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국민 기만극'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2.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적자금, 채권 원리금 상환 불가능…1백39조원, 모두 국민 부담
공적자금은 눈 먼 돈이었다. '사기' 당한 국민은 1백39조원을 또 떠안는 '봉'이 되어버렸다. 그 많은 돈을 누가 주물렀고, 누가 어떻게 빼돌렸는가.


공적자금은 눈 먼 돈인가. 재경부 발표에 따르면, 올 10월 말까지 조성된 공적자금은 1백50조6천억원이다. 국민 1인당 3백10만원 정도를 부담한 셈이다. 4인 가족으로 치면 1천2백만원이 넘는 돈이다. 그런데 지난 11월29일, 공적자금이 총체적인 부실 상태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밝혀져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느냐는 한탄과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예보)나 자산관리공사는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을 지나치게 비싼 값에 매입한다거나 지원 대상이 아닌 곳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 금융기관들은 당국의 허술한 감시를 틈타 임원들의 월급을 200%나 인상하는 등 공적자금으로 자신들의 잔치를 벌였고, 부실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기관 담당자는 26억원을 자기 호주머니에 챙겼다.




공적자금, 국민 부담은 얼마나?(단위 : 조원)

















































기관 투입 형태 국민 부담액
예금보험공사 원금손실 61.3
(감자손실) (10.1)
이자지급 29.6
기회비용 0.2
추가
투입
원금손실 12.5
이자지급 7.9
회수자금 재투입(10조) 7.8
소계 119.3
자산관리공사 원금손실 3.0
이자지급 7.3
소계 10.3
공공자금 원금회수 불능으로 인한 기회비용 9.7
합계 139.3
자료 : 한국경제연구원


이것만이 아니다. 분식 처리된 장부를 믿고 공적자금을 지원해 2조원이 넘는 돈이 날아간 적도 있고,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와중에서도 부실 기업주들이 7조원이 넘는 돈을 해외로 빼돌린 것을 당국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당국과 부실 금융기관-부실 기업이 연결된 국민 기만극이 공적자금 지원 막후에서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정부, 3년간 단 한번도 관리 감독 안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체계가 안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적자금 집행 업무는, 실질적인 결정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가 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예보와 자산관리공사를 내세우는 이중 구조로 운영되었다. 자연히 관리 감독이 소홀해, 재경부와 금감위는 지난 3년간 공적자금 관리 실태를 제대로 검사한 적이 없다. 지난 2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정부 차원에서 공적자금 투입과 집행 전반을 체계적으로 책임진 곳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공적자금을 회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도 "공적자금 회수 여부가 금융 구조 조정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0월 말 현재 정부는 37조7천억 원을 회수해, 공적자금 회수율은 2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에도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다. '회수 실적이 저조해 채권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시급히 실효성 있는 원리금 상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적자금 상환 기일/단위 : 조원(숫자는 이자 포함 금액)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12.0 30.2 25.5 25.8 22.8 3.9 19.2 0.9 0.1 0.2




금융권별 지원 현황(단위 : 조원)






















은행 종금 증권 ·
투신
보험 신협 금고 소계 해외금융기관 등
84.9 19.6 16.0 18.5 2.0 7.3 63.4 2.3 150.6




기관별 지원 현황(단위 : 조원)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정부 한국은행
93.2 38.4 18.1 0.9 150.6
자료 : 재경부


예를 들어 지난 9월까지 예보를 통해 지원한 공적자금 90조8천9백83억원 가운데 회수된 금액은 12조5천4백65억원(13.8%)에 불과하다. 그나마 회수된 자금도 대부분 부실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데 다시 쓰였다. 예보 이상용 사장은 지난해 6월 국회 재경위에 출석해 "예보가 갖고 있는 27조원대 주식을 매각해 원리금을 상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다양한 매각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2년 말쯤 되면 주식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것이니 이때 주식을 내다 팔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식을 매각해 원리금을 상환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 박승록 소장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한 원금 손실을 모두 주식 매각을 통해 보전하려면 최소한 주당 3만7천원은 되어야 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주가가 5백원이나 천원 대에 머물러 있는 주식이 많음을 감안하면 최소 20∼30배로 주가가 올라야 한다는 결론이다. 제일은행의 경우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주가가 10만원을 넘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소장은 주당 천원이라고 가정한다면 70조원은 회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사원은 2003∼2006년 4년 사이에 원리금 84조5천7백억원 상환이 집중되어 있어 재정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이 기간에 이자를 포함해 갚아야 할 금액이 1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갖고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모두 판다고 해도 예보는 2003년, 자산관리공사는 2005년부터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진 념 부총리가 11월23일, "내년 중 만기 도래하는 예보 채권을 20년 한도 중장기로 차환 발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한 것은 정부가 공적자금과 관련된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정부가 상환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해 채권을 국채로 전환하는 순서를 밟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민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 명확해져 책임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계산한 대로라면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한 국민 부담액은 투입액에 맞먹는 1백39조원에 이른다. 일부 회수한다 해도 이자를 갚는 정도에 그칠 뿐 원금 부담은 거의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이다. 박승록 소장은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상환의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합의를 이루어내 이제라도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재정 조달 계획과 세대간 부담 일정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