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사냥이 나를 두번 죽였다”
  • 여수·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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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감염 사실 알려져 ‘끔찍한 삶’ 사는 정 아무개씨



여수시 윤락가 구 아무개 여인 에이즈 사건을 보고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 몸서리치는 또다른 에이즈 감염 여성이 있다. 세상의 이목을 피해 서울 근교에 숨어 사는 정 아무개씨(40)이다. 1987년 에이즈 감염자로 판명된 후 7년 동안 군산과 광주 등지에서 술집 접대부로 일한 사실이 나중에 알려져 에이즈 예방법 위반죄로 처벌받고, 언론에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어 사회에서 매장된 정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 사회는 힘없고 나약한 사람을 모두가 나서서 생매장하는 버릇이 있다. 구씨나 나나 그 생활(접대부)로 밥 벌어 먹고 산 것은 같다. 둘 다 피해자이기도 한데 일방적으로 마녀 사냥을 해버리면 감염자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당시 정씨 사건은 이번 구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모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정씨는 마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보복극을 벌이고 다닌 것처럼 묘사되었다. 정씨는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업소에 종사했고, 정기적으로 정씨의 혈액을 검사한 보건소도 그녀가 에이즈 양성과 음성 반응이 번갈아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감염자는 접대부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이 있다는 것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정씨는 출소 후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부가 에이즈 관리를 잘못해 피해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배소를 냈는데 1,2심은 정씨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대법원은 판단이 달랐다. 모든 에이즈 검사 대상자에 대해 정부의 효율적인 관리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로 원심을 뒤집고 정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구씨는 앞으로 정씨가 감당 못할 고통을 겪게 될 것 같다고 안쓰러워했다. “이런 일로 여자 감염자가 구속되면 감옥 안에서 또 한번 지옥으로 떨어진다. 언론에 마녀로 알려진 사람이니 교도관이나 일반수나 마음 놓고 침뱉고 손가락질하며 벌레 취급을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니 감옥에서 나가서도 사람답게 살기 힘들다.” 그녀는 이어서 마녀사냥식 사회 분위기가 감염자들에게 보복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자가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허점 많은 지원 정책을 고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염자를 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씨를 ‘죽일 년’으로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월 일부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에는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정씨가 에이즈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기가 막혔다. 내 동생이 인터넷 사이트에 항의해 정정과 사과를 받아냈지만 일부 언론은 그냥 슬그머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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