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두들겨 대권 잡자”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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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 전략 따라 압박 가해…민주당은 원망, 한나라당은 엄포 많아



"한마디로 검찰이 동네 북 신세다.” 여야가 저마다 검찰에 대해 상대방의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압박하는 현실을 두고 한 검찰 간부가 내뱉은 탄식이다. 대부분의 검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정략 차원에서 검찰 수사를 이용하기 위해 압박 전술을 부쩍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이 겉으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검찰을 흔들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특히 김홍업씨 수사를 둘러싸고 검찰을 향한 여야의 서로 다른 압박 전술은 절정을 이루었다. 한나라당측은 검찰 내 특정 지역 출신 정치 검찰의 입김을 이유로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별도로 특검과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7월10일 검찰이 김홍업씨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한나라당은 일단 이명재 총장 체제의 검찰이 과거 검찰과는 다르다고 비행기를 태웠다. 그러나 그동안 한나라당이 요구해온 대선 비자금과 아태재단 수입 지출 내역의 전모를 밝히지 않은 것은 ‘DJ가 임명한 검찰의 한계’라며 특검제와 국정조사권 발동 등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과 달리 민주당은 철저히 수세적인 입장으로 검찰을 원망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우선 검찰의 김홍업씨 수사 과정과 발표 내용이 과거 통상적인 권력 비리 수사 관행에 어긋난다며 볼멘 표정이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지난 10개월간 강남의 룸살롱 마담부터 음식점 주인까지 홍업씨가 들른 곳은 이잡듯이 샅샅이 뒤져 인권 유린 소지가 있는 쥐어짜기식 수사를 했다. 그리고 집안에 돈을 감췄다고 하면 될 걸 베란다 창고 앞에 가구로 가리고 숨겼다든가, 고 정주영 회장에게서 어느 기간에 얼마 받았다고 하면 될 걸 마치 월급을 받듯이 5천만원씩 받았다고 발표하고 전달자까지 공개했다. 홍업씨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는 계산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이 민주당 죽이기로만 가고 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검찰 수사가 공정성을 잃고 민주당 죽이기로만 나아가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검찰을 성토하고 나섰다. ‘최규선-윤여준 커넥션’이라든지 세풍 자금 등 한나라당에 불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김대통령 두 아들 비리 수사가 진행되면서 기세 등등하던 노풍의 거품이 꺼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 보아야 했던 노무현 후보는 7월4일 마침내 대통령 친인척 비리 청산과 검찰 제도 개혁 방안을 들고 나왔다. 그는 먼저 한나라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 현정부 임기 안에 성역 없이 각종 비리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기구 설치와 특별검사제도 상설화, 그리고 검찰총장 등 4개 권력 기관 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또 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집권하면 경찰에 큰 선물을 주겠다”라는 말로 지금까지 검찰이 독점해온 수사권을 경찰에도 부여하겠다고 암시했다.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독립 의지를 흘려 검찰 수사의 편파성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검찰 개혁을 둘러싼 노후보의 이같은 탈 DJ 행보는 청와대의 묵살에 밀려 혼선을 빚고 있다. 김대통령은 7월11일 개각에서 김정길 전 법무부장관을 법무부장관으로 다시 임명함으로써 노후보의 제의를 사실상 묵살했다. 신임 김장관은 김대통령이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고 믿는 몇 안되는 인사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노후보가 주장하는 권력 비리 수사 특검제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 전개에 대해 노후보의 한 핵심 측근은 몹시 곤혹스러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정부 아래서 벌어진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한시적 상설 특검제 도입을 주장했지만, 홍업씨 수사를 계기로 이명재 검찰 체제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특검제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본다. 대신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가 내놓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검찰 인사위원회 도입안 등이 노후보의 공약과 비슷하므로 이번 정기국회에서라도 이 문제를 여야가 입법화해 검찰 독립을 제도화해야 한다.”


한나라당, 반대 급부 노리고 특검제 밀어붙여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후보가 주장하는 여야 합의에 의한 검찰 개혁 제도화 제안에 대해 대통령 일가 비리 및 공적자금 비리 등을 조사하기 위한 특검제와 국정조사권 발동을 노후보가 먼저 주장하기 전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에 김홍업씨 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명재 총장 체제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여세를 몰아 다른 권력형 비리 수사 쪽으로 검찰을 더욱 몰아가겠다는 심산이다. 특검제와 국정조사권 발동 엄포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다.


공적자금 비리에 초점을 맞춘 특검제와 국정조사권 발동은 이회창 후보의 중점 대선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이 제도를 계속 밀어붙임으로써 특검제 도입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검찰 조직을 자극해, 현재 검찰이 맡고 있는 공적자금 비리 수사에서도 김홍업씨 비리 사건 수사 결과 못지 않은 정치적 반대 급부를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미 초기 단계에서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와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가 구속된 공적자금 비리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현정권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이 한나라당측 계산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허태열 기획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공적자금 1백60조원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리가 너무 엄청난 규모여서 우리가 집권해도 그 쓰레기를 청소하다 세월 다 보낼 것이라고 우려된다. 다음 정부가 매년 내야 할 이자만 해도 국가 예산의 10%인 10조원씩인 데다, 공적자금 채권 상환 기간을 3~5년짜리로 집중 발행해 다음 정권에 온통 부담을 떠넘겼다.” 한마디로 집권 후 면책을 위해서라도 공적자금 비리에 대한 철저한 특검 수사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만일 이회창 후보가 집권한 뒤 이 문제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면 정치 보복으로 비칠 테니까 현정부가 특검을 통해 털 것은 털고 가라는 압박이다.


결국 이명재 총장 체제 검찰의 운명은 대선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달려 있는 꼴이다. 그런 점에서 검찰 역사에 나타난 두 가지 사례는 이명재 총장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법하다. 1997년 대선 때 김태정 검찰총장은 DJ 비자금을 폭로하며 수사하라고 압박하던 한나라당측 요구를 묵살했다. 훗날 그는 “만약 당시 내가 수사를 지시했더라면 호남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런 그가 현정부 들어 요직을 돌면서 정치 검찰의 전형으로 손가락질당한 것은 아리러니컬하다.


반면 1997년 초 ‘국민의 검찰론’을 펴며 온갖 압력을 뿌리치고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을 전격 구속한 심재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정치 권력과 거리를 둠으로써 검찰 내부는 물론 국민에게도 깨끗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수사만으로도 이명재 총장은 민주당으로부터 한나라당 편향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검찰은 반드시 세풍 사건과 이회창 총재 주변 비리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는 주문도 받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수시로 특검제 카드를 꺼내 보여주고, ‘DJ가 임명한 총장’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수사 방향에 영향을 행사하고자 한다. 결국 정치권이 너나없이 검찰을 흔드는 이런 특수한 시기에 이명재 총장 체제의 검찰이 의지할 곳은 국민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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