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세대 '커밍아웃'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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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군 종교 투쟁, 기성 세대 움직여…청소년인권단체 ‘로이’도 적극 활동
그들의 신은 양심, 그들의 경전은 <행동하는 세대>였다. 강의석군 사태를 계기로 지난 6월 생겨났고, 강군도 참여해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인권단체 ‘로이(R.O.Y, Rights Of Youth)’는 단체에 처음 가입하는 이들에게 <행동하는 세대>를 선물하고 있었다.

이 책은 ‘<피플>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환경운동가 대니 서가 지은 책이다. 대니 서는 이 책에서 자신의 ‘복음’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전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서 미리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향해 일단 한 걸음만 내딛어라. 그러면 그것이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한 걸음으로 인해 더욱 큰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석군은 한국에서도 이같은 철학을 갖고 ‘행동하는 세대’가 출현했음을 보여준다. 대니 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단순하지만 아무나 따라 하기 어려운 명제를 실천에 옮겼다. 두발 규제, 복장 규제, 체벌, 종교 강요…. 학창 시절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하지만 학교 다닐 때는 ‘찍힐까 봐’ 넘어가고, 졸업한 이후로는 ‘내 일이 아니어서’ 넘어가던 야만적인 관행들을 향해 이 열아홉 살 소년은 용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재미교포 환경운동가 대니 서에게 영향 받아

어쩌면 이 소년 또한 그냥 침묵할 수도 있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그는 전국 석차 1% 내에 드는 성적 우수자이자 서울 강북 명문 고등학교의 전교 학생회장이었고, 무엇보다 반 년 뒤면 학교를 떠나게 될 고3이었다. 그러나 지난 6월16일 학교 방송실 마이크를 잡고 예배 거부를 공식 선언했던 그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급선회했다.

예배 거부를 선언한 뒤 그에게 닥친 시련은 각오했던 것 이상이었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니 서가 ‘언론에 환장한 녀석’ 따위 모욕적인 별명을 얻고, 그를 지지해 주던 선생님들로부터마저 외면을 당했듯 강군 또한 학내에서 ‘왕따’가 되었다. 학생회장이 된 뒤 교회를 그만둔 일, 예배 거부 파문 이후 학교측의 전학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번복한 일들을 두고 일부는 그를 음흉한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였다. 설상가상, 그를 이해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감쌌던 교목실장은 직위 해제를 당한 뒤 교계로부터 신앙 검증까지 받는 수모를 당했다(28쪽 상자 기사 참조).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이런 상황에 강군은 목숨을 건 단식으로 맞섰다. “제가 아직 어리고 미숙해서 많은 일들을 꼬이게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강군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과 자기 한몸을 희생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다는 청년 특유의 순결한 사명감이 뒤섞여 있는 듯 보였다.

그의 단식이 30일을 넘어서면서 보다 못한 대광고 교사 몇몇은 ‘1일 릴레이 단식’ 등 강군에 대한 측면 지원에 나섰다. 국회에서도 종교 자유를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되어 9월12일 현재 국회의원 23명 등 1백30여 명이 이에 동참했다. 결국 ‘행동하는 세대’가 기성 세대를 움직인 셈인데, 이에 기뻐하면서도 강군의 입장은 단호하다. 9월13일 현재 단식 34일째를 맞은 강군은 “종교 자유를 보장해 달라는 애초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라고 잘라 말했다. 강군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겠다고 학교측이 한 발짝 물러섰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 키 180cm에 몸무게 85kg의 건강한 체격을 자랑하던 강군은 단식이 30일을 넘어가 몸무게가 30kg 가까이 급감하면서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다.

다른 일 안하고 공부에만 전념하면 수능 점수를 30점은 더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강군은 로이 활동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강군은 최근 서울대 법대 수시 모집에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학내 제적 파동으로 인해 지난 1학기 기말고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만큼 합격은 불투명하다).

행동하는 세대의 활약을 예고하는 로이(www.로이.net)는 오는 11월3일을 ‘청소년 인권의 날’(일명 로이 데이)로 선포하고, 서울시청 앞에서 대대적인 인권 행사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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