험 문제는 지금 처음 알았다. 그 자체로 살면 되지 하며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전한해원 : 결혼이라는 게 집안·섹스·아이를 한묶음으로 구매하는 패키지 상품처럼 취급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하나씩 구매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동성애 가족·동거 가족에게 그런 혜택을 부당하게 빼앗아서는 안 된다. 사회적 편견도 부당하다. 섹스를 더 많이 할 수 있겠다 싶어 동거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박홍미 : 동성애 가족이나 동거 가족이 기존 가족 제도와 조금 다른 가족 형태라고 해서 무시하고 손가락질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두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유응오 : 소설가 장정일이 독서일기에 '돌아온 탕아는 보수주의만 들고 온다'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보수주의에 편입돼 간다는 것을 느낀다. 맞서 싸울 게 있으면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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