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21 ‘패스’ 위해 누가 뛰었나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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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전 의원·김영렬 사장, 로비 ‘쌍두마차’…박준영 수석은 윤씨가 ‘개척’
만약 그때 갔더라면…. 민주계 중진인 전직 의원 ㅅ씨는 요즘 신문을 보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자칫했으면 그 또한 ‘윤태식 게이트’와 관련해 구설에 오를 뻔했기 때문이다. 15대 국회(1996.4∼2000.3) 때 국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그는 1999년 12월 초,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김현규 전 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꼭 와줘야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ㅅ씨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ㅅ씨는 “그 부탁은 규수당 건물에서 윤태식씨가 열었다는 기술시연회 자리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윤태식 게이트’의 불똥이 본격적으로 정계로 옮겨 붙으면서 윤씨의 로비 창구와 수법이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보아도 그의 로비 손길은 철도청 직원에서부터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뻗어 있다. 로비를 펼친 양대 축은 10% 지분을 소유했었고 패스21의 감사를 맡고 있는 김현규 전 의원과 김영렬 <서울경제> 사장. 김사장은 패스21이 출범할 때부터 적극 후원했고, 가족까지 포함하면 한때 26% 정도의 지분을 가진 적도 있다.


김현규 전 의원은 주로 자신의 텃밭인 정계를 상대로 움직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 출신인 그는 특히 과거 민주계 인사들과 친했다. 1999년 12월21일 서교동 규수당 빌딩에서 열린 시연회 때 한나라당 ㅎ·ㅂ·ㅅ 의원이 참석한 것은 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민주당 ㅇ의원도 김현규씨와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시연회에 참석했다. ㅎ의원은 “당시 누가 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왔었고 다들 패스21의 기술에 감탄하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윤태식씨나 김씨로부터 주식 등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ㅂ의원은 1년 뒤인 2000년 12월,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과 함께 패스21을 방문하기도 해 주목되고 있다.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은 김현규씨의 부탁으로 1억원을 투자해 패스21의 주식 천 주를 구입해 구설에 올랐으나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억원짜리 수표 한 장을 서울은행 63빌딩 계좌에서 송금했는데, 되팔아 차익을 챙긴 적이 없을 뿐더러 정상적으로 재산 등록을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현규씨는 또 통일민주당 출신인 김정길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부탁해 남궁석 당시 정보통신부장관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박지원 전 청와대 공보수석에게도 청탁을 하는 등 너른 발을 과시했다.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이 국회에서 패스21의 시연회를 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도 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이었던 이의원은 여야 의원 4명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자리에 패스21 임원 두 사람과 동행했고 일부 경비도 지원받아 검찰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태이다.


김현규씨는 현재 사업하는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관료들 때문에 자금 조달에 애를 먹는다며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윤씨가 벌인 로비의 또 다른 축인 김영렬 <서울경제> 사장은 경기고 인맥들과 언론인 활동에서 쌓은 친분 관계를 적극 활용했다. 그가 제일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경기고 52회 동기 동창인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이었다. 두 사람은 50년 지기여서 이원장은 “꼭 와서 내 체면 좀 세워달라”는 김사장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이원장은 김사장의 부탁을 받고 국정원에서 패스21의 기술시연회를 열도록 했고, 1999년 12월 규수당 건물에서 열린 기술시연회에도 참석했다. 이 시연회에는 김사장의 경기고 동기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사장은 또 경기고 후배인 배순훈 당시 정통부장관에게도 지원을 요청했으나 배장관은 외국에 가서 인증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며 거절했다. 이규성 전 재경부장관이 패스21의 고문으로 영입된 데도 김현규씨의 역할이 컸다.


윤태식 게이트 관련한 정치권 수사 본격화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은 윤씨가 독자적으로 개척한 로비 창구이다. 윤씨는 지인 이 아무개씨-청와대 사진사-공보수석보좌관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통해 박수석을 만났다. 그는 “패스21 기술이 정부에 도입되면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라며 박수석을 설득해 보건복지부·행정자치부·국무조정실 등에서 시연회를 할 기회를 얻었다. 박수석은 윤씨에게 ‘취직 부탁’까지 한 것으로 밝혀져 두 사람이 남다른 관계를 형성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에서 정·관계 고위 인사가 윤씨로부터 금품이나 주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경우는 없다. 그러나 ‘윤태식 게이트’로 구속된 정보통신부·청와대·재경부 공무원과 언론인 들에게는 예외 없이 주식이나 돈이 건네졌다. 때문에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특정 벤처 기업을 아끼는 마음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보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검찰은 윤씨 개인뿐만 아니라 패스21 회사 관계자들의 자금 거래 내용까지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윤태식 게이트’ 수사는 이제 초입에 들어선 셈이다.



* * *


 증권사도 다투어 매입




주 명부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도 패스21의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신탁증권이 5천주씩을 매입했다. 한국투신 윤성일 부장은 “2000년 11월 유망한 회사로 판단해, 4억원을 투자해 주당 8만원씩에 샀다”라고 말했다.


현대증권은 2000년 5월, 6천5백주를 구입했다. 시중에서 20만∼30만 원씩 거래될 때 15만원에 샀다. 주목되는 것은 이 주식이 김영렬 <서울경제> 사장의 첫째 아들인 김준섭씨의 소유였다는 것이다. 현대증권 김종욱 이사는 “김준섭씨와 김영렬 사장과의 관계는 이번 사건이 터지고서야 알았다”라고 설명했다. 2000년 8월에 만 주를 구입한 현대투신측도 장래성과 수익성을 보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왜 하필 김준섭씨의 주식을 샀을까’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어쩔 수 없는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검찰도 이 부분에 주목해 일부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스21에 투자한 증권사



회사



주식



지분



삼성증권



5,000주



0.67%



한국투자신탁증권



5,000주



0.67%



현대증권



6,500주



0.87%



현대투자신탁증권



10,000주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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