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하늘 덮는 ‘핵 확 산’ 구름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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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를 앞세운 인도·파키스탄, ‘핵 클럽’ 가입을 서두르는 일본, 핵 선제 공격을 외치는 미국이 가세해 아시아에 핵 무장 도미노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유사 이래 인류가 발명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통하는 핵무기 확산 공포가 아시아 하늘을 뒤덮고 있다. 미국이 ‘테러 지원’ ‘대량 살상 무기 개발’ 등 이런 저런 이유로 굴레를 씌워 걸핏하면 두들겨온 이란·이라크·북한 등 ‘악의 축 3인방’ 때문이 아니다. 세계의 경찰국임을 자임하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느라 유독 핵 확산에 대해서만 신경을 덜 쓴 탓은 더더욱 아니다. 핵 확산 적색 경보는 이스라엘과 일본, 그리고 최근 ‘남아시아 중시 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동맹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파키스탄 등지에서 오히려 더 요란하다. ‘핵 반란’은 미국의 면전이 아니라, 바로 배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축구 중계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던 지난 6월15일,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핵 확산과 관련해 사실상 1급 요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최근 ‘육상과 공중에 이어 해상(수중)에서도 핵무기를 쓸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핵 무장국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지금까지 핵무기를 육·해·공 3면에서 자유자재로 운용해온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뿐이었다).





육·해·공 핵무장 완료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해군은 3~4년 전 호발트스베르케-도이치(HDW)라는 독일의 한 잠수함 회사로부터 돌핀급 디젤 잠수함 3척을 도입했다. 돌핀급은 길이 57.3m·배수량 1,900t에 최고 20노트 속력을 낼 수 있는 잠수함이다. 크기와 성능으로만 따지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재래식 무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들 잠수함을 들여다 가공할 핵무기로 둔갑시켰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수중발사 순항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게끔 잠수함 구조를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한 전직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2년 전 개량형 순항 미사일을 인도양의 스리랑카 인근 한 지점에서 시험했던 사실도 아울러 보도했다.


1970년대부터 핵탄두를 보유해온 이스라엘은 핵무기 개발이 주변 아랍권의 선제 공격에 대한 ‘억지력 확보’ 차원이라고 주장해왔다(73쪽 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이스라엘이 육·해·공 3면에서 핵무기 운용 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억지력’ 논리는 궁색해졌다. 이스라엘은 잠수함을 이용해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언제든지 국경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에도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사건은 중동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심각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서남아시아 일대, 그리고 한·중·일 3국과 북한이 각축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핵 지도’에도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중 특히 1990년대 말부터 핵 확산이 급속하게 진행된 서남아시아는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핵무기 재료용 플루토늄·농축 우라늄 수백 kg 외에, 미사일로 대표되는 핵탄두 운반체 수십 기를 보유하고 현재에도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 카네기 재단이 올해 초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인도는 무기급 플루토늄 400kg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전략및국제연구소의 앤서니 코즈먼의 계산에 따르면, 이 정도 분량이면 6kg급 기본형 플루토늄 폭탄을 65개 제조할 수 있다. 아울러 인도는 파키스탄 주요 도시를 표적으로 하는 프리드비(‘지구’라는 뜻) 미사일 시리즈를 보유한 외에, 파키스탄 전역은 물론 심지어 중국 핵심 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아그니(‘불꽃’이라는 뜻)까지 개발하고 있다.


파키스탄도 이에 못지 않다. 지난 1970년대 인도의 핵실험 움직임에 자극받아 핵무기 개발에 나섰던 파키스탄은 현재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농축 우라늄을 585~800kg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파키스탄은 적재 용량 700kg에 사정거리 1100km짜리 가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지난 6월 초 인도·파키스탄간 신경전이 일촉즉발의 전쟁 상태로 치달았을 때, 파키스탄이 일종의 ‘무력 시위용’으로 시험 발사했던 미사일이 바로 가우리 미사일이다).


각기 다른 이유에서 출발했지만 두 나라는 모두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인도는 1974년 인디라 간디 총리 시절 처음으로 핵실험을 했는데, 기술의 원천은 캐나다에서 사들인 중수로 시설이었다. 인도는 1962년 초반 중국과 국경 분쟁을 치르면서 핵무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핵무기에 집착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은 독립 당시부터 원수지간이었던 인도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핵무기 개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5년 네덜란드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던 압둘 카디르 칸이라는 전문가가 귀국하면서 파키스탄은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경과한 1990년대 말 두 나라는 나란히 ‘핵 클럽’에 가입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쟁적인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인도는 1998년 5월11·13일 이틀간 모두 5회에 걸쳐 핵폭발 실험을 했다. 같은 해 5월28일 파키스탄도 이에 뒤질세라 핵폭발 실험을 했다. 서남아시아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무기 개발과 핵무장을 둘러싸고 20년 넘게 ‘죽음의 각축’을 벌이는 동안, 동북아시아에서도 핵 개발 태풍이 일기 시작했다. 태풍의 진원지는 1990년대 초반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며 국제 사회의 핵 확산 시비에 요란하게 등장했던 북한이다.


일본, 재처리·농축·핵탄두 핵심 기술 완비


하지만 이 지역에서 정작 ‘요시찰 국가’는 따로 있었다. 북한이 ‘불량 국가의 동북아 지역 대표’로 낙인 찍히며 국제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동안, 일본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 아래 ‘핵 클럽’ 가입을 위한 절차를 부지런히 밟아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재처리 시설과 농축 기술 등 핵탄두 제조의 핵심 기술을 모두 보유한 일본은 최근 ‘우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쓸 수 있는 로켓의 완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74쪽 딸린 기사 참조).


일본의 안보 전문가들은 일본의 핵과 관련해 대략 두 가지 원칙을 들먹이며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강변해왔다.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이 그 중 하나이며, 자위대는 일본의 방위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른바 ‘전수방위(專守防衛)의 원칙’이 나머지 하나다.


하지만 이 원칙들은 현재 폐기 처분되기 일보 직전이다. 비핵 3원칙의 경우는, 이미 지난 5월 후쿠다 관방장관의 발언으로 빚어진 파문에서 나타났듯이, 일부 정치권에서 무효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전수방위 원칙에 따르면, 일본은 항공모함·전략 폭격기는 물론 전략 탄도미사일도 보유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일본은 현재 개발중인 H2A 실험 로켓에 탄도미사일의 핵심 성능이기도 한 대기권 재돌입 성능을 보태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1970년대 핵확산방지조약이 출범한 이래 핵 확산을 막으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은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열매를 맺는 듯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핵개발을 포기했으며, 드 클레르크 시절 비밀리에 핵탄두를 개발해 놓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넬슨 만델라 정부가 들어서자 처음으로 핵 보유 사실을 밝힌 뒤 스스로 폐기 처분하겠다고 ‘커밍 아웃’을 선언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벨로루시·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국도 옛 소련 시절 배치되었던 핵탄두 수천 발을 폐기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국제 사회의 핵 확산 방지 전선에는 ‘금단의 열매’를 손에 넣으려는 일부 ‘불량 국가’의 야욕을 꺾는 일만 과제로 남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핵 확산의 검은 돌풍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흙먼지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반핵 활동가들은 이같은 핵 확산 방지 실패가 핵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핵의 평화적 이용’ ‘클린 에너지’를 상징하는 원자로는, 원래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실험 부산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또 핵무기와 90% 이상 같은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원자력은 좋지만, 핵무기는 안된다’는 사고 방식이 변하지 않는 한 핵 확산을 막으려는 움직임은 언제나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맛대로’ 핵 억지 전략의 결과


국제 사회의 핵 확산 방지 대책에는 이같은 핵의 태생적 한계 외에도 또 하나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핵확산방지조약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보다 핵 확산 문제에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역할과 입장이다. 미국은 ‘비핵화의 수호자’ 역할을 해왔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핵 확산의 또 다른 원천’이 되어왔다.


미국은 197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 양쪽에 핵무기 개발에 핵심적인 중수 기술을 제공했다. 미국은 또 북한이나 중국이 미사일 기술을 해외에 제공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제재를 가했지만, 이스라엘이나 인도가 영국·독일·프랑스 등과 핵 기술을 거래하는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이스라엘은 인도와 전략적인 관계를 맺고 인도양에서 군사 협력을 진척시키고 있지만, 미국은 이 또한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반체제 인사인 이삼 마크호울 씨는 2000년 스웨덴 웁살라 대학 강연에서 이같은 사실을 폭로하며 “이스라엘의 핵 운용 능력과 밀접히 연관된 이같은 협력은 미국의 이해와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아울러 지난해 9·11 테러가 터지자 파키스탄에 대한 핵 정책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1998년 이래 파키스탄에 취했던 핵 관련 제재 조처를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말끔히 걷어준 것이다.
동맹국과 적대국에 대한 이같은 차별적 태도는 ‘비핵 원칙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반핵 활동가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미국의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핵 정책이 결국 핵 확산을 부추긴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핵 단체 ‘네바다 사막 경험’의 샐리 라이트 소장은 “핵 제재 완화의 대가로 충성을 끌어내는 방식은 과거 이라크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라크의 핵 문제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기술 지원이 씨앗이 되었을 개연성이 짙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은 최근 ‘더러운 무기’ 또는 ‘핵을 이용한 선제 공격’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으며(76쪽 딸린 기사 참조), 그 대상을 아시아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 또 한번 핵 개발 바람을 몰아치게 할 공산이 높다. 핵무기 제조 기술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닌 현재, 누가 ‘핵 공격 위협’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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