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위해 무릎 꿇고 애원하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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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씨, 실력자들에게 운동권 수배자 장영달씨 구명 ‘통사정’
폭력 조직 보스 김태촌과 시국 사건 수배자 장영달(현 열린우리당 의원).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흔히 말하는 조폭과 정치인의 비호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1986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5·3 인천 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려 절박하게 쫓기던 수배자를 김태촌씨가 3개월간 숨겨주고, 군사 정권 실세들에게 물밑 구명운동까지 벌이고 다녔던 것이다.

두 사람은 1976년 목포교도소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된 장영달과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을 드나들던 김태촌은 서로 동갑내기여서 감옥 안에서 쉽게 말을 트고 지냈다. 장영달 의원은 “당시 김태촌의 공소장을 읽어보니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결국 폭력 세계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처지에서 그에게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건강한 삶을 찾으라고 충고하면서, 많이 교화했다”라고 말했다.

그 후 김태촌은 출소했지만 다시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1980년 대전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장기 수형 생활 중이던 장영달씨를 또 만났다. 당시 장씨는 교도소 내에서 김태촌과 또 다른 폭력배 문 아무개씨를 조직 폭력 세계에서 구출할 교화 대상으로 삼고 집중적으로 ‘교육’했다고 한다. 문씨는 교화에 성공해 출소 후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서울에서 개척 교회 목사로 있다. 그러나 김씨는 출소 후에도 주먹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5·3 인천 사태 주모자로 장영달씨가 수배되자 김태촌은 교도소에서 자기를 교화하려고 정성을 다한 장씨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밤낮 없이 숨어 지내던 장씨의 갑갑증을 풀어주기 위해 김씨가 건달 축구대회장에 그를 몰래 데리고 나간 것도 그 무렵이다. 장영달 의원은 “한양대 옆 둔치에 따라 갔지만 수배자 신세여서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차창 너머로 구경했는데 거물 정치인들이 많이 참석해 있었다. 그 날 행사가 건달 축구대회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라고 말했다.

김태촌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 중진 남○○ 의원과 민한당 중진 신○○ 의원, 검찰 간부, 보안사 및 안기부 간부 들을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 함께 초대해 무릎을 꿇고 “불쌍한 내 친구 장영달의 수배를 해제해 달라”고 통사정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일로 김태촌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사흘간 말 못할 고문을 당했다.

김태촌씨는 “장의원이 당시 정권에 밉보여 구속된 처지에서도 나를 교화하겠다고 정성을 기울였지만 내가 그 충고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직도 감옥에 있어 미안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장영달 의원은 “훗날 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교도소에서 축하한다는 편지를 몇 번 보내왔다. 나는 그에게 건강하게 감옥 생활 잘 마치고 나와 새 삶을 찾으라는 위로 답장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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