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센 만큼 생기는 게 많았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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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 돈·법률·산하기관 완전 장악…벤처 비리에 ‘당연히’ 연루



정통부는 벤처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최규선·정현준 ‘게이트’에서는 입방아로 그쳤지만, 패스21 윤태식 게이트에서는 직원이 구속되고, 전직 장관까지 기소되었다. 정통부 국제협력관이었던 노희도씨는 패스21 주식을 뇌물로 받아 구속되었고, 남궁석 의원은 정통부장관 시절 윤태식씨에게 주식을 요구해 지난 4월 불구속 기소되었다(이 건은 현재 재판 중이다).


또 정보통신정책국장이었던 손 홍씨는 벤처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지난 4월 구속되었다. 손씨는 정보화촉진기금을 받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유니와이드 테크놀로지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문민 정부 때부터 ‘부패 부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리 사건에도 정통부 직원들의 이름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서울지검 특수2부가 수사하는 한강구조조정기금 비리 사건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통부의 전직 고위 간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정통부에 출입하던 국정원 직원이 한강구조조정기금을 벤처 기업에 알선해 준 대가로 7억9천만원이나 받았는데, 이 가운데 상당액이 정통부 고위 간부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차동민 특수2부장도 “(정통부 간부) 연루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라며 소문을 부인하지 않았다.


정통부가 ‘부패 부처’로 낙인 찍힌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민 정부 때로 거슬러올라가면, 이석채 전 장관이 PCS사업자 선정 때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어 처벌받은 바 있다. 2000년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가 집계한 ‘공직부패데이터베이스’(1972∼1998년)에 따르면, 1998년 한 해 동안 정보통신부 직원 2백54명이 비리 공직자로 처벌받았다.


정통부가 각종 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까닭은 돈·법률·산하기관을 한 손에 움켜쥐고 업계를 흔들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7조7천억원(2001년 말 기준)이나 되는 정보화촉진기금 등을 관리하고,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전기통신기본법 등 각종 IT 관련 법을 총괄하고 있다. 또 IT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같은 IT 관련 연구기관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권을 둘러싼 로비가 끊이지 않고, 일부 직원들이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부가 ‘비리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데에는 직원의 비리를 알고서도 부처 내에서 적당히 넘긴 탓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올 초 국무총리 산하 정책평가위원회가 발표한 40개 중앙 행정기관에 대한 종합평가 결과에 따르면, 정통부는 지난해 자체 감찰에서 1만1백11명(업무 미숙 포함)을 적발했으나 9천9백9명에게 주의·경고만을 주었다. 한 공무원은 “잘못을 저질러도 솜방망이로 때리는데 누가 무서워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비리가 잦아지자 정통부는 비리 연결 사슬을 끊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내년부터 기술 개발 출연금을 크게 줄이고, 정치권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거나 청탁하는 업체는 자격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통부가 운영하는 중소·벤처 기업 지원 자금(연간 7천억원 규모)도 점차 줄이고, 외부 기관에 맡겨 엄격하게 심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와 관가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통부 직원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국책연구기관이 심사하게끔 했던 정보화촉진기금도 국장의 말 한마디에 엉뚱한 곳으로 샜는데, 외부 기관에 맡긴다고 투명한 심사가 이루어지겠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무원의 부패가 무서워 기술 개발 지원금을 줄이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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