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게이트’ 폭발하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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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 박문수, 1천3백억대 트럼프월드 건설…시공사는 (주)대우
1998년 8월1일, 대한석탄공사는 외국계 회사 열 곳에 공문을 발송했다. ‘본사 사옥을 매각코자 안내문을 발송하오니 관심 있으시면 연락 바랍니다….’ 1천6백여 평 규모인 서울 여의도 55-1번지 사옥 부지를 매각하려 했으나, 세 차례 입찰이 무산되자 보낸 공문이었다.


석 달 뒤인 11월2일, 회사 법인이 아닌 유은경씨 등 개인 두 사람이 이 땅을 사겠다고 나서, 양측은 4일 뒤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 이 땅에는 올 연말 완공 예정으로 지하 5층, 지상 41층 규모의 주상 복합 건물인 ‘트럼프월드’가 세워지고 있다. 공사 규모는 1천3백억원대.


이 땅을 산 유은경씨의 남편은 박문수씨이다. 박씨는 2000년 6월에 설립된 하이테크개발의 감사이고, 유씨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내부에서는 박씨를 ‘회장’이라고 부른다. 전남 신안 출신인 박회장은 1980년대 중반까지 20년 가까이 동교동을 드나들어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이수동 전 아태재단 이사 등 동교동계 1세대 인사들과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1990년대 건설업에 뛰어들었으나 1998년 부도를 맞는 등 어려움을 겪은 그는 업계에서 권노갑 전 고문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험증권’ 2백17억원 발행 미스터리


분당 파크뷰 아파트 부지를 용도 변경하는 과정에 권력 실세가 개입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트럼프월드와 관련해서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용도 변경은 없었으나 여권 인사들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기관에는 이와 관련한 투서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월드를 시공한 회사는 (주)대우이다. 대우 계열사인 동우공영의 한 관계자는, 원래 대우와 미국의 트럼프 사가 공동으로 개발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방향이 바뀐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석탄공사는 1998년 7월, 30대 건설회사에 부지 매각과 관련한 공문을 보낸 적이 있어 건설사들은 이미 이 땅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박회장이 ‘누군가를 믿고’ 끼어들기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대우측 관계자는, 박회장이 먼저 땅을 확보한 뒤 대우측에 사업 제안을 했고, 대우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협력 관계를 맺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회장이 중도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등 계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석탄공사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도 이런저런 뒷말을 낳고 있다. 석탄공사는 지연 이자만 받았을 뿐 계약을 해지하려 한다든가 하는 적극적인 조처는 하지 않았다. 때문에 박회장은 10%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분양 계약을 완료해 잔금을 모두 갚았다.


석탄공사는 박회장과 (주)대우측에 ‘매매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고 분양 동의나 착공 동의를 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청약 일정과 청약 장소 등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해 분양 광고를 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기 분양을 재고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나 더 이상의 조처는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시 석탄공사 고위직에 있었던 한 인사는 외환 위기 때여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각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보증보험이 유씨에게 2백17억원 이행보증보험증권을 발행한 경위도 의문이다. 이 액수는 서울보증보험이 발행한 것 가운데 개인이 받은 것으로는 최고액이다. 서울보증보험측은 당좌 수표와 예금 58억원이 든 통장, (주)대우의 보증 등이 있어 이행보증보험증권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서울보증보험은 ‘대우 계열 주요 채권단회의’에 참석하고 있어 대우의 재정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태에서 대우의 보증 아래 개인에게 거액의 보증증권을 발행해 주었다는 것은 선뜻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곳곳에 권노갑씨 관련 인사 개입 흔적


주목되는 것은, 하이테크개발에 민주당 박양수 의원 부인인 윤경자씨가 2000년 6월20일부터 2001년 2월21일까지 이사로 있었다는 점이다. 건설업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윤씨가 왜 이 회사의 이사가 되었던 것일까. 전남 진도 출신인 박의원은 권노갑씨의 최측근 인사이고, 이 시기는 그가 민주당 사무부총장과 조직위원장 등 주요 당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그는 “1970년대 동교동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박씨가 회사를 만드는 데 사람이 부족하다며 이름만 빌려달라고 해 빌려주었다. 회사 설립 초기에만 2개월 정도 이사로 있다가 바로 그만두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씨가 이사 직을 그만둔 지난해 2월은 박의원이 여성부장관으로 나간 한명숙 의원의 전국구 의원 직을 승계한 직후이다. 때문에 박의원이 국회의원이 되면서 ‘주변 정리’ 차원에서 부인이 이사 직을 그만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씨가 이사로 재직했던 기간도 8개월 간이었다.
박회장 “아이디어로 성공했을 뿐”


트럼프월드 사업을 시작할 당시 박회장은 거의 돈이 없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이다. 계약금 10억원도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관측은 이래서 나온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가 이 사업에 승부수를 던져 빚도 갚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박회장이 트럼프월드 사업을 통해 최소 100억원 이상을 벌었다고 말한다. 1991년부터 강남 일대에서 4∼5층짜리 빌라를 건축해 왔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박회장은 현정권 들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트럼프월드 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이성헌 의원은 “권력 실세가 개입했다고 확신한다. 여러 가지 제보가 있는 만큼 계속 추적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몇 차례 메모를 남겼으나 응답하지 않은 박회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동교동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순수한 사업가이다. 아이디어로 성공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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